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2016.10.24 12:29

우민거사 조회 수:334


어제가 상강(霜降)이었다.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절기이다.

낮에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대신에

밤에는 기온이 낮아져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서리가 내렸다는 이야기는 안 들리고,

어제는 오히려 가을비가 종일 내렸다. 

그리고 절정에 이른 단풍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신문 방송을 장식하고,

거기에 더하여 노란색과 흰색의 국화꽃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전국 곳곳에서 국화꽃 축제가 열리는 것에 맞추기라도 하듯

우거(寓居) 주위에도 국화가 만발하여 새벽 산책길의 발걸음을 흥겹게 한다.

 

국화1.jpg


그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슬피 울고,

한여름 먹구름 속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울었지만,

뭐니뭐니 해도 서리를 이기고 피어나야 비로소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는 것이 아닐까.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춘풍(三月春風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그렇다.

다른 꽃과 나무들은 서리를 맞으면 시들지만 국화는 오히려 서리가 와야 진가를 발휘한다.

국화가 서리를 이겨내고 고고하게 절개를 지키는 모습을 보며,

풍상이 섞어 친 후에 피는 황국(黃菊)이야말로 상강지제(霜降之際)에 으뜸가는 꽃이라 하여

그 옛날 나랏님도 이를 금분(金盆)에 가득 담아 옥당(玉堂)에 보냈다. 

도리(桃李)는 꽃인 양 하지 말라며.

 

국화2.jpg


조선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권문해(權文海. 1534-1591)는 국화가 핀 상강(霜降)의 정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읊었다.

 

半夜嚴霜遍八紘(반야엄상편팔굉)

肅然天地一番淸(숙연천지일번청)

望中漸覺山容瘦(망중점각산용수)

雲外初驚雁陳橫(운외초경안진횡)

殘柳溪邊凋病葉(잔류계변조병엽)

露叢籬下燦寒英(노총이하찬한영)

却愁老圃秋歸盡(각수노포추귀진)

時向西風洗破觥(시향서풍세파굉)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내리니

          천지가 한 번에 맑아져 숙연하네.

          바라보이는 산의 모양은 점점 파리해지고

          구름 저편의 놀란 기러기 떼는 가로로 날아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병든 잎을 떨구는데

          울타리 밑 이슬 머금은 국화는 오히려 찬 꽃부리가 빛나누나.

          능숙한 농부는 가을이 다 가는 것을 걱정하며

            이따금 부는 서풍에 깨진 술잔을 씻는다.

 

차기 대통령선거가 아직 1년 2개월 남았는데,

요사이 신문지면은 벌써부터

유력한 대선주자이니 잠룡(潛龍)이니 하며

많은 지면을 자천 타천의 인물들에 할애하고 있다.

 

북한의 거듭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한 안보 위협,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위기 등 쌓여만 가는 국내외의 난제들을 생각하면

결코 그렇게 한가한 때가 아닌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이리 성급할까.

 

상강(霜降)에 도도하게 피어나는 국화꽃의 모습을 한 마디로 집약한 오상고절(傲霜孤節)!

작금에 그 오상고절의 의미를 새삼 곱씹어 보는 게 범부만의 일일까.

쓸 데 없이 이런 저런 상념에 젖지 말고,

동쪽 울타리 밑의 국화를 꺾어들고 유유히 남산이나 바라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