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법원의 길

2014.08.23 22:02

범의거사 조회 수:1297

대법원은 우리나라 사법체계에서 최고법원이다.

그래서 법치국가에서 국민생활, 국가기관의 활동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큰 사건, 이른바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사건의 해결방향을 제시할 책무를 지닌다.  

그런데 대법원에 연간 접수되는 사건이 3만6,000 건 가량 된다.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에 회부된 사건에만 관여하므로, 실질적으로 12인의 대법관이 이 많은 사건을 처리하여야 한다.  이런 사실을 처음 든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한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아래는 이를 전면적으로 다룬 특집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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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4. 8. 11.)

 

1인당 상고심 사건 하루 10제대로 볼 시간도 없어

 

[기로의 대법원, 갈 길을 묻다]<1>하루종일 서류 검토상고심에 치이는 대법관

 

 대법원1.jpg 

김소영 대법관이 8일 대법관실에서 돋보기안경을 쓴 채 상고심 사건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

대법관들은 많은 기록을 살펴봐야 해 근무한 지 1년 안에 시력이 크게 나빠지고 안과질환

으로 고생한다고 한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올해는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된 지 120년째, 1948년 대한민국 헌법 공포로 대법원이 최고 사법기관이 된 지 66년째 되는 해다. 하지만 사법개혁의 알파에서 오메가로 불리는 대법원의 현실은 척박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 인권의 보루로 거듭났으나 지금의 대법원은 사건의 홍수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동아일보는 국민의 시각에서 대법원의 현실과 선진 사법제도를 진단하고, 미래의 바람직한 대법원의 길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국민들이 책상에 가득 쌓인 기록을 보면 걱정할 것 같아 미리 치워뒀어요. 해결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아 숙고할 시간이 절대 부족합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7. 사건 기록으로 가득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김소영 대법관(49·)의 사무실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던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그는 역대 네 번째이자 최연소 여성 대법관이다.

 

11월이면 취임 2주년을 맞는 김 대법관은 인터뷰 내내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현행 상고심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를 비롯한 전현직 대법관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대법관의 근무 실태를 들여다봤다.

   

아무리 시간 투입해도 숙고할 시간이 모자라

 

김 대법관의 일상은 매우 단순했다. 한 달에 한 번 가량 열리는 전원합의를 제외하곤 오전 8시 반 무렵 출근해 줄곧 기록을 검토한다. 점심은 외부 일정이 없을 때는 대법관 3층 구내식당을 주로 이용한다.

 

최근 상고심 접수 사건은 연간 4만 건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접수한 상고심 사건 수는 36110건으로 2002(18600)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산술적으로 연간 대법관 1인당 약 3009, 매달 250, 6일을 근무해도 하루 평균 9.6건을 해결해야 한다. 이 때문에 각종 사건 자료들이 12(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제외)의 대법관실 탁자를 한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대법관실 한쪽에 마련된 응접탁자까지 점령한 지 오래다.

 

대법원2.jpg

 

대법관 근무는 다시 한 번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최종 판단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속에서 조금 더 생각하고 결정할 사건들이 있는데 이런 틈을 거의 주지 않고 매일 매일 사건이 올라오죠.”

 

사건 기록을 들고 출퇴근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보통 오후 8시경 퇴근할 때 일감을 보자기에 싸서 가져가 집에서 다시 기록을 검토한다.

 

 

대법원3.jpg 

김소영 대법관이 8일 퇴근을 앞둔 저녁 무렵 살펴봐야 할 사건

기록을 보자기에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돋보기 하나로는 불편했다. 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남편이 돋보기안경을 3개나 사줬다. 본의 아니게 가정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그의 자녀들은 주말에 단 2시간만이라도 우리를 위해 시간을 달라고 조를 정도다.

 

김 대법관은 주말에도 하루는 꼭 출근한다. 대법관 주차장은 일요일에도 절반 이상의 대법관 차량이 주차돼 있다. 이런 상태로는 2, 3년이 지나도 해결이 안 된 사건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은 12시까지 기록과 씨름하는 게 일상이었다혹자는 재판연구관들이 일을 많이 해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연구관이 생산한 보고서를 검토하는 일도 더욱 늘어난다고 했다.

