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魂(꽃의 넋)

2016.05.23 21:57

우민거사 조회 수:237


때 아닌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낮 기온이 연일 30도를 넘는 날씨가 계속되는 것이 마치 7-8월 염천지제(炎天之際) 같다.
엊그제 20일이 소만(小滿)이라 절기상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것은 맞지만,

시작부터 이렇게 더우면 정작 한여름은 어떨는지 은근히 걱정된다.
더위가 일찍 찾아온 것은 어찌 보면

점차 아열대기후화 되고 있는 우리나라 기후변화의 자연스런 흐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농촌에서 본래 소만(小滿)에 한다는 모내기를

입하(立夏)가 지나면서 이미 시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는지.


모내기.jpg

                                                                       [모내기한 논]


다만, 보리 베는 모습(이 역시 소만 때의 농촌 풍경이다)

중부지방에서는 안타깝게도

입하는 물론이고 소만 때에도 보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아마도 주산지인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를 가야 볼 구 있을 듯하다.

자급률이 0.1%라는 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범부가 어릴 때는 보리밭, 밀밭을 누비고 다녔는데,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았다.       
   
각설하고,
금당천변 고향집 우거(寓居) 안마당에 그동안 각종 야채를 심어 왔고,

올해도 처음에는 그럴 요량으로 밭이랑을 여럿 만들었었는데,

집사람이 올해부터는 정원을 꾸며 보자고 하여 이랑을 갈아엎고 꽃밭을 만들었다.

정원.jpg


꽃을 심은 김에 작은 연못도 만들고,

주위에 소나무와 단풍나무도 심고,

석물과 솟대도 설치하고... 

하다 보니 재미는 있는데,

야채를 심었을 때보다 손이 훨씬 많이 간다.


새로이 모종하랴, 물 주랴, 풀 뽑으랴, 옮겨 심으랴...

주말이면 거의 꽃들에 매달려야 한다.

그래도 장미, 불도화, 채송화, 백일홍... 등등 갖가지 꽃이 피니까

바라보는 마음에 저절로 여유가 생긴다.


거기에 구름 한 점 없는 무더위 날씨가 선물한 보름달(정확히는 어제 밤)이 휘영청 떠올라 비추니

금상첨화이다.

 

4월보름달.jpg

                [2016. 5. 21.(음력 4.15.)의 보름달 모습]


그 꽃과 달을 바라보며

조선 후기의 시인 하원(夏園) 정지윤(鄭芝潤·1808 ~1858)의 시 “花魂”을 떠올린다.

 

        花魂

 

歲歲煙光似轉輪(세세연광사전륜)
新叢記得舊精神(신총기득구정신)
漏根何處歸來些(누근하처귀래사)
香國前生未了因(향국전생미료인)
暗入杜鵑聲裏恨(암입두견성리한)
長成蝴蝶夢中身(장성호접몽중신)
分明句引黃昏月(분명구인황혼월)
庭院人空囑寫眞(정원인공촉사진)

 

                  해마다 좋은 계절 윤회하듯 찾아오고
                  꽃은 새로 피어 옛 정신을 되살리네.
                  어디서 그 뿌리가 돌아왔을까
                  전생에 맺은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은 두견새 울음 속으로 슬며시 스며들고
                  몸은 나비의 꿈속으로 변신해 들어가네.
                  황혼에 떠오른 밝은 달빛 끌어당겨
                  인적 끊긴 정원에서 사진이나 찍자구나.

 

이 시에 대한 안대회 교수(성균관대, 한문학)의 다음과 같은 감상(조선일보 2016. 5. 21.)이 눈길을 끈다.
 
봄철에 피고 지는 꽃의 운명에 시인의 마음이 흔들렸다.

꽃에 넋이 있고, 그 넋이 말을 한다면 하소연은 아마 이러하리라.
봄철마다 묵은 포기에서 정신을 다시 차린다.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한 운명이라,

번뇌의 뿌리에서 싹이 돋아나고 향기를 피워 전생의 인연을 이어간다.

한을 뱉어내려 해도 입이 없으니 두견새 울음에 몰래 실어 보내고,

몸이 있어도 바로 떨어지니 호접지몽(蝴蝶之夢)에서나 살아 있다.

가냘프고 불안한 꽃의 존재를 누가 가엽게 여길까?

인적 끊긴 정원 하늘 위로 달이 환히 떴다.

그 달빛 끌어와 사진을 찍어 달래야지.
바닥에 드리워진 꽃 그림자는 슬픈 꽃의 넋!
꽃 그림자가 꼭 시인의 그림자 같다.

 

세세년년(歲歲年年) 피고 지는 꽃에서 윤회의 그림자를 찾는 시인이나,

그 시에서 시인의 깊은 마음을 읽고 모습을 그려 보는 감상자나,

모두 속인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세상을 걷는 듯하다.

두 사람이 선문선답(禪問禪答)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선인(禪人)들과는 달리 범부는 그저

“꽃이 아름답구나. 거기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이 운치를 더하는구나.

라는 소박한 느낌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다.

 

(추록) 이 시를 읽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다름 아니라, 이 시인이 살았던 시기(1808 ~1858)에 이미 사진을 찍었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부터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기에 드는 의문이다.

그렇게 보면, 이 시인이 사진을 찍는다고 한 것은 있는 그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