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이 몇 날이랴

2020.04.19 23:23

우민거사 조회 수:158


오늘이 곡우(穀雨)이다.
그리고 종일 비가 내린다.
본래 곡우의 의미가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것이니,
‘곡우’라는 절기 이름에 걸맞는 비인 셈이다.
한동안 비 소식이 없어 날이 가물었는데,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오늘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
천지의 조화가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봄비치고는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그 소리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책장을 덮고 냇가로 나갔더니,
비 듣는 소리에 운치가 묻어나고,
제방의 꽃들과 백로는 흥이 절로 나는 듯 춤을 춘다.

 

봉림대군(조선 효종임금의 왕자시절) 흉내를 내 볼거나.

 

금당천에 비 듯는 소리 그 무엇이 우습관데
백로와 봄꽃들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춘풍이 몇 날이랴 웃을 대로 웃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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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천과 제방]

백로가 비에 놀라 날아오르고,

봄꽃들이 바람에 몸을 흔드는 모습이

마치 웃고 떠들며 춤추는 듯하다.

헌데 그 상큼한 봄바람이 얼마나 오래 불겠나,

봄날이 제아무리 즐겁다 한들 겨우 한때이다.

그러니 그냥 내버려 둘 일이다.    

 

비가 제법 내리니 곳곳에 물이 가득하다.
일찍이 도연명(陶淵明)이 표현한 그대로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이다.
그러지 않아도 농촌에서는 곡우 즈음에 논에 물을 가득 댄다.

바야흐로 농사철이 시작되는 것이다.


겨우내 얼었던 논둑에 물이 새지 않도록 가래질을 하는 것이 청명 즈음의 일이라면,

그 논에 물을 가득 채운 다음 쟁기로 갈고 써레질을 하여 못자리를 만드는 것이 곡우 때의 일이다.

촌부가 어릴 때만 해도 소가 그 쟁기와 써레를 끌었는데,

지금은 그 일을 트랙터가 대신한다.

기계문명의 발달로 짧은 시간에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할 수 있어 좋긴 한데,

그만큼 워낭소리를 듣는 낭만은 먼 옛날의 추억 속에서나 반추(反芻)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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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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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레질하는 트랙터. 냇가의 백로가 이곳으로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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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레질하는 소. 자료사진]

 

아무튼 곡우(穀雨)가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려면 비가 와야 한다는 것이 속설이다.

그래서 속담에도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거나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 자가 마른다.’고 했고,

촌부는 그게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이건 무언가.

경남 남해나 전북 순창에서는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에 좋지 않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인천 옹진에서는 ‘곡우에 비가 오면 샘구멍이 막힌다.’고 하는데,

샘구멍이 막힌다는 것은 가뭄이 든다는 말이다.

이럴 수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나. 헷갈린다.

 

하긴, 하나의 사물을 놓고 관점에 따라 전혀 상반되게 보는 게 어디 곡우뿐인가. 
지난 4월 15일에 제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집권당인 여당(더불어민주주당+더불어시민당)의 압승(300석 중 180석 차지)과

야당(미래통합당+비례한국당)의 참패로 종결되었다.

그 결과로 여당은 짐짓 표정 관리에 들어갔고, 야당은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유례없는 선거결과를 놓고 한쪽에서는 당연한 귀결이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통탄할 일이라고 한다.

각자 자기가 취하는 입장에 따라 보는 관점이 그만큼 다른 것이다.

 

관점이 ‘다른 것은 다른 대로’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니, 이를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견제와 균형',

이것이 바로 올바른 민주주의의 정립을 위한 요체이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아집과 독선에 빠져 폭주할 수 있는 위험이 늘 도사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동서고금의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그런데 리더십 부재의 지리멸렬하는 야당은 폭주하는 권력을 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일조하기 십상이고, 이는 국민에게는 크나큰 재앙이다.

명색이 제1야당이 시대의 변화하는 흐름에 눈감은 채,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선거에 참패하고도 여전히 구태에 머문다면 희망이 없다.

속히 처절한 자기반성 위에 환골탈태하여 건전하고 힘 있는 견제세력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그것만이 여야는 물론 한걸음 나아가 국민을 위한 길이다.

한낱 촌부의 소박한 소망이 부디 ‘희망고문’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과욕이려나.

 

밤이 깊도록 비가 계속 내린다.
왠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찻물을 끓인다.
남녘에 계신 어느 스님이 지난해 곡우(穀雨) 전(前)에 딴 찻잎 새순으로 만든 우전(雨前)을 보내주셨는데,

귀한 것이라 이제껏 아껴두면서 이따금 꺼내 음미하곤 한다.

코끝을 스치는 그 우전의 향기에 시름을 잊는다.
나무관세음보살.

 

곡우5.jpg

[2019년산 우전]


***병자호란 후 청(靑)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봉림대군이 지은 시조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청강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