 

다른 대법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 현직 대법관은 토요일에 등산을 다녀온 날 저녁에도 다시 기록을 꺼내든다. 시간을 빼앗긴 만큼 보충을 하기 위해 일요일에도 출근한다고 한다. 집이 경기도인 한 대법관은 아예 출근 시간을 앞당겨 오전 7시경에 대법원에 도착해 업무를 시작한다.

 

격무에 건강 이상대병원별칭까지

 

퇴임을 앞둔 대법관은 신임 대법관에게 축하를 전하면서도 크게 봐야 한다. 그러려면 건강을 잃으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고된 업무 속에서도 몸을 챙기라는 얘기다. 김 대법관은 최근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 요즘은 가끔 귀가 먹먹할 때가 있다고 했다.

 

많은 대법관이 크고 작은 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거나 수술을 받는다.

 

김 대법관도 근무 1년 만에 시력이 나빠졌다. 다른 현직 A 대법관은 재임 중 안경을 네 번이나 바꾸고 도수를 높여야 했다. A 대법관은 대상포진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고, 현직 B 대법관은 지난해 눈에 실핏줄이 터졌지만 한동안 충혈된 눈으로 출근해 기록을 검토해야만 했다.

 

비문증에 걸린 대법관도 적지 않다. 비문증은 눈앞에 먼지나 벌레 같은 뭔가가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안과 질환.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이명뿐 아니라 어지럼증을 호소했던 전현직 대법관도 여럿이라고 한다. 건강이 좋은 사람이 거의 없어 대법원이 아니라 대병원이 될 지경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대법관들의 건강을 우려한 대법원 측이 대법관실에 운동기구를 마련해 주기도 했지만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김 대법관은 행정처가 내실에 마련해 준 연습용 자전거를 한두 달간 매일 2030분 이용했지만 요즘은 시간이 부족해 그만뒀다.

 

김 대법관은 “(업무 도중 운동을 하면) 생각의 흐름이 끊긴다고 느껴지고 그만큼 결론을 내는 사건 수도 줄어드는 것 같아 잘 안 하게 됐다그 대신 가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수영을 하며 체력 관리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상고심 제도에 대한 변화 필요 공감

 

김 대법관이 해결한 사건 가운데 정말 대법원에 올 만할 정도로 풍부한 법리 검토가 필요하다고 느낀 사건은 매달 2030건 정도다. 그는 법률심이 원칙인 상고심에 올라온 사건에서도 따져보면 결국 때렸다’ ‘안 때렸다’ ‘때렸지만 상처가 안 났다는 등 사실관계만 다투는 사건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대법원의 파기환송률은 57%대에 그친다.

 

사건이 폭주하다 보니 대법원장과 대법원 12명이 모여 합의하는 전원합의체를 활성화하기가 쉽지 않다. 김 대법관은 소부(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소재판부)에서 선고한 사건 중 청소년 동성애 사건과 여교사 출산휴가 중 육아휴직 신청 사건 등은 사실 전원합의체에서 다뤄 봤으면 했던 사건이라며 전원합의는 1개 사건에 대법관 12명이 매달려야 하고 검토와 자기논리, 다른 사람을 설득할 논리까지 생각해야 하는 만큼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대법관은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중심으로 사회적 방향을 제시하는 정책법원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에 사건이 많다는 걸 대외적으로 알리고 싶지는 않다하지만 현행 상고심 제도로는 정작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있거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지금의 대법원은 권리구제 기능과 정책법원 측면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김 대법관과 별도로 인터뷰에 응한 전직 대법관 5명도 여기에 대체로 공감했다.

