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2015. 11. 15.자)


[전관예우 백약무효]⑳

민일영 전 대법관,  "성공보수 무효, 부작용 예상했지만 꼭 가야할 길"


최순웅 기자


“부작용도 예측했다. 하지만 (성공보수 무효는) 선진 사법을 위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올해 9월 16일 32년 법관생활을 마치고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민일영(60·사법연수원 10기) 전 대법관의 말이다.

울긋불긋 단풍에 에워싸인 호수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 9층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대법관 시절의 근엄한 모습은 여전했지만,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에서 벗어난 그의 얼굴 군데군데 온화한 미소가 배어있었다.

집무실 안은 묵향이 가득했다. 그는 서예 문외한인 기자의 질문에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표정으로 ‘서예 예찬론’을 폈다. 그러나 민 전 대법관은 대법원이 내린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 퇴임 대법관 개업 등 주제를 던지자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조선비즈2.jpg

민  전 대법관은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 후배 법관에게 강의를 마치면 집무실에서 틈틈이 서예를 한다./최순웅 기자


◆ “성공보수 이제 일본만 남았다. 우리가 선진”

민 전 대법관은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 무효 판결은 선진 사법으로 가는 길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전원합의체에서 13명이 모두 성공보수약정 무효에 찬성한 것은 대법관들이 성공보수의 폐단에 대해 모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 전 대법관은 성공보수 제도에 대해 “너무 창피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문명국가에서 성공보수를 인정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 없었다. 이제 일본만 남았다”고 했다. 민 전 대법관은 “당장은 혼란이 생길 수 있지만 지금까지 그 혼란이 무섭다면서 가야 할 길을 가지 않은 것”이라며 “대법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고도 밝혔다.

그는 “예전에는 법조인들이 일본 제도와 책을 공부했지만 이제는 일본이 우리나라 사법제도를 배우러 오고 있다”며 “선진 사법의 길은 일본이 아닌 세계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했다.

◆ 전관예우?...“어림 없는 소리다”

민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라는 허상에 국민이 속고 있다고 말했다. 민 전 대법관은 “대법관들은 변호사가 누구인지 확인조차 안한다”고 했다.

그는 대법관 시절 판결문을 작성할 때 첫 장 작성을 사무관에게 시켰다. 첫 장에는 원고와 피고, 이들의 대리인이 들어간다.

민 전 대법관은 “김모 전 대법관이 변호사로서 맡은 첫 사건 결론은 심리불속행 기각, 두 번째 사건은 상고 기각이었다. 세 번째 사건도 상대 당사자 주장을 인용한 파기 자판”이라며 “변호사가 누구라는 것보다 사건 내용과 실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관 시절을 떠올리며 “오히려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않은 당사자 사건이 파기환송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공공성 측면에서 장려할 일”

민 전 대법관은 대한변호사협회가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변호사 개업은)오히려 장려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성공보수 무효 판결 역시 인권의 옹호와 사회 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을 강조했다”며 “변호사로 활동한다는 것은 돈벌이꾼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인권 수호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 전 대법관은 “대법관이 변호사가 된다는 것이 공공성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대법관이 옷을 벗으면 변호사 개업을 장려해야 한다”고 힘 줘 말했다.

그는 “그렇다면 왜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에서 이제야 벗어났으니 좀 쉬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민 전 대법관은 1983년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를 시작해 대구고법 판사,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서울고법 판사, 서울지법·대전고법·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도서관장, 청주지법원장 등 요직을 거쳤다. 2009년 9월 최고 법관 자리에 오른 그는 6년 동안 대법관으로 근무한 뒤 올해 9월 퇴임했다.


출처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15/20151115007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