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콘강을 건너야

2010.02.16 11:43

범의거사 조회 수:13663

항생제를 조금씩 자주 쓰다 보면 내성이 생겨서 급기야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주지하는 것처럼, 1991년에 11개부, 1995년에 27개부를 시범재판부로 정하여 집중심리제도를 실시하였으나 두 번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오는 3월로 심리방식의 개선을 위한 3번째 시도를 하게 된다.
다행히도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전국의 모든 합의재판부가 다 시행한다고 하니, 과거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왜냐하면 기존의 미제사건 처리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행정처의 안은 결론적으로 각 재판부에 처리방법을 일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래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 재판부에서 어느 사건은 새로운 심리방식으로, 어느 사건은 종래의 심리방식으로 심리하다가는 결국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관성의 법칙이다.
지금 각 재판부가 가지고 있는 미제사건을 현재의 방식으로, 그것도 현재의 속도로 처리할 경우에도 빨라야 6-8개월(어쩌면 그 이상)은 걸릴 것이다.
그러는 동안이면 안타깝게도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또 축적될 것이다.  

새로운 심리제도가 정착되려면 재판부의 비장한(?) 각오와 대리인을 비롯한 당사자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각오와 협조를 이끌어내는 첩경은 무엇일까?
자율에만 기대하기에는 지난 두 번의 참담한 실패가 말해주듯 현실이 너무 따라 주지 않는다.
이제는 주력군을 포함하여 모두가 루비콘강을 건너야 한다.
척후병이나 신병만 강건너로 보내 보아야 전사만이 기다릴 뿐이다.
주력군이 함께 건너고, 건넌 후에는 다리를 끊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야 전진이 가능하다.
재판부도, 당사자도, 종래의 병행심리방식은 더 이상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인식해야 새로운 심리방식이 정착된다.

기존의 미제사건은 쟁점정리도 신건보다 훨씬 수월하다.....
신건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제사건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만, 그럴 경우 당분간 사건의 적체가 예상되는데, 이것은 이미 새로이 집중심리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과도기적 현상으로 각오한 일이 아니던가.

시범재판부가 아닌 모든 재판부가 새로운 심리방식을 취하듯이, 신건만이 아닌 모든 사건을 새로운 심리방식으로 전환하지 않고는, 관성의 법칙에 지배될 가능성이 너무 크기에 몇 자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