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의 꿈

2010.02.16 11:54

범의거사 조회 수:14062

 "ㆍㆍㆍ[선왕(正祖를 가리킴 : 筆者 註. 이하 같음)]께서는 재판과 형벌에도 신중을 기하여 혹시 한 명이라도 억울한 자가 있을까 염려하셨다. 각 도에서 올라온 사안을 심리할 때면 언제나 모시는 신하들이 날이 저물도록 번갈아가며 받아썼지만 선왕께서는 권태로운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다. 규장각에서 선왕이 내리신 판결을 한 데 모아 심리록(審理錄) 26권을 만들었는데, 그 곳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마음을 써서 충분히 심리한 뜻이 엿보였다. 감옥 담당하는 관리로 하여금 감옥을 깨끗이 청소하고 모든 형구도 깨끗이 세탁하게 했으며, 경미한 죄는 즉결로 처리하여 보내게 하고, 곤장이며 목에 씌우는 형구 등도 규격에 맞지 않는 것들은 모두 규격에 맞게 바로잡도록 했다. 그리고 흠휼전칙(欽恤典則)을 편찬하여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셨다. 또 하교하시기를, '唐, 宋에서는 모두 5일에 한 번씩 죄수에 관해 보고하였는데, 우리나라는 10일에 한 번 하고 있으니, 그 10일 사이에 비록 억울한 죄수가 있을지라도 어떻게 스스로 알리겠는가. 지금부터는 해당 관청이 5일에 한 번씩 기록을 보고하도록 하라'고 하셨다."  

  조선왕조실록 중 正祖實錄의 부록으로 대제학 심상규가 지은 '천릉지문(遷陵誌文)'의 일부이다[이는 正祖 사후 21년만에 능을 옮기게 된 것을 계기로 正祖의 측근 신료였던 심상규가 정조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글이다. 全文은 "정조대왕의 꿈"(유봉학 저, 신구문화사, 2001), 234-293쪽에 실려 있다].
  一國의 국왕이, 그것도 그의 말이 곧 法이었을 왕조시대의 君主가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재판을 하였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이런 위대한 조상을 두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다. 잠 못 이루는 밤이다.  

한편 위 글에는 다음과 같은 귀절도 나온다.

  "ㆍㆍㆍ우리나라를 다스리는 법제에 관한 서적으로는 세종께서 경제육전(經濟六典)을 창제하신 것을 시작으로, 세조 때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만들어지고, 성종 때 속록(續錄)이 있었으며, 숙종 때 집록통고(輯錄通考)가 있었고, 영조 때 속대전(續大典)이 있었다. 선왕께서는 법전의 原典과 續典이 각기 따로따로 되어 있어 참고에 불편하다 하여 두 원전 및 속전과 선대 임금의 교령(敎令), 현재의 수교(受敎) 등 법령이 될 만한 것들을 통털어 한 책으로 만들게 했는데, 이것이 바로 대전통편(大典通編)으로서 내외에 반포하여 시행하셨다."

  서양의 법치주의에 관하여만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우리에겐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우리는 왜 우리 것을 이렇게도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