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영 대법원장 퇴임사 전문

2010.02.16 13:58

법의거사 조회 수:15622

      퇴임사  

    오늘 저는 제13대 대법원장의 임기를 마치고 정들었던 사법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34년간의 법관생활을 마무리 지은 후 잠시 재야에 머물렀다가 다시 여러분과 함께 지낸 6년간의 재임기간은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전국의 법원 가족 여러분!

   저는 먼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자 합니다. 재임기간 내내 여러분은 저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었으며, 변함없는 협조와 성원을 보내 주었습니다. 여러분의 격려와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제가 취임 당시부터 구상하고 추진하였던 「국민을 위한 사법」이나「21세기에 걸맞은 사법발전」과 같은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친애하는 법관 및 법원 직원 여러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손을 맞잡고 열린 마음으로 진정 「국민을 위한 사법」을 구현하기 위해 매진하였던 것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판의 적정, 충실 없이는 국민에게 봉사하고 신뢰받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없다는 믿음 아래,  서면공방 및 쟁점정리를 골자로 한 새로운 민사사건관리모델을 도입하였으며, 양형제도와 국선변호제도를 개선하고 형사재판에서의 실질적 공판중심주의를 시행하였습니다.

   아울러, 21세기에 걸맞은 사법발전을 도모하고 국민에게 보다 가까운 법원의 모습을 이룩하기 위해 등기 ․ 호적업무의 전산화 및 사법정보화의 토대를 구축하고, 사법보좌관제도를 도입하였으며, 사법개혁위원회 등 사법개혁 작업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제가 이루려고 했다가 그 열매를 다 거두지 못하였거나 미처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던 일들을 남겨둔 채 이 자리를 떠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전국의 법원 가족 여러분!

   우리 사법부 구성원 모두는「사법권 독립을 통한 법의 지배」라는 이념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에 법원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풍토가 확고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점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관을 비롯한 모든 사법부 구성원들 스스로가 국민이 사법부에 대하여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성찰하고 따뜻한 인간미와 품위를 지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법부 구성원 모두의 노력만으로 사법부의 신뢰가 구축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최근 여론이나 단체의 이름을 내세워 재판의 권위에 도전하여 이를 폄하하려는 행동이 자주 생겨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당한 사법절차 이외의 방법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왜곡된 의식구조는, 법과 판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사법부의 존엄을 해하고, 결국에는 국가기능을 저하시키는 악순환을 되풀이함으로써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만들고 말 것입니다.

   법치주의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분쟁을 해결하는 사법작용을 올바로 이해하고 정당한 법절차와 사법적 판단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사법부로 하여금 흔들림 없이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애정 어린 충고와 함께 힘찬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전국의 법관 여러분 !

   법과 양심에 따른 공정한 재판을 위해, 휴일도 잊은 채 묵묵히 본연의 직무에 충실히 임해 주신 법관 여러분들에게, 저는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법권이 정치권력이나 여론과 같은 외부의 어떤 영향으로부터도 독립하여 행사되어야 한다는 이념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법치국가의 명제이기에, 우리 법관에게 지워진 책임은 너무도 무겁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법관의 외부적 독립을 저해할 우려는 상당 부분 불식되었고, 설령 그러한 간섭이 있더라도 우리 법관들은 이를 능히 극복할 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다만, 법관 스스로 부당한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거나 혹은 법관 자신의 자의적, 주관적 가치관과 사상을 맹종하면서 그 속에 갇혀 내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한다면, 이 또한 사법권의 독립을 해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법관 개개인은 겸허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세대와 여러 계층 간에 다양한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재판의 주재자인 법관 여러분들은 어느 때나 어떠한 경우이든, 한 때의 시류에 영합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과 소신을 가지고 치우침이 없이 시대 전체를 꿰뚫는 법의 정신을 발견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을 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저는 이제, 사법부를 이끌고 온 6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법원을 떠나지만, 영원히 법원 가족으로 남게 되기를 희망하며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사법부 구성원 각자가 법원을 사랑하는 고결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단결과 화합 속에서 자신의 본분과 책임을 다하여야 합니다.

   법원 가족 상호간의 대화와 접촉을 통한 이해와 조언은, 우리 모두의 자기성찰과 발전에 커다란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사법부 구성원으로서의 일체감을 통해 조직의 유기적인 조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원 가족들은, 이제 머지않아 합법적으로 출범하는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고 이를 이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이 본연의 목적을 벗어나 조합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수를 선동하는 듯한 행동은 공무원의 노동운동을 합법화시켜 준 국민들의 참뜻을 저버리게 되는 것임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한 마음으로, 사법부라는 조직 내에서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고른 화음을 만들어 내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음으로, 지금까지 이룩한 사법개혁의 성과에 머무르지 말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중단 없는 작업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사법제도가,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미래의 국가발전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사법제도,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새로운 사법제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가 진정 국민의 뜻과 함께 하겠다는 열린 마음을 견지할 때 비로소 사법개혁 작업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고,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제도로 완성되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법부의 사명인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 친절하고 능률적인 사법업무의 처리라는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법부로 거듭나는 데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국민들은 사법업무의 일선에 서 있는 법원 직원 여러분들을 통하여 사법부를 들여다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여,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친절하고 진취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하여 주기를 당부 드립니다.

   친애하는 전국의 사법부 가족 여러분!

   우리 국민은 광복 이후 혼란과 진통 속에서도 숨 가쁘게 국가발전을 이룩해 온 저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사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역동의 나라, 통일된 나라를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사법부 구성원들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국가의 장래를 책임지는 정의로운 사법부를 기필코 만들어 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시다시피, 신임 대법원장께서는 높은 인품과 덕망으로 국민의 존경과 신망을 받고 계실 뿐 아니라 재판실무와 사법운영에도 풍부한 경륜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제 신임 대법원장과 함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사법부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여러분들에게, 힘찬 박수와 뜨거운 찬사를 보냅니다.

   저는 비록 오늘 사법부를 떠나지만, 신임 대법원장을 맞은 우리 사법부가 자유, 평등, 정의의 이념을 온 누리에 가득히 펼칠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이 저에게 보내주신 과분한 사랑과 성원에 감사드리며, 우리 사법부의 앞날에 영원무궁한 발전과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5.  9.   23.

                                                       대법원장    최    종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