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하는 판사' (퍼온 글)
2015.08.29 22:23
(한국경제신문 2015. 8.27.자)
다음달 퇴임 앞둔 '판소리하는 판사' 민일영 대법관 "극도의 스트레스, 소리 자락에 날려 보냈다"
10년 전부터 주 1~2회 공부…"남에겐 없는 최고의 개인기"
퇴임 후 '흥보가' 완창에 도전
“초화장 아니다, 장초화 아니다, 화장초 아니다, 장화초 아니다. 어따 이것이 무엇이냐….(하략)”
분홍빛 개량한복 저고리를 입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남성이 26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국악 토크콘서트 ‘다담’에서 판소리 ‘흥보가’ 중 ‘화초장타령’ 대목의 일부를 선보였다. 중간중간 흰 부채를 펼치며 고수(鼓手)와 눈을 맞추고 담백하면서 구성지게 가락을 펼치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무대에 오른 주인공은 오는 9월16일 퇴임을 앞둔 민일영 대법관(60·사진)이다.
법조계에서 ‘판소리 전도사’로 유명한 민 대법관은 방송인 정은아 씨의 진행으로 인터뷰와 국악 공연이 함께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자신이 국악과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과 다음달 32년의 판사 인생을 마무리하는 심경을 풀어놓았다. 그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던 짐을 이제야 내려 놓는 느낌”이라며 “날마다 극도로 긴장하며 살던 내게 판소리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민 대법관이 판소리와 인연을 맺게 된 건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보면서부터였다. 그는 “원래 판소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서편제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이런 가락이 있다는 게 놀랍다’고 생각했다”며 “인생의 희로애락이 판소리에 다 녹아든 것 같았다”고 술회했다.
2005년부터 1주일에 1~2회씩 김학용 명창이 지도하는 민요·판소리 동호회 ‘소리마루’에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민 대법관은 “밖에선 대법관이고, 판소리 동호회에선 ‘지진아’였다”며 “30분만 연습해도 숨이 턱까지 차서 헉헉댔다”고 말했다. 또 “판소리 수업 2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서초동 사무실로 돌아와 밤새 업무를 보충했다”며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이긴 했어도,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한다는 게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스 해소 말고 판소리를 하면서 얻은 것은 “다른 사람에겐 없는 최고의 개인기”라고 민 대법관은 말했다. 그는 “판소리를 배우기 전엔 술자리에서 노래하라고 시키는 게 제일 두려웠는데, 요즘엔 판소리 한번 하고 나면 다들 ‘그 긴 가사를 어떻게 다 외우느냐’며 놀란다”고 했다. “판소리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사람들이 모르니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민 대법관은 “퇴임 후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30년 넘게 계속 바쁘게만 살아서 일단은 쉬고 싶다”고 말했다. 또 “정말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퇴임하면 시간이 많이 생길 테니 ‘흥보가’ 완창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내 두 아들도 법관이 되려고 준비 중”이라며 “힘든 길이라고 그렇게 말렸는데도 말을 안 들으니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
출처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826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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