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의 마지막 날이자 주말이다.

일주일 전에 소설(小雪)이 지나고 분명 겨울 문턱으로 들어섰건만,

아직은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지 않았다

기상청의 날씨 전망에 따르면, 올겨울은 예년에 비해 덜 추울 거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위보다는 추위가 더 부담으로 다가오는 촌부의 처지에서는 반가운 이야기지만,

그래도 겨울이면 겨울답게 추워야 하는 게 만물이 돌아가는 이치가 아닐는지.
 
소설이 지나고 곧 대설(大雪)이 다가올 터이니,

판소리 단가 ‘사철가’의 한 대목처럼

“낙목한천(落木寒天) 찬 바람에 백설(白雪)만  퍼~~~얼 펄 휘날리어 으~~~~은세계(銀世界)가 되”리라고 기대했는데,

그래서 바야흐로 겨울의 참맛이 날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모양이다.

지난해 이맘때는 큰 눈이 내려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이었는데,

대설을 일주일 앞둔 내일, 2019년의 12월 1일에는 전국적으로 눈 대신 비가 온다고 한다.

 

겨울의 금당천변(金堂川邊) 우거(寓居)에서 홀로 주말을 보내는 촌부에게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산과 들이 하얗게 덮인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봄날이면 모를까,

바야흐로 엄동지제(嚴冬之際)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지공선사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새삼 눈을 기다리는 소녀적 감정이 남아 있는 것은 뭔가.

안팎으로 마당 가득한 눈을 쓸려면 적지않이 힘이 드는데 말이다.

일찍이 승환공이 촌부더러 질책한 것처럼 아직도 철이 덜 들은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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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가운데 철을 잊고 피어 있는 장미의 밑동에 은박지를 둘렀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한겨울 추위를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담장을 따라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것들과는 달리

군데군데 나 홀로 있는 장미들은 아무래도 추위에 약할 것 같다.

꽃이 다 지고 나면 윗부분을 전지(剪枝)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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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는 요사이 들어 촌에서 지내는 즐거움을 부쩍 더 느끼고 있다.

이달 초에는 여름에 직접 씨를 뿌리고 키운 무와 배추로 김장도 했다.

지난주에는

가을 내내 진한 향기를 뿜어내며 벌을 부르다 이제는 시들어버린 국화의 밑동을 잘라 정리하고,

닭장도 청소했다.

닭장에서 퍼낸 흙은 대추, 앵두, 모과, 블루베리 같은 유실수의 좋은 밑거름이 된다.

 
이제껏 삶의 대부분을 책상머리에서 보낸 백면서생(白面書生)에게는

그 하나하나의 일이 다소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일하느라 굽혔던 허리를 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곤 한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와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갖가지 비리 의혹과 여야의 극한적인 대립,

한동안 조용한가 싶더니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하는 집회와 시위,

나날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어려운 경제 사정,

묘책은 보이지 않고 실타래처럼 얽혀가고 있는 대외관계,

이제는 대놓고 연이어 무력시위를 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 


적어도 금당천변의 우거에 머무는 동안에는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낼 수 있어 좋다.

한낱 촌부 주제에 분에 맞지 않는 우국지심(憂國之心) 운운할 것도 아닌지라,

그냥 평범하게 안빈낙도(安貧樂道)에 젖어 들 뿐이다.


감히 다산(茶山)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不亦快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