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신을 자랑스러워하길!(연수원 29기 사은회 치사)

2010.02.16 11:15

범의거사 조회 수:12249

  자기자신을 자랑스러워하길!

먼저 이런 성대한 자리를 마련하여 준 29기 7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998. 3. 2. 설레는 마음으로 여러분을 처음 대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오늘 여러분을 마지막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孟子는 천하의 영재를 모아 가르치는 것을 君子의 세 번째 즐거움으로 꼽았지만, 저에게는 여러분을 만난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家門의 영광이었습니다.

이제 그 즐거웠던 날이 다 지나간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얼마 되지 않는 얄팍한 지식을 내세워 여러분을 야단치고, 때로는 혼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고, 어찌 보면 蠻勇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같이 배운다는 생각에, 그리고 법조 선배로서 미미하나마 여러분보다 먼저 겪었던 경험을 하나라도 전한다는 생각에, 때로는 밤잠을 설쳐가며 지내온 기간이었습니다.

작년 9월 여러분을 상대로 한 마지막 강의 시간에도 말했듯이, 지난 2년의 기간 동안에 愛憎이 교차할 때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제가 여러분을 생각하는 것과, 배우는 입장에서 여러분이 저를 생각하는 것이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러한 愛憎의 교차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희로애락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느끼는 마음만이 존재할 뿐이기에, 孔子는 그러한 감정을 외부로 나타내지 않는 것이 곧 中庸(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이라고 說破하셨지만, 한낱 匹夫에 지나지 않는 저에게는 이는 요원한 이야기였습니다. 때로는 웃고 기뻐하다, 때로는 성내고 얼굴을 붉혔던 나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그래도 막상 여러분과 헤어져야 할 순간이 되니, 즐거웠던 추억들이 더더욱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강의실에서, MT장에서, 운동장에서, 산에서, 스키장에서 보냈던 즐거웠던 순간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추억의 저 편으로 사라져 가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기만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사법연수원의 문을 벗어나 사회로 나갑니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여야 하는 무수히 많은 선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배우자의 선택과 직업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법무관을 가야 하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로 그 중요한 직업을 마침내 선택하였습니다. 그것이 변호사이든, 판사이든, 검사이든, 아니면 그 밖의 다른 직역이든, 여러분은 이제 그 선택한 길을 가야 합니다.

그 어느 길이든 결코 쉬운 길이 아니고, 갖가지 난관이 놓여 있는 험난한 길이긴 하지만, 여러분은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한 발 한 발 꾸준히 자기의 길을 가는 법조인, 언제나 법을 올바르게 쓰려고 노력하는 훌륭한 법률가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하여 훗날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나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에, 만에 하나 저의 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주십시오. 그 때는 訓長이 아니라, 여러분의 선배로서, 여러분의 동료로서, 같이 고민하며 여러분 곁에 다가가겠습니다.

29기 7반 여러분,
그 동안 저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부담감, 마음의 벽들은 오늘 이 자리를 끝으로 다 떨쳐 버리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더 이상 피교육자가 아니고, 저 또한 더 이상 訓長이 아닙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법조의 한 울타리 속을 살아가는 똑같은 善男善女일 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렵니다.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은, 그냥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더 소중한 법이니까요.

그 동안 믿고 따라준 여러분의 성원과, 이런 귀한 자리를 마련해 준 여러분의 정성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00. 1. 14.
                                                 凡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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