차한성 전 대법관은 건국 초기 권리구제에 주요 역점을 뒀던 현행 사법시스템 체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조금 더 선진화된 사법시스템을 모색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용담 전 대법관도 대법원의 힘은 원 벤치(전원합의체)’에서 나온다한 개의 재판부에서 다양한 격론이 맞붙어야 의미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전직 대법관은 대법관들이 사건을 빨리 뗀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고, 대법관 부담을 덜어준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라며 “1, 2심 신뢰 방안을 비롯해 전체 사법 시스템에 대해 근원적인 접근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관석 jks@donga.com ·신나리 기자)  

 

 

(동아일보 2014. 8. 12.) 

 

전원합의실 문지방 닳게 해야최고법원 위상찾기 첫발

[기로의 대법원, 갈 길을 묻다]<2>언론에 첫 공개 대법원 11전원합의실보니

 

 

  대법원4.jpg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된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대법원 11층 전원합의실 내부 전경. 그림 앞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가 대법원장이 앉는 곳이다. 판결을 선고하는 대법정에서는 대법원장

을 중심으로 일렬로 나란히 앉는 데 반해 활발한 의견 개진이 필요한 전원합의실은 원탁에

둘러앉는 형태로 꾸며져 있다. 대법원 제공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대법원에는 대법관들만 출입할 수 있는, 그것도 한 달에 한 번만 출입을 허락하는 곳이 있다. 바로 전원합의실이다. 판사들도 경외하는 곳이다 보니 서로 어디인지 알려 하지도 않으며, 외국 최고법원 재판관이 오더라도 쉽게 공개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최근 동아일보에 전원합의실 전경을 사법사상 처음으로 공개했다. 전원합의실은 대법원 11층 대법원장실 옆에 있는 113m² 크기의 방이다. 원탁테이블, 의자 13개가 있고 테이블에는 마이크가 설치돼 있다.

  

언뜻 보면 여느 회의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곳은 서로 다른 대한민국 구성원의 시각과 견해가 대립과 갈등하고 한데 섞이는 용광로같은 공간이다. 여성에게 종중원 자격을 인정해 양성 평등의 가치를 확인하고,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적법하다고 판결해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할 길을 마련한 곳도 전원합의실이다.

 

대법원5.jpg


 

한 해 사건 3만여 건 중 전원합의 처리는 0.06%전원합의체 실종 현상

 

전원합의체는 최고 법률심으로서 국민 생활이나 기본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놓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법원행정처장은 제외)이 심도 있는 토론을 거쳐 판결한다. “이것이 법률이다라고 판단해 법해석에 통일성을 기하고 입법상 흠결을 법해석으로 메우기도 한다. 대법관 사이에 치열하게 이뤄진 토론은 다수의견, 소수의견, 별개의견 등으로 기록돼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전원합의체는 최고법원에 역할과 존재가치를 부여하는 중요한 제도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선 활성화되지 못했다. 전원합의실의 문()도 통상 매달 셋째 주 목요일 한 번만 열릴 뿐이다. 전원합의체의 중요성을 강조해 이용훈 코트(court·법정)’라는 미국식 별명이 붙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재임하던 201117건을 처리한 정도다.

 

양승태 현 대법원장은 전원합의를 1년에 100건 이상 하겠다는 내부 목표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으나 활성화되지 못했다. 취임 직후인 2012년 전원합의체의 사건 처리 건수는 28건으로 가장 많았으나 지난해에는 22건으로 전체 처리 건수(35115)0.06%에 불과했다. 대법원 재판은 전원합의체가 원칙인데 소부(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소재판부) 선고가 사실상 100%에 가까워 전원합의체 실종 현상이 생긴 것이다. 예외가 원칙을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소부에 시시각각 쌓여가는 사건 더미에 파묻힌 나머지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회부하는 데 방어적인 자세를 보이는 데 있다. 서로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다른 대법관들에게 일감을 주기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사건 하나로 몇 시간 격론을 벌이는 전원합의체와 소부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에는 사건 처리의 밀도와 농도에 질적인 차이가 있다소부에서 끊임없이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쟁점이 들어있을 것 같은 사건이 있어도 추가로 숙고할 시간이 없을 때가 많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전원합의는 필수불가결한 사안에 한정돼 열리는 상황이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없더라도 전문적인 민사사건에서 기술적 문제로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전원합의체가 열릴 때가 많다. 대법관들은 여러 소부에 비슷한 사건이 있을 경우 대법관들이 쟁점과 내용을 공유한 다음 판결을 내리기도 하지만 이는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로 미국 내 극심한 흑백차별의 벽을 무너뜨리고, 한낱 성폭행 사건인 미란다 사건에서 형사사건의 절차적 정당성이 지닌 가치를 확인하며 국민 권리 보호에 앞장선 것과 크게 대비된다.

