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

2017.04.28 12:48

우민거사 조회 수:156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살찌게 한다는 곡우(穀雨)가 지난 주(20일)에 지났다.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도 요새 며칠은 보통수준을 유지하고,

날씨 또한 화창하여 전형적인 봄날이다.

벚꽃과 개나리가 진 자리를 연산홍과 철쭉 등이 대신하여 산야(山野)는 여전히 백화제방(百花齊放)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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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준비하기 위하여 물을 가득 채운 논에서

봄의 또 다른 전령인 개구리가 초저녁부터 목청을 돋우더니,

그 개구리가 잠들려는 듯 조용해져 더불어 자리에 누우려 하자,

이번에는 수탉이 울어 노옹(老翁)을 뜰로 불러낸다.

그러자 어디선가 도화(복사꽃)의 향기가 은은하게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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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말해 주는 많은 꽃 중에서 붉은 도화(복사꽃)를 빼놓을 수 없다.

얼마 전 충주의 감곡 근처를 지나는데

지천으로 핀 복사꽃을 보느라 잠시 넋을 잃을 뻔하였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주인공이기도 한 이 꽃은 언제 보아도 참으로 요염하다.

그래서 오랜 세월 많은 시인 묵객의 동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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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가 지난 잠 못 이루는 밤에 그런 시 중에서 하나를 골라 보았다.

 

谷口桃花發(곡구도화발)
南隣照眼明(남린조안명)
詩人隨意往(시인수의왕)
春鳥得時鳴(춘조득시명)
世路年年改(세로연년개)
天機日日生(천기일일생)
晩風吹白髮(만풍취백발)
川上不勝情(천상불승정)

 

골짜기 어귀에 복사꽃 만발하니
앞마을 이웃들의 눈이 부시네.
시인은 맘 내키는 대로 길을 가고
봄새는 제철 만난 듯 지저귄다.
세상 일이 매년 이리저리 바뀌어도
천기(天機)는 매일같이 되살아나네.
저녁 바람이 흰 머리에 불어오자
냇가에서 마음을 가누지 못하누나.

 

조선 영조 때의 시인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가 지은 시이다.

 

복사꽃이 눈부시게 활짝 핀 세상에 누군들 산으로 들로 꽃구경 가고 싶지 않으랴.
촌부가 사는 마을에도 복사꽃이 피어 무릉도원이다.
들뜬 기분을 못 이겨 발길 가는 대로 꽃구경을 나서자
제철을 만난 새들이 흥겹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사가 험하게 변해가든 말든 
자연의 생명은 아랑곳없이 활기차게 되살아난다.
종일토록 꽃구경 다니다 날이 저물어 냇가에서 들녘을 바라보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흰 머리카락이 날린다.  
불현듯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다.

봄날의 활기가 찬란하게 피어오르는 때 초로가 된 시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정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복사꽃은 예로부터 시인 묵객뿐만 아니라 역술가에게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다. 
남자든 여자든 사주에 도화살(桃花煞)이 끼면 과도한 성욕으로 재앙을 당하게 된다고 한다.

도화살이 낀 여자는 얼굴이 홍조를 띤다는 속설이 있고,

이런 여자는 한 남자로는 음욕을 채우지 못하여 여러 번 개가하게 되며,

이런 여자를 만난 남자는 몸이 쇠약하여 죽게 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사주에 도화살이 낀 남자는 호색하는 성질이 있어

주색(酒色)으로 집안을 망하게 한다고 한다.

옹녀와 변강쇠가 바로 이들에 해당하지 않을는지.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늘날에는 도화살을 옛날처럼 부정적으로만 해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성의 주목을 끌고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긍정적 요소로 여기며,

특히 특유의 끼가 있어야 대성할 수 있다고 믿는 연예인들에게는

사주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도화살에 관한 생각은 자유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으로 갑자기 치러지게 된 대통령 선거에 무려 14명이나 되는 후보자가 나선 것도

다 그들의 생각이 자유롭기 때문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그들 중 누구에게 투표를 하든 자유이다. 
다만, 국민의 그 자유로운 투표가 현명한 결과로 이어져,

목하 대내외적 환경이 험난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에

무릉도원이 활짝 펼쳐지길 기대한다면 연목구어일까.

초로의 촌부 가슴은 왜 이리 답답한 것일까.

말 그대로 憂心輾轉夜(우심전전야)이다.

 

정유년 곡우지제에

금당천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