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을 심은 뜻은

2017.05.14 23:49

우민거사 조회 수:9177

 
부처님 오신 날도 지나고,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한 갑작스런 대통령선거도 끝났다.
빗방울이 오락가락하고
세찬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봄날 주말의 밤이 깊어간다.


세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풍우가 알 리 없으니 관여할 리도 없겠지만,
올봄 들어 더욱 심해진 미세먼지와 황사로 맑은 하늘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데,

절묘하게도,
부처님 오신 날에는 바람이 불어 푸른 하늘이 열리고
대통령선거일 다음 날에는 전날부터 내린 비로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 시야가 탁 트였으니,
웬 조화일까?
자연의 이치를 알 수 없는 범부로서는
무슨 이유로든 그저 맑은 하늘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가운데,
부처님이 오신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자비행이 널리 펼쳐져

소외 받고 고통 받는 이웃이 다함께 행복해지는 극락정토가 구현되고,
목하 나라 안팎으로 수많은 난제에 직면하여 있는 상황에서

새 정권의 출범을 계기로 국가안보가 튼튼해지고 경제가 호전되는 국면이 전개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는지.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정치권이 편 가르기는 그만하고

온 국민이 일치단결할 수 있도록 이른바 ‘대통합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많은 국민의 소망일 터인데,

과연 그런 바람이 얼마나 이루어질는지 모르겠다.

 

이런 시(詩)가 있다.


愛此梧桐樹(애차오동수)
當軒納晩淸(당헌납만청)
却愁中夜雨(각수중야우)
翻作斷腸聲(번작단장성)


                내가 오동나무를 좋아한 것은
                해질 무렵 맑은 그늘 드리워서인데,
                한밤중에 비라도 내리면 어떻게 하나
                창자를 끊는 소리 간단없이 낼 텐데.


이모(李某)씨라는 17세기 조선 여류시인의 작품이다.


집 주변의 나무 가운데 오동나무를 제일 좋아하는 것은
해질 무렵이면 방안으로 들어오는 뙤약볕을 그 그늘이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오동나무가 미워질 때가 있다.
밤이 깊어 비라도 내리게 되면 잎사귀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이 깨고,
그렇게 되면 임을 그리는 애끓는 마음에 긴긴 밤을 지새우게 된다.
차라리 저 오동나무를 베어버릴거나. 


시인이 기꺼이 오동나무를 심은 이유가 땡볕을 가리라는 것이지 남의 애간장을 태우라는 것이 결코 아니듯이,
작년 후반기부터 혼란을 겪으면서 전임 대통령을 탄핵하여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권을 출범시킨 것은
보다 반듯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것에 다름 아닐진대,
그런 염원을 외면하고 또다시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 이제는 더 이상 없어야겠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차라리 오동나무를 베어버리고 싶듯이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봄밤이 깊어 가는데,
우심전전야(憂心輾轉夜)하고 있는 촌자(村子)의 귀에는
창가에 듣는 무심한 빗소리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