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에 서서

2017.06.28 22:27

우민거사 조회 수:8596


하지(夏至)가 지난 지 벌써 일주일이다.
참으로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하루가 가고 한 주일이 가고 한 달이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이제 사흘만 지나면 올 한 해도 벌써 반환점을 돈다.
시간의 흐름이 참으로 활 떠난 화살처럼 빠르다는 생각이 절절히 든다.

 

올 한 해의 반환점을 돌고 나서 다시 일주일 후면 소서(小暑)이다.

절기 이름이 말해 주듯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꾸준히 지구환경을 파괴하여 온 업보로 인하여

작금에는 소서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진즉 더위가 찾아왔다.

툭하면 전국적으로 30도를 넘는 날씨가 이어지고,

복지경이 아닌 6월인데도 낮 기온이 35도를 넘어가는 곳이 속출하다 보니,

여름을 날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게다가 가뭄이 극심하여 농사지을 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식수마저 부족한 상황이라

비상시국이 따로 없다.

지금쯤 당연히 시작되었어야 할 장마는 소식이 감감하고,

어쩌다 내리는 소나기는 찔끔거리기만 한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읊은 시가 한 수 생각난다.

 

支離長夏困朱炎(지리장하곤주염)
濈濈蕉衫背汗沾(즙즙초삼배한첨)
洒落風來山雨急(쇄락풍래산우급)
一時巖壑掛氷簾(일시암학괘빙렴)
不亦快哉(불역쾌재)

 

           지루하고 긴 여름날 불볕더위에 시달려
           등골에 땀 흐르고 베적삼이 축축한데
           시원한 바람 끝에 소나기 쏟아지자
           단번에 얼음발이 벼랑에 걸리누나.
           이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폭포.jpg


선생이 노래한 ‘不亦快哉行’ 20수 가운데 아홉 번째 시(詩)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을 식혀 주는 시원한 소나기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어찌 보면 극히 사소한 일 같지만,

그러한 사소함 속에서 오히려 세상 근심을 잊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강진에서의 18년에 걸친 오랜 유배생활이 선생으로 하여금 그런 달관의 경지에 이르게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마무리되고

선거를 거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건만,

나라 안팎의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실타래상황은 좀처럼 해법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더하여 각종 시위, 파업, 집단행동을 알리는 소식이 겹쳐 張三李四들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하다.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리는 시원한 비 소식이 제발 하루빨리 전해졌으면 좋겠다.

다산 선생의 표현처럼 벼랑에 얼음발이 걸릴 정도로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온갖 시름을 씻어 내린다면 얼마나 유쾌할까.

 

중국 사천성에서는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로 마을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정말 곳곳에서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설마 벌써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