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틈의 풀 한 포기

2022.06.10 23:15

우민거사 조회 수:120

 

나흘 전에 망종(芒種)이 지나고,

바야흐로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의 여름이다.

이에 부응하듯,

이른 아침(새벽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이면 찾는 우면산에 녹음이 짙어질 대로 짙어졌다.

오늘처럼 전날 비가 온 후면 공기도 상큼하기 그지없다.

푸르름에 눈이 호강하고, 맑은 공기에 코와 허파가 호사를 누린다.

 

매일 보다시피하는 돌고래 바위 위에서 자라고 있는 풀이 새삼 눈길을 끈다.

그동안 마음이 없어서 보고도 몰랐나 보다(心不在焉 視而不見).

커다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저 놀라운 생명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필부의 눈에는 그저 불가사의(不可思議)할 따름이다.

그런데 반대로 벌써 낙엽이 되어 떨어진 나뭇잎은 뭐람.

그 잎사귀를 주워서 벤치 위에 올려 놓아본다.

이 느낌을 무어라 설명할거나.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필부가 시인이 아닌 한낱 장삼이사(張三李四)인 걸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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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놀라운 생명력이 어찌 풀 한 포기에만 국한된 일이랴.

 

오늘이 610일이다.

96년 전인 1926. 6. 10.은 순종황제의 장례식날이었다.

이날 서울의 학생들이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거리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으나, 이 운동은 3·1 운동 후 한때 침체되었던 독립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9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나라는 잔악한 일제로부터 마침내 독립을 하였고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비록 온갖 풍상과 많은 곡절을 겪었지만,

지금은 당당히 세계 속의 한국이 되어,

이른바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눈부신 경제발전은 개발도상국들의 전범(典範)이 되었고,

우리의 노래, 영화, 음식은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골프, 양궁, 쇼트트랙 선수들이 세계를 제패하는 것은 당연하여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니고,

올해는 축구의 손흥민 선수가 영국 프로축구 프레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놀라운 생명력을 세계 만방에 떨친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사회, 경제, 문화, 스포츠의 각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한 나라이다 보니,

그 안에 살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성과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있다.

도대체 21세기에도 3대를 세습하여 가며 폭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북한의 김씨 왕조는(냉정히 말해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니) 그렇다 쳐도,

국내 정치 상황은 무언가.

 

기업은 2, 정치는 4류다.”

()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5년 중국 베이징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꼴찌는 3류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회장은 한국 정치를 3류도 아닌 4류라고 했다.

바닥보다 더 아래인 지하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포스코, LG화학, SK하이닉스...

기업은 세계 1류의 반열에 들어섰는데, 정치는 여전히 4류를 못 벗어나고 있다.

 

지난 정권의 포퓰리즘, 내로남불과 편가르기의 극치에 치를 떨던 국민은

지난 4.9. 실시된 20대 대통령선거에서 마침내 정권의 교체를 선택하였고,

그 결과 5. 10. 새 정부가 출범한 후 한 달이 지났다.

아직 새 정부의 공과를 논하기에는 때가 이르지만,

작금의 인사행태를 보노라면 일말의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2022. 6. 10.자 동아일보의 이기홍 칼럼 속 다음과 같은 충언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검찰·기재부 편중 인사 조짐에 대한 우려가 제기돼 왔지만 윤 대통령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민변 도배발언도 진의와 무관하게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내 뜻대로 간다는 포고문처럼 들릴 수 있다.
보스는 소신과 용기, 의리만 있으면 되지만, 정치지도자는 민심의 바다에서 노를 저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한 노꾼을 구해도 파도가 거세지면 헤쳐가기 어려워진다.
귀에 말뚝을 박은 것처럼 남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을 말뚝귀라고 한다. 최악의 리더는 세뇌되듯 어떤 결론이 머리에 주입돼 말뚝귀가 돼버린 상태에서 즉흥적 일방적 결정을 하고 집착하는 지도자다.
전환시대의논리 리영희유의 낡은 이념적 사고의 틀 안에 웅크린 상태에서 영화 보고 탈원전을 결정하고 끝까지 집착한 문 전 대통령이 바로 그런 사례였다. 윤 정부는 그런 문 정권의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닮거나 덜 하는 것만으로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집권 초기에 100년 집권을 운운하던 사람들이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내놓은 이유를 깊이 되새길 일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 한 5년 후에 다시 정권을 내놓아야 할지 모른다.

그렇게 4류의 정치가 반복된다면 우리의 앞날은 암담할 뿐이다.

제발 진정한 공정과 정의가 흐르는 사회가 되길 기대하여 본다.

이제는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사전 속의 단어로만 존재하길 바란다면 필부의 허황된 소망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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