 

강한승 변호사는 상고허가제로 운영되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내리는 판결 수는 100건이 채 안 되지만 심리할 사건을 숙고 끝에 선정하고 판결하는 만큼 시민 권리 증진에 기념비적인 역할을 하는 판결이 나온다우리 대법원에서 전원합의를 활성화하고 영혼이 담긴 의견을 나누는 것은 현행 상고심 제도하에서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원합의체 활성화해야 최고법원 위상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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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법학계 권위자로 6년간 대법관 생활을 거치고 퇴임을 앞둔 양창수 대법관은 동료들에게 대법관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면서도 가장 즐겁고 인상 깊은 시간으로 전원합의를 했을 때를 꼽았다고 한다. 활발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열리고 때로는 고성이 오가지만, 조직 구성원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이런 합의체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전원합의의 과정은 쉽지 않다. 주심 대법관이 충분한 검토 끝에 사건을 전원합의체라는 밥상에 올리면 그때부터 격론이 벌어진다. 대법원장과 최후임 대법관인 조희대 대법관 사이에서도 토론이 벌어진다. 양창수 대법관과 김소영 대법관은 대학 사제지간이지만 의견이 일치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차한성 전 대법관은 대법원 식당에서도 토론과 설득 작업이 계속될 정도로 다수의견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논쟁을 한다수차례 전원합의를 거쳐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등 대법관 의견을 포함하려면 판결문을 최소한 10번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없고 대법관 간 의견 일치가 된 사건이더라도 국민적 관심이 있는 사건이라면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기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재벌 총수들이 기업을 사금고화한 사건에서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풍부한 검토를 벌여 결론을 내린다면 국민과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가 커 건강한 기업 운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장관석 jks@donga.com ·신동진 기자)

 

서열 떠나 그 발언 취소하세요, 나도 대법관이오격론

[기로의 대법원, 갈 길을 묻다]전원합의실 난상토론 어떻게

법 잘몰라 그런 소리반박에토론도중 자리 박차고 나가기도

  

그 발언 취소하세요. 나도 같은 대법관이오.”

 

전현직 대법관들은 전원합의체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격론을 벌이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도 많았다고 했다. 특히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 진보 성향 대법관이 근무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더 치열한 논쟁과 설전이 벌어졌다.

 

몇 해 전 토론 도중 일부 대법관이 실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렇게 말한다면 판사도 아니다” “적어도 양식 있는 판사라면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때 한 대법관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발언을 취소하라고 요구했고, 이에 해당 대법관이 사과했다고 한다.

 

토론 도중 한 대법관이 다른 대법관으로부터 노동법을 잘 몰라서 그런 주장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논박을 당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일도 있었다. 결국 이 대법관은 한 달 뒤 열린 전원합의에서 노동법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새롭게 연구해 봤는데, 여전히 해당 대법관의 견해는 잘못된 것 같다고 맞받았다는 후일담도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오전 9시 반에 시작된다. 전원합의실에 대법관들이 모두 입장하면 보고를 받은 대법원장이 대법원장실과 연결된 전용문으로 입장한다. 책상에는 각종 기록과 보고서가 가득해 반대편 대법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대법관들은 오전 내내 사건을 놓고 의견을 나누다 낮 12시 반 무렵 대법원 3층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이어 오후 2시에는 지난달 결론을 낸 전원합의 판결을 1층 대법정에서 선고한다. 선고가 끝나면 다시 전원합의실에서 저녁때까지 합의를 계속한다. 전원합의가 오후 8시를 훌쩍 넘기는 일도 있다.

