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루의 미(美)

2019.10.27 23:33

우민거사 조회 수:245


10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말 그대로 만추(晩秋)이다.


전남 장성의 백양사와 그 산내 암자인 천진암에 다녀왔다.
2017년 10월에 이어 2년 만이다. 두 절의 스님들도 뵙고 단풍 구경도 할 겸 나선 길이었다. 
스님들은 여전하시고 천진암의 유명한 공양도 한결같은데,
예년에 비해 기온이 높은 데다 가을비가 잦고 툭하면 태풍까지 한반도를 찾아오는 통에,
백양사의 얼굴인 아기단풍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날씨가 계속 맑고 일교차가 심해야 단풍이 예쁘게 물들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될 일이던가.
사람의 힘을 벗어난 영역이니 어찌하겠는가.


그래도 쌍계루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모습만큼은 금당천 촌자의 발걸음을 능히 멈추게 하였다.
그 쌍계루는 백양사 앞의 두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세운 것이니, 어디까지나 인력으로 한 것이고, 이처럼 적어도 사람의 힘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만큼은 그 힘과 지혜를 어디에 어떻게 쏟느냐에 따라 명품이 탄생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주위와의 조화를 무시하고 세워,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흉물 같은 조형물이 어디 한둘이던가.

 쌍계루1.jpg

[쌍계루]


적재적소가 강조되는 것이 어찌 건축물뿐이랴. 
가까운 예로, 치국을 위한 인재의 기용은 어떤가.
마침 한양대학교의 정민 교수가 쓴 글(정민의 世說新語)이 있어 그 일부를 인용한다.


1652년 10월 윤선도(尹善道·1587~ 1671)가 효종께 당시에 급선무로 해야 할 8가지 조목을 갖추어 상소를 올렸다. '진시무팔조소(陳時務八條疏)'가 그것이다.
하늘을 두려워하라는 외천(畏天)으로 시작해서, 마음을 다스리라는 치심(治心)을 말한 뒤,
셋째로 인재를 잘 살필 것을 당부하는 변인재(辨人材)를 꼽았다.


"정치는 사람에게 달렸다(爲政在人)"고 한 공자의 말을 끌어오고 ,
"팔다리가 있어야 사람이 되고, 훌륭한 신하가 있어야 성군이 된다(股肱惟人, 良臣惟聖)"고 한 '서경'의 말을 인용한 뒤 이렇게 말했다.
"삿된 이를 어진 이로 보거나, 지혜로운 이를 어리석게 여기는 것, 바보를 지혜롭게 보는 것 등은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통상적인 근심입니다. 다스려지는 날은 늘 적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은 것은 모두 이 때문입니다(以邪爲賢, 以智爲愚, 以愚爲智, 此乃有國家者之通患. 而治日常少, 亂日常多, 皆由於此也)"
라고 운을 뗐다.


이어 적재적소에 인물을 발탁하는 문제를 설명한 뒤,


"마땅한 인재를 얻어서 맡긴다면,
전하께서는 그저 가만히 있어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고,
높이 팔짱을 끼고 있어도 아무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마땅한 인재를 얻지 못한 채 나라를 다스리려 한다면,
이는 진실로 수레를 타고서 바다로 달려가고, 양을 길러 날개가 돋기를 바라는 것과 같아,
애를 써 봤자 한갓 수고롭기만 하고, 나날이 위망(危亡)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如此等人材得而任之, 則殿下可以垂衣而治, 高拱無憂矣.
不得其人, 而欲治其國, 則誠如乘輦而適海, 拳羊而望翼, 徒勞於勵精, 而日就於危亡矣)"
라고 했다.
(중략)


  효종은 비답(批答)을 내려

  "내가 불민하지만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없다"며, "앞으로도 나의 과실을 지적하고 부족한 점을 채워 달라"
고 당부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6/2019101602789.html)


새삼 말하지 않아도 구구절절이 옳은, 참으로 지당한 이야기인데도,
이런 이야기가 새삼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님이나 윤선도가 살던 시대보다는 문명이 훨씬 발달한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왜 우리는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이런 경구(警句)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을 하는 것일까.
좁디좁은 땅덩어리에 살면서 남북으로 분단된 것도 모자라,
어찌하여 광화문 민심과 서초동 민심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장삼이사(張三李四)는 그런 세태에 절망하여야 하는 것일까.


위 정민 교수의 또 다른 글들의 일부를 인용하여 본다.


“사대부는 마땅히 천하가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지,
천하 사람이 상식적이라 여길 수 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士大夫當爲天下必不可少之人, 莫作天下必不可常之事)”.
상식에 벗어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천하가 무겁게 대접해 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중략)
“군자는 사소한 혐의를 능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변고나 싸움 같은 큰 다툼이 없다.
소인은 작은 분노를 능히 참지 못하므로 환히 드러나는 패배와 욕됨이 있게 된다
(君子能受纖微之小嫌, 故無變鬪之大訟. 小人不能忍小忿, 故有赫赫之敗辱)”.
작은 잘못은 인정하면 그만인데, 굳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아무것도 아닐 일을 큰일로 만든다.

안타깝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3/2019102303802.html)


"법이란 천리를 바탕으로 인정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도를 세워 막고 금한다.
마땅히 공평하고 정대한 마음으로 경중(輕重)을 합당하게 해야지, 한때의 희로(喜怒)로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공평함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法者因天理循人情. 而爲之防範禁制也.
當以公平正大之心, 制其輕重之宜, 不可因一時之喜怒而立法. 若然則不得其平者多矣)."
의도를 가지고 만든 법은 반드시 공평함을 해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02/20191002028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