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이다.

나의 열한 달을 다 주고라도 당신의 5월과 바꾸겠다는 그 5월도 이제 5일 남았다.

눈 한 번 떴다 감으면 하루 가고, 한 주일 가고, 한 달 간다.

그렇게 빠르게 흐르는 세월이지만,

그래도 이 5월만큼은 제발 천천히 가라고 매년 빌어보는데,

촌부의 간절함이 부족한 탓인지 영 효험이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판소리 단가 ‘강상풍월(江上風月)’에는

“오월이라 단오날은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이요, 일지지창외(日遲遲窓外)로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은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절기’라는 뜻이고,

일지지창외(日遲遲窓外)는 ‘창 밖에 해가 느리고 느리게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일지지창외(日遲遲窓外)는 제갈공명이 지은 시 ‘대몽(大夢)’에서 따온 것이다.

유명한 삼고초려에 나오는 이 시의 전문은 이렇다.

 

         大夢誰先覺(대몽수선각) 큰 꿈을 누가 먼저 알았나
         平生我自知(평생아자지) 평생 나 홀로 그것을 알고 있었네
         草堂春睡足(초당춘수족) 초당에서 봄 낮잠을 늘어지게 잤는데도
         窓外日遲遲(창외일지지) 창 밖에 해는 아직 지지 않고 느리게 가고 있구나

 

47세의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간 것은 공명이 27세 때의 일이다.

공명은 초당에서 농사짓고 글을 읽는 생활을 10년이나 보냈지만,

그렇다고 농사를 주업으로 삼거나 은거(隱居)를 최상의 생활태도로 삼는 은사(隱士)는 아니었다.  

 그는 은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혼란한 정국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주군(主君)을 내심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남양야인(南陽野人)이라 칭했지만,

진정한 야인(野人)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자기를 알아보고 등용해  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 옛날의 강태공처럼 말이다. 

그는 아마도 유비가 자기를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유비가 자기를 세 번째 찾아왔을 때 읊은 시가 바로 이 ‘대몽(大夢)’이다.

 

별 능력은 없으면서 착하기만 한 유비가 세 번이나 찾아왔을 때 공명은 내심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봄 낮잠을 길게 잤고, 잠에서 깨어나서도 의관을 정제한답시고 시간을 질질 끌었다.

그런데도 유비가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그 유비를 주군으로 택하였고,

그러면서 자신의 심정을 바로 이 시로 나타낸 것이다.

 

이 시에서 말하는 큰 꿈은 바로 공명이 꾸는 꿈이다.

그것은 동시에 유비의 꿈이기도 하다.

다름 아니라 바로 천하 대사를 도모하는 것이다.

공명은 그 꿈을 누가 먼저 알았단 말인가 하고 묻는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만 알고 있었다고 스스로 답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초당에는 만물이 소생하고 낮잠을 실컷 자고 나도 해가 많이 남아 있다고 말이다.

즉, 큰 꿈을 이룰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성미 급한 장비가 기다리다 못해 공명이 자고 있는 초당에 불을 지르려 했던 것을 두고 한 말이기도 하고,

아울러 천하 대사를 도모함에 있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하지 않던가.

이 시를 읊고 난 공명은 유비를 따라 출사하였고,

그 이후의 일은 주지하는 대로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비핵화를 위한 정상회담을 하니 마니 하면서 벌이고 있는 실랑이를 보고 있노라면 착잡하기만 하다.

이는 금당천의 촌자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다 그렇지 않을까.

북한의 핵은 정작 우리의 생존,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인데,

그 비핵화의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우리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에 그쳐야 하는 냉엄한 현실이 안타깝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앞으로 어떤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게 될지 모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5월이 거의 다 지나고 곧 6월이 된다.

제갈공명이 설파하였듯이 窓外日遲遲(창외일지지)이다.

시간을 두고 현명한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공명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초파일을 맞아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이 온 누리에 펼쳐지듯,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한반도 전체에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물결이 넘쳐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여 본다.

 

모내기를 끝낸 금당천변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고,

촌부의 우거에는 장미가 한창이다.   


모내기.jpg

우거의 장미.jpg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난 주말에
금당천변 우거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