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도 오르는데...

2016.02.06 17:21

범의거사 조회 수:254


병신년 새해가 시작되나 싶더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立春이 엊그제였다.

사실 역술상으로는 을미년 양띠에서 병신년 잔나비띠로 바뀌는 시점이 바로 입춘이니,

지난 한 달은 예행연습을 한 기간으로 치는 것이 살 같이 흐르는 세월을 잠시라도 붙들어 매는 묘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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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 윗세오름]


역마살이 낀 사주를 피할 길이 없어,

해가 바뀌자마자 연초부터(18,9) 다녀온 한라산의 설경 잔영이 뇌리에서 미처 사라지기 전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다녀왔다(122-30).

2년 전에 푼힐 전망대(해발 3,200m)까지 갔다 온 후 다시 찾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빚을 지고 살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 빚에 이자를 더해 갚느라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 줄여서 ABC라고 부른다. 해발 4,130m)까지 갔다 온 것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다가도 고도의 상승에 따라 비가 오기도 하고 진눈깨비가 내리기도 하더니

급기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눈보라가 치는 날씨로 바뀌는 가운데도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절로 대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았다.

거창한 표현을 빌리자면 物我一體라고나 할까.

 

ABC에 간 김에 그곳에 있는 고 박영석 대장 추모비에 술도 한 잔 따르고 왔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 산악계의 거봉인 고인은 201110월 안나푸르나 1(해발 8,091m)의 남벽에 새로운 등반루트(코리안 루트)를 개설하다가 추락하여 실종되었고, 아직도 시신을 못 찾아 안타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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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푸르나의 일출 광경]


혹자는 말한다. 전문산악인도 아닌데 고생스럽게 그런 곳을 왜 가냐고.

그렇지만 해발 3,000m를 넘으면서부터 산소 부족으로 고산증 증세에 시달리고,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 침낭에만 의지하여 새우잠을 자면서도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생각보다는,

이 정도의 고생도 안 하고 어찌 히말라야의 절경을 감상할 것이며,

이러지 않고서야 고생 끝에 찾아오는 성취감을 어찌 맛볼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 앞섰다.

이런 생각은 범부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 동행한 일행 중에는 3월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중학생도 있었는데,

마음을 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 이번 등반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하였다.

 

그래서일까. 등반 도중에 만난 다른 일행에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서 4개월째 배낭여행을 하면서 안나푸르나까지 온 청년,

네팔 현지인 포터 한 명을 고용하여 단신으로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여대생,

엄마와 함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가는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남자 아이들... 

 마침 기상이 악화되어 눈이 많이 내렸기 때문에 그들이 그 후 과연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그 의지와 기상 하나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했다.

실로 자랑스런 한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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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푸차레]


지금 나라에서는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신문을 펼치면 비관적인 이야만 다룬 기사들만 넘쳐난다.

이럴 때 정치권이라도 힘을 합쳐 난국 타개에 나서 주면 좋으련만,

4월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이라 이해관계가 엇갈려 그도 기대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이런 판국에 엎친 데 덮친다고 북한은 핵실험도 모자라 막무가내로 장거리 미사일까지 발사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마치 몰아치는 눈보라로 한 치 앞이 안 보이던 안나푸르나 같다.

 

그러나 정신 차리고 한 발 한 발 걷다 보니 그 안나푸르나의 베이스캠프까지 갔다가 무사히 귀환하였듯이,

현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두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바짝 차리면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믿는다

 더구나 우리에겐 초등학생도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도전정신이 살아있지 않나.

 

매섭게 기승을 부리던 추위가 물러나고 포근한 날씨가 찾아오듯

입춘,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절과 더불어 우리 사회 전반에 훈풍이 불어오길 간절히 기대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