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편지

2013.10.19 22:07

범의거사 조회 수:9710

가을풍경.jpg

 

며칠 전 내린 얼마 안 되는 양의 비가 갑작스런 추위를 몰고 왔다.

가을이 왜 이리 더디가 지나가냐고 재촉하는 비였나 보다.

만일 진정 그렇다면 계절의 신이 너무 짖꿎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봄가을이 자꾸 짧아져 가고 있어 아쉬운 판이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 일은 늘 희비가 교차되기 마련이다.

며칠 전 추위를 대동하고 비가 온 대신

그 보상으로

그 다음 날 오전에는 류현진이 미국에서 대단한 활약상을 전해 오고

밤에는 국가대표 축구팀이 축구팬을 즐겁게 하여 주었다.

 

누군가 말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뚜렷이 구별되는 4계절이 있는 게 아니라 더 세분된 6계절이 있다고.

이름하여,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 초겨울, 한겨울, 늦겨울

이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 다소 헷갈린다.

 

아무튼 목하 가을이 한창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주 토요일에 찾았던 연인산의 푸른 하늘은 실로 가늘 하늘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한로(寒露)가 지나고 며칠 후면 상강(霜降)이다.

고개 숙인 억새 사이로 가을의 향기를 날라다 주는 금풍(金風)은 삽삽하고,

동방에 우는 실솔(蟋蟀)은 깊은 수심을 자아내는데,

창공의 홍안성(鴻雁聲)이 전해 오는 먼 데 소식은 어떤 것일까.

 

당나라의 시인 장적은 낙양성에서 가을바람을 보고 문득 고향생각이 나 서둘러 집에다 편지를 썼지만,

 

      秋思 

 

洛陽城裏見秋風  낙양성에서 가을바람을 맞으니

欲作家書意萬重  집에다 편지를 써야겠는데 생각이 만겹이라

復恐悤悤說不盡  서두르다 미처 다 쓰지 못한 것 같아 걱정되어

行人臨發又開封  편지 전할 행인이 길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뜯어본다

 

아침 산사의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을 스치고 지나는 가을바람을 본 범부는

받는 이 없는 시월의 편지를 허공에 띄워 본다.

 

 처마와 풍경.jpg                                        

 

시월의 편지                        

          

                                 목필균
깊은 밤
별빛에 안테나를 대어놓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

바람결에 날아드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느냐고

온종일 마음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모를 서글픔이
서성거리던 하루가 너무 길었다고

회색 도시를 맴돌며
스스로 묶인 발목을 어쩌지 못해
마른 바람 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 않을 엄살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편지를 씁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을 사람도
누구라도 반가울 시월을 위해
내가 먼저 안부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