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론(四生論)

2013.06.27 18:36

범의거사 조회 수:9880

 

예년보다 열흘 앞서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더니,

비는 오는 둥 마는 둥 하고 연일 무더위가 계속된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새 하지(21일)가 지나갔다.

계사년의 시작을 알린 종이 울린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어느새”라는 표현을 쓰다 보니, 더 실감나는 “어느새”가 있다.

다른 게 아니라,

온 나라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6·25 사변의 포성이 멈춘 후 “어느새” 6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6·25 사변은 구(舊)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터무니없는 야욕이 빚은 우리 민족의 참화였다.

북한 공산군의 군화에 짓밟혀 벼랑 끝에 매달린 풍전등화의 나라를 구한 것은 주지하는 대로 유엔군의 참전이었다.

그러나 유엔군의 도움만으로 우리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내 손으로 내 나라를 지키겠다는 우리 국민의 굳은 의지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 아닐까.

 

아래 일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북한 공산군과 대치하고 있는 벙커를 지키고 있던 한국 병사에게

맥아더 장군이 물었다.

 

"전세가 이렇게 밀리고 있는데 왜 도망을 가지 않느냐?"

 

그러자 한국병사가 대답했다.

 

"후퇴하라는 명령은 없었습니다."

 

감동받은 맥아더 장군은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말했고,

한국 병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충분한 실탄과 총을 지원해 주십시오."

 

자신을 이 벙커에서 빼달라는 대답을 예상했던 맥아더 장군에게

이 한국군 병사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맥아더 장군은 말했다.

 

"우리는 전력을 다해서 이 나라(한국)를 지켜야 한다."

 

그 후 인천상륙작전이 실행되었고

수만 명의 미국 병사가 한국을 위해 전사했다.

 

얼마 전에 어느 신문사가 고등학생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6·25 사변이 북침이라고 한 대답이 69%나 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그리고 뒤이어 이는 설문조사 문항이 애매하여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일부의 반론도 제기되었다.

 

문득 좌우명(座右銘)을 최초로 쓴 사람으로 유명한 중국 후한(後漢)시대의 학자 최원(崔瑗, 78-143. 호는 子玉)이 한 말이 떠오른다.

 

욕심을 내면 자신을 죽이고,

재산을 남기면 자손을 죽이고,

정치를 잘못하면 백성을 죽이고,

학문과 교육을 잘못하면 나라를 죽인다.

 

최원(崔瑗)의 이른바 사살론(四殺論)이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도대체 6·25 사변의 ‘남침과 북침’의 의미도 구별을 못할 정도로 교육이 엉망인 것일까, 아니면 일부에서 우기고 또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대로 정녕 6·25 사변이 남한이 북한을 침략하는 바람에 일어난 전쟁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2007년 평양에서 개최되었던 남북 정상회담에서 오고간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와중에 오늘은 북경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욕심을 버리면 자신을 살리고

재산을 기부하면 이웃을 살리고,

정치를 잘하면 백성을 살리고,

학문과 교육을 잘하면 나라를 살린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이 즈음, 이런 사생론(四生論)을 갈파하면 어떨까.

바야흐로 그 어느 때보다도 '백성을 살리는 정치, 나라를 살리는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