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바로 이거야!

2017.02.27 22:55

우민거사 조회 수:8614


일주일 전에 우수(雨水)가 지났고,
앞으로 일주일 후면 경칩(驚蟄)이다.
한 마디로 말해 봄이 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오고 있는 봄을 느끼려고 지난 주말에 북한산을 찾았는데,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에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근자에 서울에서, 특히 봄에 이런 하늘을 언제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판에,

정말 뜻밖의 하늘과 그 밑에 있는 북한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되뇌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게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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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높은 산과 넓은 강을 다 품고 있는 수도 서울에 살면서도

공해, 미세먼지, 황사 등으로 인해 정작 ‘푸른 하늘’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 대신 ‘회색 하늘’이 부지불식간에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이처럼 어쩌다 ‘푸른 하늘’을 대하게 되면 놀라서 입이 벌어지는 상황이 되었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

아무튼 실로 오랜만에 대하는 높고 푸른 하늘과 선명하게 다가오는 산의 자태에 반하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걸으며,

목하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탄핵정국이 한시 바삐 올바르게 마무리되어,

저 푸른 하늘 저 선명한 산처럼 이 나라의 앞길이 탁 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는 아마도 한낮 범부만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소망이기도 하리라.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일주일 전에 지나고 보니,

농촌 들녘도 봄기운이 정말로 완연하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들판에 냉이는 진즉에 나왔고,

이름 모를 새싹들이 하나 둘 머리를 내밀고 있다.

이에 더하여 겨우내 얼었던 금당천의 냇물이 녹아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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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를 들으며 옛 시를 떠올린다.

 

春水初生漲岸沙 (춘수초생창안사)
閒來着屐向田家 (한래착극향전가)
村深古木周遭立 (촌심고목주조립)
山僻行蹊繚繞斜 (산벽행혜요요사)
頗喜峽居逢樂歲 (파희협거봉낙세)
每從隣友說生涯 (매종인우설생애)
日長正好林間讀 (일장정호임간독)
汲得寒泉煮茗茶 (급득한천자명다)

 

                    봄 강물이 불어나서 모래벌판에 넘쳐나
                    한가로이 나막신 신고 전원으로 나간다.
                    마을은 깊어 고목이 둘러 에워쌌고
                    산은 외져 오솔길이 구불구불 나 있구나.
                    산골에도 풍년들 것 같아 마음 자못 흔쾌하여
                    이웃 사는 벗들과 세상살이 수다 떠네.
                    해가 길어 수풀 아래 책 읽기 딱 좋은지라
                    찬 샘물을 길어다 맛난 차를 끓인다오.

 

조선 후기의 시인 완암(浣巖) 정내교(鄭來僑·1681~1759)가 지은 ‘得茶字(차를 끓이다)’라는 시다.

물이 불어 강변의 모래밭이 잠겼다. 바야흐로 봄이 온 것이다.

그래서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나막신 신고 들판으로 나갔다.

가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내 사는 마을이 고목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깊숙히 숨어 있는 듯하고,

오솔길이 구불구불 나 있는 산은 한결 외져 보인다.

올해는 농사가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들뜬 마음에 이웃의 벗들과 수다를 떠는데,

그보다 더욱 반가운 것은 해가 길어져 나무 밑에서 책을 읽기가 좋다는 것이다.

서둘러 샘물을 길어다 차를 끓여 마시면서 책을 읽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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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라는 의미도 된다.

모쪼록 건강에 유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