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동지(冬至)이다.

 

한 해 중에서 밤이 제일 긴 날이다.

햇빛이 비치는 낮이 짧고 그만큼 밤이 기니 추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호랑이가 불알을 동지에 얼리고 입춘에 녹인다”는 속담이 있고,

나아가 “동짓날에 날씨가 따뜻하면 다음 해에 질병이 돌아 사람이 많이 죽는다”는 속설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 절기의 속성상 동짓날에는 당연히 추워야 한다.

그런데 기해년(己亥年)의 오늘, 동지에는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는 고사하고 평년보다 따뜻할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도 전해진다.

이쯤 되면 겨울 실종이다. 한반도의 온난화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오지 않는 추위야 하늘의 소관이니 한낱 미물(微物)에 불과한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기나긴 밤을 보내야 하는 범부들에게는 그래도 동지가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기나긴 밤에 야식으로 먹는 팥죽의 맛이 별미이다.

21세기에 팥죽을 쑤어 옛날처럼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낼 일도 없고,

장독과 헛간 같은 집안 곳곳에 놓아둘 일도 없지만,

동치미를 곁들인 팥죽의 맛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어서 음귀(陰鬼)를 쫓는다는 것까지는 생각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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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의 스님들이 정성스레 쑤어 동치미와 함께 보내주신 팥죽의 맛이 기막히다.

그 맛을 음미하며 목은(牧隱) 산생의 시를 한 수 떠올린다.

 

冬至鄕風豆粥濃(동지향풍두죽농)
盈盈翠鉢色浮空(영영취발색부공)
調來崖蜜流喉吻(조래애밀류후문)
洗盡陰邪潤腹中(세진음사윤복중)

 

동짓날 풍습대로 팥죽을 되게 쑤어
청자 사발에 가득 담으니 짙은 빛깔 띠는구나
벼랑에서 채취한 꿀을 타서 목구멍으로 흘려 넣으니
삿된 기운 다 씻겨 나가 뱃속이 든든하네

 

목은牧隱) 선생은 팥죽에 꿀을 타서 먹은 모양이다. 당시의 풍습이었나 보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설탕을 타서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촌부는 가미를 하지 않은 담백한 것에 더 끌린다.

아무려면 어떠랴, 그야말로 취향에 맡길 일이다.

그나저나 동짓날 기나긴 밤에 먹는 그 팥죽을 더불어 즐길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아래 시조를 읊조린 황진이(黃眞伊)의 마음이 그랬을까.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밑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고운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동지가 지나면 낮이 다시 길어진다.

그리고 곧 해가 바뀌어 경자년(庚子年)의 창이 열린다.

극성을 부리던 음이 기운이 쇠하면 양의 기운이 찾아오듯,  어둠의 끝에서 여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온갖 분야에서 혼돈에 혼돈을 거듭하여 기해년 내내 마음 편할 날이 없던 범부들에게 경자년 새해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려나.

황진이가 고대하던 ‘고운 님’의 모습이려나.... 그러기를 소망하여 본다.

적어도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권근(權近. 1352-1409)이 동짓날에 걱정하던 아래 모습만큼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大道有興替(대도유흥체)
浮生多是非(부생다시비)
仲冬天氣暖(중동천기난)
宿霧日光微(숙무일광미)
朝市風流變(조시풍류변)
郊墟煙火稀(교허연화희)
時危無補效(시위무보효)
袍笏謾牙緋(포홀만아비)

 

대도(大道)에도 성쇠(盛衰)가 있고
덧없는 인생에는 시비도 많은데,
동짓날에 날씨가 따뜻하니
짙은 안개에 햇빛조차 희미하구나.
조정과 저잣거리는 풍속이 변하였고 
들녘은 텅 비어 밥 짓는 연기조차 드문데,
위태로운 시절에 아무런 보탬도 없이
헛되이 비단 관복(官服)에 큰 띠만 둘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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