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와 고아

2021.02.14 11:24

우민거사 조회 수:141

 

신축년(辛丑年) 설 연휴가 나흘간 이어졌다

가족조차도 5인 이상 모이지 말라는 정부 지침에 조상님을 모시는 차례상 앞에조차도 참석자의 숫자를 세어야 했다. 코로나19가 빚어낸 참극이다.

나라 꼴이 꼴이 아니니 명절이 명절답지 못한 것이다

온 국민이 너나 할 것 없이 조심해야 하니 누구를 탓하랴.

 

마스크를 쓰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지하의 계신 조상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누구인지 알아보시기나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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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지낸 후 아들과 며느리를 떠나보내고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모처럼 북적였던 집안에 도로 적막이 감돌자 삽살이도 얌전하다

담장의 나무 밑에서 돌하루방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름의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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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삽살이를 데리고 금당천으로 나섰다.

봄이 오는 길목의 개울가 버드나무와 잔해만 남은 갈대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이 붉은빛을 한껏 뽐낸다.

우수(雨水), 경칩(驚蟄) 즈음에 꽃샘추위가 한두 번 더 찾아오긴 하겠지만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섭리는 변함이 없다

번다한 대처(大處)가 아닌 벽촌(僻村)이라 사계절의 변화를 더 뚜렷이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촌부의 작은 행복이자 즐거움이다.

다산(茶山)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역쾌재(不亦快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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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살이를 앞세우고 우거(寓居)로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았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또한 불역쾌재(不亦快哉)’이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지리산 자락에서 학문을 익히고 후학을 양성한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의 글을 읽었다

익히 알고 있는 시조가 아닌 산문(散文)이다.

 

조식은 1555(명종 10. 을묘년) 단성현감(丹城縣監)에 제수되었지만

이를 사직하는 상소문을 명종(明宗) 임금께 올린다

이를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 또는 단성소(丹城疏)라고 한다

단성현(丹城縣)은 지금의 경남 산청군 단성면 일대이다.

 

조식은 단성현감직을 사직하는 이유로

자신의 나이가 예순에 가까운데 학문이 부족하다는 것과 

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막고 백성을 보살필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의 두 가지를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직설적으로 명종임금께 정치를 제대로 하라고 직언한다

몇 대목을 인용해 본다.

 

전하의 국사(國事)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했습니다. 하늘의 뜻이 이미 떠나갔고, 인심 또한 이미 등을 돌렸습니다(抑殿下之國事已非, 邦本已亡, 天意已去, 人心已離).”

 

자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나 깊은 궁중의 한낱 과부에 불과하고, 전하께서는 어리시니 선왕께서 남기신 일개 고아일 뿐입니다. 온갖 천재지변을 어찌 감당하며, 수많은 백성의 마음을 어찌 보살피겠습니까(慈殿塞淵 不過深宮之一寡婦. 殿下幼沖 只是先王之一孤嗣. 天災之百千 人心之億萬 何以當之).”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면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도리를 홀연히 터득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온갖 선()이 모두 갖추어져 모든 교화가 그곳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시행하기만 하면 나라를 공평히 할 수 있고, 백성을 화합하게 할 수 있으며, 위태로운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奮然致力於學問之上, 忽然有得於明新之內. 則明新之內, 萬善具在, 百化由出. 擧而措之, 國可使均也, 民可使化也, 危可使安也).”

 

임금이 임금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않습니다(極不極 則國不國矣)”

 

조식은 상소문에서 

명종임금의 어머니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정권을 장악하여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정면으로 비판한다을사사화(乙巳士禍)와 왜구의 거듭되는 침략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있는데 임금이 제구실을 못 하고 있으니 각성하라고 읍소(泣訴)한다.

 

다름 아닌 왕조시대에, ‘임금은 선왕이 남긴 고아일 뿐이고, 그 모친 문정왕후는 궁중의 한낱 과부일 뿐이라고 대놓고 폄하(貶下)할 때는 아마도 죽기를 각오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식은 멀쩡했다

조식 같은 훌륭한 선비에게 벌을 주는 것을 반대한 신하들의 뜻을 명종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명종은 무능하기는 할망정 협량(狹量)은 아니었던 듯하다[선비들이 대거 살육된 을사사화는 문정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할 때 벌어진 일이었는 데 비해, 조식이 단성소를 올린 것은 명종이 친정(親政)을 할 때의 일이다].

 

이처럼 단성소에서 직언을 한 조식의 진면모를 한층 더 보여주는 글이 있으니

바로 그의 민암부(民巖賦)’이다

민암(民巖)위험한 백성이라는 뜻이다

그 글의 몇 대목을 보자.

 

백성은 물과 같다. 백성은 임금을 떠받들기도 하고 나라를 뒤집기도 한다(民猶水也. 民則戴君, 民則覆國).”

 

임금 한 사람이 선하지 않은 것이 으뜸가는 위험이다(由一人之不良 危於是而甲仍).”

 

끝없이 세금을 거두는 것은 위험을 쌓음이요(稅斂無藝 巖之積也), 절제 않는 사치는 위험을 세움이요(奢侈無度 巖之立也), 탐관오리가 관직에 있는 것은 위험으로 가는 길이요(掊克在位 巖之道也), 형벌을 제멋대로 시행하는 것은 위험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刑戮恣行 巖之固也).”

 

실로 통렬한 꾸짖음이다.

특히 다음 대목은 위정자의 폐부를 찌른다.

 

 

백성의 마음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그러나 폭군만 없으면 다 같은 동포이다. 그런데 동포를 원수로 여긴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險莫危於民心. 非暴君則同胞. 以同胞爲敵讎, 庸誰使而然乎).”

 

500여 년 전 초야에 묻혀 있던 선비의 글이 21세기의 지금도 그대로 피부에 와 닿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위정자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으니

그에 대한 꾸짖음 또한 여전히 유효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본래 다 같은 선량한 백성인데

어쩌자고 이리저리 편을 갈라 서로 원수처럼 반목하게 한단 말인가.

 

전술한 단성소의 한 구절이 마치 절규처럼 맴돈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않습니다(極不極 則國不國矣)”

 

 

10.마르첼로-오보에협주곡C단조-알레그로.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