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2021.03.03 22:14

우민거사 조회 수:145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

 

오세영 시인이 쓴 ‘2이라는 시의 첫머리 부분이다.

시인은 그렇게 2월을 노래했지만촌부는 위 시의 2월 자리에 3월을 떠올린다.

 

신축년의 시작을 설렘으로 장식한 게 바로 엊그제인데모레면 벌써 3월이다.

그 사이 소대한(小大寒)은 물론이고입춘(立春), 설날우수(雨水)가 지나고,

어제는 정월 대보름이었지요경칩(驚蟄)도 1주일밖에 안 남았다.

 

대동강 물은 이미 녹았을 것이고,

봄날인 줄 알고 겨울잠에서 깨어나 땅 밖으로 얼굴을 내밀던 개구리가 

추위에 깜짝 놀라 목을 움츠릴 날도 지척에 다가온 것이다.

산울림이 부른 노래의 제목처럼 말 그대로 아니 벌써”이.

어쩌면 그리도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일까.

 

사람들이 벌써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는 흔히 그 안에 아쉬움이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지다.

그래서

어영부영하다가 벌써 (또는 OO )이 지났네,”

벌써 (또는 OO )이 지나도록 무얼 했지?”

하고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된다.

 

어제(2월 26마침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벌써 백신을 맞았는데우리는 뭘 하고 있다가 이제야 겨우 시작이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고작 102번째(OECD 국가에서는 꼴찌국가밖에 안 된다는 것인가.

아니 도대체 이 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던 나라 맞나?

국민의 자존심에 멍이 든 걸 아는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는지

위정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K-방역의 자화자찬(自畵自讚)에 바쁘다.

 

아서라,

벽촌(僻村)의 한낱 노부(老夫)가 나랏일을 걱정하는 것은 실로 주제넘은 짓이다.

책장을 덮고 문밖으로 나서자, 

보름달(음력 1월 15일이 아닌 16즉 양력 2월 27일의 달이 더 둥글다)이 동산 위로 휘영청 떠오르고 있다.

어느 옛 시인이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에 이어 다섯 번째 벗으로 삼은 바로 그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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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보름달이니 정읍사(井邑詞)의 이 노랫말처럼 굳이 빌지 않아도 높이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멀리멀리 세상을 환하게 비출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여인네가 집으로 돌아오는 낭군의 발길을 환하게 비춰달라고 간절히 빌지만

촌부는 달님에게 그냥 소박한 소망을 전해 본다. 

 

달님온 누리에 광명의 빛을 비추어이 나라와 백성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보름달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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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저 둥근 보름달은 하루만 지나면 다시 이지러지리라.

둥글게 되기까지 보름이나 걸렸는데이지러지는 것은 순간이니 허망하다.

개인이든 나라든

세우기는 어려워도 허물기는 쉬운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비록 봄이 오는 길목이긴 하지만

밤이 깊으니 아직은 쌀쌀하다.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시 望月(망월)’를 읊조리며 집 안으로 총총걸음을 옮긴다.

 

未圓常恨就圓遲(미원상한취원지)

圓後如何易就虧(원후여하이취휴)

三十夜中圓一夜(삼십야중원일야)

世間萬事摠如斯(세간만사총여사)

 

안 둥글 때는 더디게 둥그는 것이 늘 안타까웠는데

막상 둥근 뒤에는 어찌하여 이리도 쉬 이지러지나.

서른 밤 가운데 둥근 것은 단 하루 밤뿐이니

세상만사가 모두 이와 같구나.

 

아니벌써+월광소나타1.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