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에 쓰다(夏日卽事)

2022.07.06 00:24

우민거사 조회 수:272

 

   하지(夏至)가 지나고 내일이 소서(小暑)이다.

   장마철답게 비 소식이 이어지고, 30도를 넘는 고온에 습도마저 높은지라 찌는 더위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날씨가 계속된다.

   농촌에서는 모내기가 끝난 모들이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여, 나날이 짙어가는 초록의 향연에 이를 바라보는 촌부의 눈까지 초록으로 물든다.

 

    소서(小暑)는 보통 75일 전후이다(올해는 77). 그 소서(小暑)의 절기가 되었다는 것은 한 해가 반환점을 돌았다는 이야기이다.

    눈 뜨면 하루가 가고, 한 주일이 가고, 한 달이 가더니, 어느새 올 임인년(壬寅年)의 반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세월이 기가 막히게 빨리 지나간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이내 연말이 되리라.

 

     그렇게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이 안타까워 가능한 한 산천경개(山川景槪)를 찾아 나선다. 물론 주말이 되면 금당천변에서 자연과 더불어 지내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2% 부족한 느낌이 들어 산으로, 들로, (),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다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는 흰 머리가 도로 검어질 리는 없지만, 몸부림조차 치지 않고 맥없이 지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지난 주말(2022. 7. 2.)에 무더위 속에서 관악산을 올랐다. 서울법대에 다니던 학창 시절부터 이제껏 무수히 오른 산이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감흥에 젖어 든다. 물론 혼자 가거나, 아니면 함께 가는 도반(道伴)이 누구냐에 따라 감흥의 정도에 차이가 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관악산이 그 옛날에는 풍수상으로 임금님이 계신 한양 도성에 대드는 역산(逆山)이고 불()의 산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일 따름이다.

       서울대학교 공학관의 등산로 입구에서 아침 730분부터 오르기 시작했는데도 산객들이 줄을 잇는 것은 그만큼 친숙한 공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산행을 시작하여 1시간 정도 부지런히 올라가면 말바위능선에 다다른다. 이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정상 부근의 지상 레이더관측소로 향하는 암릉구간은 다소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스릴이 있고 동서(東西) 양쪽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하고 있는 연주대(戀主臺)는 언제 보아도 정겹고 멋지다. 기도처로는 그야말로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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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능선의 암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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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대]

 

     산행을 마치고 여주 우거로 향했다. 다소 피곤하긴 했지만, 장마가 계속되어 정원이 밀림이 되었을 게 뻔한데 어찌 아니 가랴. 도연명의 표현대로 전원이 장무(田園將蕪)하니 호불귀(胡不歸)’이다.

      염천지하(炎天之下)에서 장미와 백합을 뒤덮은 잡초들을 제거하노라니 땀이 비 오듯 한다. 장미와 백합이 뭐 하다 이제야 우리를 구해 주느냐. 그동안 갑갑해 죽는 줄 알았다고 원망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내 불찰이다. 심어만 놓고 장마를 핑계로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으니...

  

     점심식사도 제대로 못 한 채 잡초들과 사투를 벌였다. 다 끝내고 나니 나름 대견하다. 땀을 흘린 뒤의 이 뿌듯함을 대처(大處)에서 어찌 느끼랴. 이게 바로 촌에서 지내는 즐거움이다.

     땀을 씻고 백호은침(白毫銀針)을 한 잔 타서 휴휴정(休休亭)에 앉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촌부가 신선으로 변신한다고 해서 뉘 있어 흉을 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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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제거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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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은침]

  

    신선놀음에 시() 한 수를 떠올린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하일즉사(夏日卽事)'라는 시다.

 

輕衫小簟臥風欞(경삼소점와풍령)

夢斷啼鶯三兩聲(몽단제앵삼량성)

密葉翳花春後在(밀엽예화춘후재)

薄雲漏日雨中明 (박운루일우중명)

 

홑적삼에 대자리 펴고 바람 난간에 누웠는데

꾀꼬리 두세 번 우는 소리에 단잠을 깨네.

빽빽한 잎새에 시든 꽃은 봄이 갔어도 남아있고

옅은 구름 사이로 나온 햇빛이 빗속에도 밝구나.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사리사욕을 챙기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위정자(僞政者. 그들은 '爲政者'가 아니다)들의 꼴불견이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한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그들에게 위 시()를 들려주며 이렇게 한마디 하면 어떨까.

 

  “제발 탐진치(瞋痴)의 수렁에서 벗어나라. 

  그러지 못할 거면 대자리 펴고 낮잠이나 자라!

 

 

Clarinet Concerto in A K622_ II. Ad....mp3 (모짜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