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020.02.29 21:35

우민거사 조회 수:141


 어느덧 2월의 마지막 날이다.

올해가 윤년이라 하루를 더 벌었음에도 기어이 두 달이 가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 입춘도 지나고, 우수도 지났다. 그리고 닷새 후면 경칩이다.

경자년(庚子年)이 시작된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두 달이 지났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그리 급하길래 이렇게 세월이 초고속으로 달려가는 것일까. 


  거 참. 세월이 유수(流水) 같다더니, 게으른 촌자에게 미처 준비할 틈도 안 주고 봄이 왔다며 되도 않는 투정을 부리면서 마당에 나섰더니, 오호라, 봄의 전령 복수초 네 송이가 노랗게 피어 있다. 지난주만 해도 못 보았는데, 백내장 수술을 앞둔 촌자의 눈이 흐려 안 보였던 건가.

 
  그뿐이 아니다. 발걸음을 더 옮기니 꽃봉오리가 올망졸망 맺힌 매화나무 가지가 보란 듯이 자태를 뽐낸다. 대문 밖의 논에도 봄빛이 완연하게 감돈다. 아, 이젠 겨우내 피웠던 게으름과 도리없이 이별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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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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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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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의 논 풍경]


 뒷짐 졌던 손을 들어 올려 한껏 기지개를 펴면서 조선 명종 때의 문인인 성운(成運. 1497-1579)이 지은 시조 한 수를 떠올린다.


전원에 봄이 오니 이 몸의 일이 하다
꽃나무는 뉘 옮기며 약밭은 언제 갈리
아이야 대 베어 오너라 삿갓 먼저 결으리라.


봄이 오자 할 일이 많다. 꽃나무도 옮겨야 하고, 약초밭도 갈아야 한다.

그보다 더 급한 것은 대나무를 쪼개서 삿갓을 만드는 일이다.

이제부터는 봄비가 자주 올 테니까 말이다.


그래, 시인 말마따나 전원에는 할 일이 많다.

동사(凍死)를 막기 위해 겨우내 장미를 감싸 주었던 볏짚도 풀고,

제멋대로 뻗은 나뭇가지들 전지도 하고,

작년에 김장할 때 뽑지 않고 남겨둔 배추 위의 비닐막도 벗기고,

닭장에서 나온 퇴비로 과일나무에 거름을 주고,

뜰에 벌써 제법 머리를 내민 잡초들도 뽑고....

그러다 보니 문을 활짝 열고 집안을 청소하는 것은 일축에 속하지도 않는다.


잠시 허리를 펴면서 라디오를 켜니 오늘 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가 813명 발생했다는 뉴스가 전파를 탄다. 연일 기록 갱신을 하고 있다. 현재 확진자가 총 3,150명이라고 한다. 대구에서만 2,000 명이 넘었다. 이쯤 되면 재앙 수준이다.

일찍이 사스나 메르스가 유행했을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때보다 월등하게 잘 대처하고 있다고 큰소리치던 낯 두꺼운 위정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모르겠다.


이 신종 코로나는 엄연히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것이고,

우리 정부가 무슨 까닭인지 그에 대한 근본적인 방역 대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에서 급속히 퍼진 것인데도,

국민 보건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이라는 사람은 오히려 국민 탓을 하며 염장을 지른다.

도대체 눈꼽만큼이라도 양심과 이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예로부터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천 냥 빚을 갚는 것은 고사하고, 제발 천 냥 빚을 지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혼주(昏主) 옆에는 오로지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며 그의 눈과 귀를 가리는 간신이 들끓기 마련이고, 양자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종국에는 나라가 망하고 마는 것이 동서고금 역사의 교훈이다.


금당천의 촌부는 고작 게으름에서 벗어나 봄맞이를 해야겠다고 없는 부지런이라도 떨지만,

신종 코로나 발병 확진자가 2,000 명을 넘어선 대구를 생각하면 그것도 사치스런 짓이다.

늘 사람으로 붐비던 동성로가 텅 빈 죽음의 거리처럼 되어 버린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대구 출신의 시인 이상화(李相和)가 일찍이 갈파한 싯귀가 귓가에 맴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