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대회 하던 날

2010.02.16 11:01

김동현 조회 수:17287

체육대회 하던 날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결승점에 쓰러지던
달음박질을 끝으로
우리의 한 젊은 날이 스러졌다

피로에 압도당한 육신들은 버스좌석 어느 곳에
쓰러져 잠이 들었으리라

연수원 건물 앞에 송사리떼처럼 모여든 버스에서는
그리운 모습을 한 벗들이 쏟아져 나오고
하나씩 자욱한 불빛 내리는 곳으로 나방처럼 모여들었다

비릿한 돼지고기 살점에 김치를 얹고
우리는 하얀 꿈 한 사발씩을 나누어 먹었다
밤은 점점 치달아 가는데
꺼지지 않고 어둠을 비추는 법원청사의 불빛은
우리의 미래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믿을 수 있다
이 사람들의 눈은 내게 약속하고 있으므로

이 순간이 지나면 이들은 하나같이 빛의 씨앗들이 되어
세상에 깊숙히 드리워진 어둠 속에 숨어들어가
싹을 틔우게 되리라
세월이 흐르면 나는 또한 목격할 수 있으리라
환희에 찬 빛의 열매들을 거두어 오는
이들의 모습을
그때가 되면
세상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것인가

축구는 졌지만 우리는 얻은 것이 있다
민교수님은 앞으로 수업이 늘어질 때마다
오늘 밤 헹가레의 낙상(落傷)이 자꾸만 아파올 것이다
축구는 졌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말은 없어도 서로를 향한 그윽한 눈길은
아마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긴 긴 하루의 전쟁을 마치고 우리는 흩어졌지만
날이 밝으면
다시 이 곳에 하나씩 모여들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지만
또한 사랑하지 않는 것만큼 마음 아픈 것도 없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들어가기 위해 하루를 살게 될 것이다

밤이 깊어가는만큼 우리의 믿음도 따라서 깊어가고
촘촘히 붙어앉은 어깨는 밤 공기도 차갑지 않다

신화가 되어버린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쓰러져 가는 육신을 부축하는
뿌듯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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