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 10. 13.자)

大法 "혁명 목표로 한 노동운동은 민주화운동 아니다"

 [80년대 '仁勞會' 사건 관련 판결]

"1심과 2심 판결은 민주화 운동 法理 오해한 것"

 

    결과적으로 1980년대 권위주의에 맞서 노동운동을 한 것으로 보이더라도, 이적(利敵)단체에 소속돼 민중민주주의 혁명이나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활동한 것이라면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회주의 혁명의 한 수단으로 노동운동을 한 사람은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로 향후 유사한 사건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회원이자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간부였던 신모(56)씨가 "인노회 소속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한 사실을 인정하라"며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신씨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1985년 대우전자 인천공장에 입사해 노동운동을 했던 신씨는 이듬해 1월 해직됐고, 1988년에는 인노회에 가입해 노동운동을 하다가 국가보안법과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형을 확정받았다. 그는 또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2차례 국보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인노회 신씨 사건의 핵심 쟁점과 1·2심, 대법원 판결 비교.
인노회는 여러 차례 이적성을 지적받은 단체이고, 범민련 역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됐다.

2001년부터 신씨는 자신의 과거 활동이 모두 민주화 운동에 해당하고 그 과정에서 간질환까지 얻었다며, 위원회에 명예회복 및 상이자 보상금 지급을 신청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신씨가 대우전자에서 1년간 벌인 노동운동만 민주화 운동에 해당할 뿐, 이후 인노회·범민련 활동은 민주화 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신씨는 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해 인노회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해달라고 했지만, 같은 결과가 나오자 2011년 법원에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신씨가 인노회·범민련 등에서 활동하며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인하는 행위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단정하긴 어렵다"면서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노동자의 권익과 인권보장을 증진하기 위한 행위를 한 것으로 국민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신씨가 이적 성향을 띠었지만, 활동 자체는 민주화 운동이 맞기 때문에 인정해줘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1·2심의 판결을 뒤집었다. 신씨가 속한 단체의 이념과 목적이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고 그 수단의 하나로 노동운동을 했다면 민주화 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인노회의 이념과 목적은 '반미 자주화·반파쇼 민주화 투쟁·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통일사회주의 혁명 실천' 등에 있었고 신씨도 이런 이념·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동한 것이 분명하다"며 "신씨의 활동이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는 외관을 일부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민주화 운동이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1·2심 재판부가 '다른 인노회 간부들은 민주화 운동을 인정받았다'며 평등 원칙을 강조한 부분에 대해서도, "그런 사정만으로 신씨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보긴 어렵다"면서 "신씨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판단한 원심은 '민주화 운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단을 그르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같은 단체에서 활동했더라도 개개인의 목적과 활동 내용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선례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민주화 운동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 1·2심은 민변 소속 권정호(55) 변호사가 맡아 원고 일부 승소를 받아냈고, 상고심에선 이정희(45)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인 심재환(56) 변호사와 하주희·김낭규·김종우 변호사 등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대거 가세했으나 결국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다.(최연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