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를 열까요?

2010.02.16 14:13

범의거사 조회 수:15428

(조병구판사 주례사)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는 가운데도 오늘 이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 신랑, 신부에게 먼저 진심으로 축하를 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 주기 위하여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조병구군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 육군법무관을 거쳐 2002. 4. 1.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하였고, 현재는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원 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인재입니다. 그리고 이제 보름 후면 독일로 유학을 떠날 예정입니다.  
  또 하나의 주인공인 신부 유진양은 중앙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디자인파크를 거쳐 인터넷 쇼핑몰 G마켓의 웹디자이너로 활약한 재원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였고 손재주가 뛰어나 대학생 시절에 이미 조선일보 광고대상 등 여러 공모전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신랑 조병구군과 신부 유진양이 처음 만난 것은 불과 두 달 보름 전인 금년 5월 13일이었습니다. 아무리 번갯불에 콩 구워서 먹는 세상이라지만, 생면부지의 두 사람이 만나 지 정확히 두 달 보름만에 이처럼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은 아마도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에 있어 그 두 달 보름은 남들의 10년에 버금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서로 “그래, 바로 이 사람이야, 이 사람이 바로 내가 그토록 소망했던 사람, 하느님이 나를 위해 점지해 주신 바로 그 사람”이라며 사랑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고, 하얀 화선지에 디자인을 하듯 그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자기보다 5살이나 어린 신부 유진양에게서 나이답지 않은 편안함에 호감을 느끼던 신랑 조병구군은, 신부의 해맑은 웃음과 발랄하고 적극적인 모습에 반하여 넋을 빼앗기기에 이르렀고, 신부 유진양은, 따뜻한 마음씨와 순수한 심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세심한 배려를 할 줄 아는 착한 신랑 조병구군의 듬직한 모습에 감명을 받아 27년간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9년 전, 제가 사법연수원 교수로서 신랑 조병구군을 가르치던 시절, 조병구군은 모범생 그 자체였습니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도서실에 처박혀 공부만 하였기 때문에 “쎄븐일레븐”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랑 조병구군이 그 흔한 연애도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저 아리따운 처자 유진양을 신부로 맞이하게 된 것을 보면, 조병구군의 그 따뜻한 마음씨와 순수한 심성에 감탄하여 하느님이 선물을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고 보면 신랑 조병구군에게서 그런 따뜻한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에 반한 신부 유진양이야말로, 진정으로 착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착함과 지혜로움을 갖추었기에 신부 유진양의 빼어난 미모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착하고 슬기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따뜻한 남자의 표상인 신랑 조병구군과 착한 여자의 표상인 신부 유진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이 정해 주신 인연이라고 할 것입니다. 천생배필이란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이 아닐는지요?

  지난 5월 13일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나서, 그 1주일 후 신랑 조병구군이 신부 유진양과 소위 ‘애프터’를 하려고 공주에서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오던 도중 한시가 급한 맘에 사고를 크게 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계기가 되어 신부 유진양은 신랑 조병구군의 몸은 괜찮은지 병원은 가봤는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주고 걱정해 주었고, 신랑 조병구군은 이에 감동을 받아 사랑의 감정이 더욱 솟구쳤다고 합니다.

   그 교통사고가 혹시 신부 유진양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하여 신부 조병구군이 벌인 연극이 아니었을까요? 이 자리에서 청문회라도 해 봄이 어떨까요? 내빈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큰 박수를 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신랑 조병구군은 공주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부 유진양은 자신의 전문영역인 웹디자이너로 활동하느라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이 데이트를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고작 주말에나 얼굴을 잠깐 볼 수 있는 정도였지만, 청춘남녀의 내심으로 흐르는 사랑의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신랑 조병구군이 주말의 퇴근 후에 멀리 공주에서 차를 몰고 서울로 달려오는 동안, 이제나 저제나 하며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신부 유진양의 모습, 그런 모습이 주말마다 연출되었기에 오늘 이 자리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이 같이 소망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신랑 조병구군이 주일에 성가대에 앉아서 찬양을 하면 신부 유진양은 그 바로 맞은편 회중석에 앉아서 신랑 조병구군을 쳐다보면서 서로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바로 그 미소의 눈빛으로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나와 계실 소망교회 장로님께 감히 한 가지 여쭈어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렇게 주일날 교회에서 기도는 안 하고 엉큼한 눈빛만 주고받아도 되는 겁니까? 혹시 파문감 아닌가요?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실까요?

  저는 이 자리의 신랑 조병구군을 사법연수원에서 2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 이후로 신랑 조병구군은 제가 그 누구보다도 아끼는 제자이자 후배판사로서 저와 같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사법연수생 당시 제가 신랑 조병구군더러 이 다음에 판사가 되어 기회가 주어지거든 독일로 유학을 가라고 권하였고, 조병구군은 훗날 자기가 결혼하면 저보고 주례를 맡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주고받은 대화였는데, 9년의 세월이 지나 그 두 가지가 동시에 현실화되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 뿌듯한 감회를 가슴에 되새기며, 신랑 조병구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거듭 당부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법조문을 분석하듯, 인터넷 화면을 디자인하듯,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기는 삶을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져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싯귀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당신의 따뜻함으로 기다렸다는 듯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두 사람 모두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십시오.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못 미쳐도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연애기간이 짧아 이제까지는 여행을 함께 할 기회가 적었겠지만, 결혼 후에는 여행을 많이 하십시오. 두 사람만의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다행히 보름 후에는 두 사람이 함께 독일로 떠나 1년 동안 그곳에서 체류하게 되므로 유럽의 각지를 돌아보며 여행할 기회가 많겠지만, 귀국 후에도 계속하여 함께 여행할 기회를 자주 가지라는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내준 이 숙제를 잘 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이제 주례사를 마치면서 다소 주제넘기는 하지만, 양가의 부모님께도 한 말씀 올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로서, 사랑스런 사위로서,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십시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6. 7. 28.
                                      주례    민 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