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2010.02.16 11:41

범의거사 조회 수:11191

사랑은 관심에서 잉태되어 느낌으로 발육된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성장하지 못한다. 알아야 사랑도 깊어진다. 깊은 이해와 인식의 뒷받침이 없이 어설피 알거나 잘못 알고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환상이요 거짓이다.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알아야 하고, 알려면 공부를 하여야 한다. 아는 바탕 위에 감정을 쌓고 관계를 튼튼히 해 가면서 사랑도 성장한다.

ㆍㆍㆍㆍ해태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본래 뿔이 하나이고 성품이 충직한데,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자를 들이받고, 사람들이 서로 따지는 것을 들으면 옳지 못한 자를 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옛날 중국 우(禹) 임금 때 법을 맡았던 신하인 고도(皐陶)가 옥사를 다스릴 때 이 짐승을 써서 죄가 있는 사람을 들이받게 하였다든가, 상서로운 짐승이어서 옥송(獄訟)이 잘 해결되면 나타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우리나라에서 해태는 사헌부(司憲府)와 관련이 깊다. 사헌부는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따지고 관원의 비리를 조사하여 탄핵하는 대표적인 사법기관이었다. 그 사헌부의 관헌들은 치관이라 하여 해태가 장식된 모자를 썼으며, 사헌부의 장관인 대사헌은 공복의 가슴과 등에 붙이는 흉배(胸背)의 문양으로, 동급의 관원들이 학을 수놓은 데 비하여, 유독 해태를 수놓았다. 이렇게 사헌부와 해태가 관련이 깊은 까닭에 사헌부 대문 앞에 해태를 돌로 조각하여 세웠던 것이다. 해태는 사헌부 정문 앞에 앉아 그 앞을 지나 궁궐로 들어가려는 관원들에게 행동을 바르게 하고 말을 옳게 하도록 무언의 요구를 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해태가 상징하는 핵심이다.

ㆍㆍㆍ사헌부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의 서편에 예조, 중추부 다음에 있었다. 오늘날의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종합청사 중간 어디쯤 될 것이다. 그 사헌부 정문 앞에 앉아 있던 해태가 지금은 광화문 바로 옆 3-4 미터쯤 되는 곳에 앉아 있다. 그 위치가 사헌부 앞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리는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ㆍㆍㆍ더구나 사람들이 그러한 상징은 인정해주지 않고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는다는 엉뚱한 미신적 의미를 덧씌워 버렸다. 게다가 한 때는 "해태 눈깔 말똥말똥 마루 밑의 닭의 똥..." 하면서 나쁜 눈의 대명사로 해태 눈을 꼽기도 하였으니 이중삼중으로 억울하고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자세히보면 다리도 부러진 것을 이어 붙여 놓았다.

   해태를 다시 제자리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본연의 상징과 의미를 알아주기라도 해야 한다. 그러면 다시 눈을 부릅뜨고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비곡직을 가리려 하지 않을까.  

(홍순민 저,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刊, 1999, 머리말 및 130-132 쪽에서)


  올 봄부터 서울지방법원의 민사항소부장을 맡은 후로는 책을 읽는 일도 쉽지가 않다. 평일에는 늘 夜勤을 해야 하고, 사법연수원 훈장 시절, 평소 못 읽은 책을 읽을 수 있어 한 주일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토요일 오후도(그리고 많은 경우 일요일까지도) 대개는 소송기록과 씨름하면서 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 12시가 지나서야 어쩌다 아직 기운이 남아 있으면 겨우 책을 손에 들게 된다.
  그러다 마침 코 수술을 하느라 1주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하였던 틈을 이용하여 모처럼 法書 아닌 책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 책들 중에 '우리 궁궐 이야기'가 있다. 본래 10월 초에 창덕궁 다녀와서 샀던 것인데, 이제서야 제대로 읽은 것이다. 그 책에 나오는 광화문 옆의 '해태' 이야기가 재미있고 또한 작금의 세태와 아우러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일부를 여기에 옮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