 

전원합의를 녹음하거나 녹화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합의할 때는 나이나 기수와 관계없이 난상토론이 벌어진다. 최종 의견을 표명할 때는 13명 중 가장 후임 대법관부터 선임 대법관 순으로 발표한다. 자유로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다. 대법원장은 가장 마지막에 의견을 밝힌다. 대법원장 의견 표명 전에 다수의견이 결정되면 대법원장은 통상 다수의 의견에 따른다. 의견이 6 6으로 갈릴 때는 대법원장은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지만 이때도 의견을 밝히기보다는 한두 차례 합의를 다시 거친다고 한다.

 

전원합의가 끝나면 대법관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한다. 김용담 전 대법관은 치열한 논쟁을 벌인 만큼 함께 화합하는 성격의 자리지만 감정이 채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대법관들이 보일 때도 있다고 전했다.(장관석 jks@donga.com ·신나리 기자)

 

 

(동아일보 2014. 8. 13.)

 

“2심이면 충분상고심 엄격 제한중대사건만 다뤄

[기로의 대법원, 갈 길을 묻다]<3·> 상고남발 막을 방법 없는 유일한 나라, 한국

 

개인과 개인 사이의 정의를 세우는 데는 두 번의 재판이면 충분하다. 세 번째 재판(상고심)은 그 사건에서 누가 이기는가보다는 더 높은 차원의 문제가 관련된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미국 27대 대통령을 지낸 10대 연방대법원장 윌리엄 태프트(18571930)가 남긴 법언이다. 미국 상고심의 역사는 태프트 연방대법원장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그는 미국 사법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선진국, 상고심 개혁으로 국민 기본권 확립

 

취임 첫해 그의 상고심 개혁 의지는 단호했다. 당시 상고심 재판에 걸리는 평균 시간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5. 대법원이 사건 더미 속에 파묻혀 있다가는 국가와 국민에게 중대한 의미가 있는 판결을 놓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의회를 설득해 상고허가제를 처음 도입했다.

 

이후 재판의 홍수로부터 해방된 미 연방대법원은 미란다 원칙 고지, 11표제 허용, 흑백 차별 철폐 등 기념비적인 판결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지금도 연간 상고허가 신청사건은 1만 건을 넘지 않으며 70여 건만 전원합의 판결의 대상이 된다.

 

상고심 사건 폭증 문제는 민주적 사법체계를 운영하는 나라들이 모두 경험한 일이다. 미국 독일 등 사법 선진국들은 다양한 제도 개선으로 풀어냈고, 대법원이 최고 정책법원 기능사법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상고허가제는 이 가운데 가장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방안으로 손꼽힌다. 미국은 상고허가신청이 들어오면 룰 오브 포(Rule of 4)’, 9명의 대법관 가운데 4명이 동의해야만 대법원의 상고심이 열린다. 이 중 98% 정도가 만장일치로 기각된다고 한다. 대니 전 미국 뉴욕 주 브루클린지원 형사수석부장판사는 미국 국민에게 연방 대법원은 국민의 인권을 확실히 표현해줄 수 있는 곳이며 공권력의 기본권 침해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뚜렷하게 표현해주는 기관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영국은 2009년 대법원을 새로 설치하면서 기존에 있던 상고허가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일반 공중에게 중요한 법적 쟁점을 포함하고 있어 대법원이 심리해야 한다고 인정할 때 상고를 허가한다. 독일은 민사사건에 2002년부터 상고허가제를 전면 적용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독일은 2002년 이후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던 상고심 사건 접수가 20043633, 20113357건으로 진정 추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상고심 사건 수가 우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최고재판소로 올라오는 사건을 선별하는 상고수리제를 운영하고 있다. 헌법 위반이나 기존 판례에 저촉될 때는 상고가 인정되지만 그 외에는 중요한 법령 해석이 쟁점이 될 때만 최고재판소 재량으로 상고 수리 여부가 결정된다. 이호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고수리제가 도입된 이후 일본은 최고법원으로 가서 모든 것을 끝낸다는 의식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제 역할 하면 국민 전체 권리 증진

