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노릇

2017.08.07 14:58

우민거사 조회 수:9055


오늘이 입추이다. 

이론상으로는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영상 35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참으로 덥다.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나흘 후면 말복인데, 말목이 지난다고 해서 더위가 시들어질 것 같지도 않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4계절이 뚜렷하다는 것이 장점이었고,

그래서 보통 6,7,8월 석 달 동안을 여름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기상학적으로는

하루 평균기온이 20도 이상으로 올라간 후 계속 그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를 여름이라고 한다.

 

지난 100년간 한반도 기후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1910년대 서울의 여름기온 일수는 평균 94일이었는데, 2011년부터 2016년은 130일이었다고 한다.

100년 사이에 여름이 36일 늘어난 것이다.

한 달 30일을 기준으로 하면 이젠 여름이 넉 달을 넘어가는 셈이다.

특히 작년 서울에서 하루 평균기온이 20도를 넘은 날은 무려 142일이었다거의 다섯 달이나 된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는 그 이상으로 길어지고,

머지않아 한 해의 절반(아니 그 이상)이 여름으로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더운 것이 일상화되어 새삼 덥다는 말을 하지 않는 상황이 도래할지 모르겠다.

상상만 하던 한반도 기후의 아열대화가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런가 하면 봄부터 이어진 가뭄으로 전 국토가 타들어갔었는데,

어느 순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가뭄 해갈을 넘어 곳곳에 물폭탄을 터뜨렸다.

이쯤 되면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하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일기예보 담당자들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할지 능히 짐작된다.

봄 같은 가뭄을 생각하면 댐과 보의 수문을 닫아서 물을 가둬야 하고,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를 생각하면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수문을 미리 열어 물을 빼 두어야 하는 물 관리 담당자들의 고충 또한 마찬가지 아닐는지.

 

그런데 하늘은 하늘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하늘 노릇하기는 뭐 쉬운 줄 아냐?”

 

做天難做四月天(주천난주사월천)

蠶要溫和麥要寒(잠요온화맥요한)

出門望晴農望雨(출문망청농망우)

採桑娘子望陰天(채상낭자망음천)

 

         하늘이 하늘 노릇하기가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란다.

         집을 나선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고 농부는 비 오기를 기다리는데

         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날씨를 바란다.

 

유불선에 능통했던 대만의 저명한 학자로 금강경강의’ 등 많은 저서를 남긴 남회근(南懷瑾)

중국의 농민들 사이에 예로부터 회자되던 농요(農謠)를 다듬은 시라고 한다.

신임 검찰총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읊어 유명해진 바로 그 시이다.

 

비가 오면 짚신 장사 하는 자식을 걱정해야 하고,

비가 안 오면 우산 장사 하는 자식을 걱정해야 하는 부모의 이야기처럼,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할 때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를 찾아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사람이 저마다 자기 소리를 하면 듣는 이는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나.

제갈공명의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삼계탕.jpg


속담에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고 한다.

반복되는 무더위와 폭우에 삼계탕으로 보신이라도 할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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