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개야 공산(空山) 잠든 달을

2017.08.31 16:39

우민거사 조회 수:9540


8월의 마지막 날이다.

지난 주 수요일이 모기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處暑)였다.

8월 들어 마치 장마가 다시 찾아온 양 툭하면 내리는 비 덕분에 더위의 기세가 완연히 꺾인 듯하다.

오히려 산사(山寺) 가는 길목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서서히 황금색으로 변해 가고 있는 금당천변 들녘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결국은 물러가고, 금풍(金風)이 삽삽하게 부는 가을이 지척이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그도 잠시, 곧이어 삭풍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이 찾아오리라.

더불어 정유년도 저물고.


어느 가요의 노랫말 그대로입니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 

 

코스모스.jpg


들판.jpg

   

그런데 가는 세월이야 자연의 흐름이니 못 막는다 하더라도,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재앙이 몰려오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예측불허의 김정은이 야기하는 안보 불안이 한반도 상공에 먹구름을 불러와 그렇지 않아도 피곤한 것이 작금의 우리의 삶인데,

살충제 계란, DDT 닭, 간염 소시지, 발암물질 생리대 등등...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끔찍한 이야기가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

어쩌다 우리는 안보 불안도 모자라 기본적인 의식주 자체의 안전마저 위협을 받는 지경에 처하게 되었을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원시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찌 해야 하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지은 시 가운데
 
水國秋光暮(수국추광모) 
驚寒雁陣高(경한안진고) 
憂心輾轉夜(우심전전야) 
殘月措弓刀(잔월조궁도)

 

               바다에 가을빛이 저물어가니 
               추위에 놀란 기러기떼 높이 날아가네.
               나랏일 걱정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데 
               새벽달이 활과 칼을 비추는구나.
                        
라는 시가 있다.  

 

위 시에 나오는 바다는 아마도 한산도 앞바다일지 모르겠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인데,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나랏일 걱정하느라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 보니 어느 새 새벽이 되었고,

아직 지지 않고 남은 달이 활과 창을 비추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장군의 우국충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시조도 있다.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먼 데 개 짖어 온다.
    시비(柴扉)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空山) 잠든 달을 짖어 무삼 하리오.

 

공산개.jpg


툭하면 비가 온 때문인가, 

칠석이 이틀 늦은 밤의 상현달이 유난히 밝다. 


한낮 촌부(村夫)가 언감생심 충무공의 흉내를 낼 일은 아니지만,

전직 대통령의 탄핵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이른바 각종 국정농단 사건 재판들,

봄부터 이어져 온 사법부의 내홍,

차기 대법원장 인선을 둘러싼 정치권의 예상되는 갈등 등을 바라보는 국외자의 마음도 안온하지가 않아 전전반측을 하게 된다.

이는 아마도 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생각하고 걱정하는 바의 방향은 다를지언정(서로 정반대의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 비슷하지 않을까.

“法”이라는 글자가 물(水)이 흘러가는(去) 모습이듯이,

범부는 그저 모든 게 물 흐르듯 순리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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