 

우리나라에도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기능을 강화하면서도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까지 보장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려는 것이냐” “대법원이 힘 있고 돈 있는 자의 사건만 처리하겠다는 말이냐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상고허가제는 1981년 도입됐지만 권위주의적 발상 아래 시행됐다는 국민 불신으로 1990년 폐지됐다. 이에 앞서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둔다는 논의도 진행된 적이 있었지만 이 역시 소송가액을 기준으로 사건을 나누다 국민 법감정에 맞지 않아 철회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결국 한국은 상고남발 필터링제도가 없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상고에 부적합한 사건을 종결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제도가 있지만 기록을 검토한 다음 결론을 내기 때문에 큰 효과는 없는 실정이다. 한 전직 대법관은 당시 대법관들이 여러 전원합의 판결로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판결을 내렸다면 상고허가제가 불신을 받고 제도가 폐지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국민 기본권 신장에 나서지 않은 대법원과 역대 대법관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이제는 한국 사회의 전체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선진 사법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미란다 원칙의 주인공 미란다는 밤길에 여성을 뒤따라가서 성폭행하거나 미수에 그친 연쇄 성폭행범이었다어찌 보면 단순 성범죄에 불과한 사건에서 중요한 형사 절차적 의미를 찾아낸 것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최고법원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 ·신동진 기자)

 

우리 현실에 맞는 상고심 다이어트대안은

上告허가제 효과적이지만 반감 커3심 제한않는 상고법원 신설 유력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청사 용지에는 사연이 있는건물 하나가 있다. 2007년 준공된 서울고법 별관 건물로 건설 초기만 해도 대법원과 별도로 상고심(3) 사건을 전담해서 다룰 고등법원 상고재판부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17대 국회에서 대법원과 고법 상고부가 각기 다룰 사건을 나눌 객관적 기준이 무엇이냐라는 논란에 부딪히면서 무산됐다. 결국 이 별관 건물은 현재 서울고법 행정재판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상고심 재판은 대법원이 맡는 게 능사인가라는 질문은 수십 년 동안 풀리지 않는 고민거리다. 세계 각국도 자국 실정에 맞게 여러 형태로 상고심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유일한 최선의 정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한 해 36000건이 넘는 사건이 대법원으로 몰려들었고 이제는 더이상 미루기 어려운 숙제가 됐다.

 

국민들은 대법원에 상고심이 몰려 사건 처리가 늦어지고 충실한 심리를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대체로 대법관 증원 상고심 사건을 대법원이 취사선택하는 상고허가제상고심 전담 법원을 별도로 설치하는 상고법원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대법원7.jpg

 

상고 남발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안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운영하는 상고허가제다. 이 제도는 국내에서도 1981199093개월간 운영됐으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발로 폐지됐다. ‘대법원 판단을 꼭 받아보겠다는 요구가 강한 국민 정서를 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최종심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만큼 강하다.

   

현재 12명인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제외) 수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상고 남발의 근본 원인은 하급심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되는데 대법관을 증원하면 우수한 판사들이 1, 2심이 아닌 대법원으로 몰리면서 하급심을 오히려 약화시킬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대법원에 소()재판부만 늘어나 판결이 서로 엇갈리고 전원합의체 기능이 무력화되면 사회 전체의 근본적 가치선택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최고법원으로서 역할도 할 수 없다. 박시환 전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기능은 최고법원이라는 대법원이 가진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며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은 전원합의체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하급심을 강화하려는 사법개혁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대법관에 버금가는 풍부한 경륜과 실력을 갖춘 고위 법관들로 별도 법원을 만들어 상고심 재판을 전담시키는 상고법원을 두는 방안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3심 재판을 받을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최고법원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는 일종의 절충안이다.(신동진 shine@donga.com ·장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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