聽訟之本

2010.02.16 14:22

범의거사 조회 수:12061

“訟事를 듣고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근본은 성의에 있다”(聽訟之本 在於誠意).

牧民心書의 刑典六條 중 제1조 聽訟編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위 책의 저자 정약용 선생은 같은 편에서

“訟事를 듣고 그것을 물흐르듯이 처리하는 것은 천부의 재질이 있어야 하지만 이는 위험하다. 訟事를 처리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밝혀내야 하고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방법이다. 그런 까닭에 송사를 간략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은 판결을 더디게 하는 즉, 이는 일단 한번 판결하고 나면 다시는 송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聽訟如流 由天才也 其道危 聽訟必校盡人心也 其法實 故欲詞訟簡者 其斷必遲 爲一斷而不復起也).

라고 하였다.

  이는 訟事를 처리하는 牧民官이 마땅히 지녀야 할 자세를 기술한 것이다. 소송당사자의 말을 정성을 가지고 귀담아들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判官의 자세임은 고금을 막론하고 不變의 도리일 것이다. 나아가 자기의 재능만 믿고 속단하여 판단할 것 아니라, 심사숙고하여 진실을 밝혀 사건을 종국적으로 해결함으로써 訟事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억울하고 답답하여 訟事를 일으키긴 하였지만 일반 국민이 법정에 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률은 복잡하고 까다롭고 사용하는 용어는 생소하기 그지없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고, 할 말을 다 못하기 마련이다. 어찌할 것인가?

정약용 선생은 말한다.

“막히고 가려서 통하지 못하면 백성의 심정은 답답해지는 것이니, 달려와 호소하는 백성으로 하여금 부모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하게 한다면 이것이 어진 牧民官이다”(壅蔽不達 民情以鬱 使赴愬之民 如入父母之家 斯良牧也).

  소송당사자가 편안하게 자기 할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법정 분위기를 이끌어갈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들이 “이 소송에 져도 좋으니 할 말이나 다하게 해 주십시오” “사형선고를 받든 징역 몇 년을 받든 다 좋으니 제 이야기나 들어주십시오” 라는 하소연을 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      
        
  정약용선생은 이어서 제2조 斷獄編의 첫머리에서

“범죄를 재판하는 요체는 분명하고 신중하게 하는 것뿐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내가 한 번 살피는 데 달렸으니 어찌 분명하게 살피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내가 한 번 생각하는 데 달렸으니 어찌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斷獄之要 明慎而已 人之死生 係我一察 可不明乎 人之死生 係我一念 可不慎乎).    

라고 갈파한다.

사람의 생사에 직결되는 형사재판에 임하는 判官의 자세는 그야말로 분명하고 신중해야 한다. 범죄의 증거가 충분한지를 분명하게 살펴 억울한 죄인이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하고, 나아가 형벌을 정함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를 집필한 것은 1821년(순조 21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18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법정에서 구술주의와 공판중심주의를 구현함으로써 제대로 된 민,형사재판을 해보자는 지금, 선생의 말이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拙夫의 폐부를 찌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