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11월

2013.11.23 14:50

범의거사 조회 수:12242

 

어제가 소설(小雪)이다.

바야흐로 눈이 내일 정도로 겨울이 시작되는 때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제 새벽 여명이 밝아오는 우면산 산길에는 눈 대신 무서리가 반짝였다.

정작 상강(霜降)은 한 달 전에 지났는데 말이다.

아마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상강 후 입동(立冬)이 지나고 소설이 되도록 아직 큰 추위가 오지는 않았다.

우리 조상들은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고 했다. 이유인즉 소설에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새는 농촌에서도 예전처럼 보리농사를 많이 짓지를 않으니,

이제는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막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손돌바람(孫石風)만큼은 불어야 하지 않을까.

 

손돌바람은 아니더라도,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니 어디로든 가자고 등을 떠미는 바람이 상처 입은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것은 막을 길이 없다. 정작 커다란 상처를 안겨 준 사람은 오히려 자기가 상처를 받은 양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게 인간사이다.   

뒷모습을 보이고 멀어져 가는 가을의 뒷자락이 아스라하다.

 

그나저나 연말이면 우리나라 가계빚이 1,000조를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경제에는 언제나 봄볕이 들까.

모두가 힘을 모아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한 ‘경제살리기’에 매달려도 모자랄 판인데,

신문을 펼치면 이마에 내 천(川)만 그려지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잔인한 11월이 지나가고 있다.

감기라도 걸리지 않게 조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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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의 시 
     
    세상은 저물어
    길을 지운다

    나무들 한 겹씩
    마음을 비우고

    초연히 겨울을 떠나는 모습
    독약같은 사랑도
    문을 닫는다

    인간사 모두가 고해이거늘
    바람도 어디로 가자고
    내 등을 떠미는가

    상처깊은 눈물도 은혜로운데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서쪽 하늘에 걸려
    젖은 별빛으로
    흔들리는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