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次古韻)

2014.12.31 10:15

범의거사 조회 수: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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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마지막 날이다. 

정말로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갑오년이 가고

푸른 양의 을미년이 다가오고 있다.

갑오년의 해나 을미년의 해나 다 똑같은 해일 뿐 다른 해일 리가 없지만,

그래도 내년이면 32년간 몸답았던 법원을 떠나는 범부에게는

새해가 열리는 느낌이 다르기만 하다.

 

마침 한 해를 보내는 소감을 구구절절이 피부에 와 닿게 그려낸 詩가 있어

필부의 심정을 그 시에 담아 한 해를 마무리한다. 

  

꽃 피는 새 봄이 오면 붕우(朋友)와 함께 술동이를 비워볼까. 

 

 

 

            한 해를 보내며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

 

골짜기로 가는 긴 뱀처럼

서둘러 해가 넘어가는 때라

눈앞으로 지나가는 세월을 보며

오랫동안 상념에 젖어 있다.

 

나이 든 얼굴은 움츠러들어

귀밑머리엔 서리가 내려앉고

추위가 기세등등한 가운데

나뭇가지엔 눈이 얹혀 있다.

 

글 읽는 사람으로

스스로 힘써야 할 뿐

청산 밖 세상사를

어찌 알겠는가?

 

아름다운 약속을 남겨

술동이를 가득 채워 놓고

꽃을 피우는 첫 번째 바람이 불

그날을 기다리노라.

   

次古韻

 

赴壑脩鱗日不遲 (부학수린일부지)

年光閱眼久尋思 (연광열안구심사)

衰容縮瑟霜添鬢 (쇠용축슬상첨빈)

寒意憑凌雪在枝 (한의빙릉설재지)

黃卷中人須自勉 (황권중인수자면)

靑山外事也何知 (청산외사야하지)

十分盞酒留佳約 (십분잔주유가약)

會待花風第一吹 (회대화풍제일취)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 선생이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밑에 쓴 시이다.

 

세밑에는 잊고 지냈던 세월의 흐름이 의식 속에 들어오고,

나이와 건강과 해놓은 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즐겁고 아름다운 상념에 젖어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대개는 주름살 깊어진 얼굴처럼 아쉬움과 한탄이 앞서기 마련이다.

 

성호 같은 철인(哲人)도 청산 밖 세상일은 모른다고 했다.

남이나 세상일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는 필부로서는 자기 자신에게나 집중할 밖에.

꽃피는 봄에나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여유를 찾을 수 있으려나.

 

그 때 쯤에는 술동이의 술도 잘 익으리라. 

하여

勸君更進一杯酒(권군갱진일배주, 그대에게 한 잔의 술을 권하노라)를 할 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