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귀가 멀었는가(영월청령포, 봉평)
2010.02.16 11:02
하늘은 귀가 멀었는가
단기사천삼백이십팔년윤팔월초하루에 존경하옵는 酋席禪師님께 문안인사 여짜옵니다.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들녁과 食率들의 애절한 눈빛을 애써 외면하고 글틀 앞 아니면 20층 고층건물의 14층에서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하루를 죽이셨을 禪師님,
사라에 버금간다던 사자(라이언)는 조용히 물러가고, 기상청의 민망함이나 덜어 주려는 듯 雲霧에 까까운 細雨만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가운데, 1년을 별러 오던 청령포를 촌자의 발길이 뒤늦게 찾았습니다.
16세의 나이에 盧山君으로 강등된 채, 삼면은 물이고 한면은 절벽인 天惠(?)의 요지에 圍籬安置되어 눈물로 지새웠을 어린(?) 端宗임금의 한스런 날들이 촌부의 변변치 못한 눈에도 삼삼하옵더군요.
"피눈물이 흐르는 가을계곡은 떨어지는 꽃잎으로 붉게 물드는데(血流秋谷落花紅)
하늘은 귀가 멀었는가, 匹夫의 애절한 하소연을 상기도 不答하네(天聾尙未聞哀訴)"
청령포 나루에 서 있는 안내문 속의 어린 임금이 지었다는 詩句에 새삼 옷깃을 여미었지요(春谷을 秋谷으로 無斷 改作하였음을 先行自白합니다).
그나마 산 목숨이라고 1년 만에 賜藥을 마시고도 갈 곳이 없어 한동안 굽이치는 물결 위로 떠돌다, 嚴興道의 충정으로 간신히 물귀신을 면한 채 겨우 잠든 곳, 莊陵은 생각이 그래서인가 어쩐지 비장한 느낌을 匹夫의 가슴에 안겨주더이다.
그러고도 돌아서자 마자 이내 보리밥 한냥푼을 곱창에 꾸역꾸역 쑤셔 넣는 건망증과 厚顔無恥는 小人輩의 어쩔 수 없는 작태 다름아니오이까(솔직히 너무 맛있어유. 꼭 한 번 들러 보세유. 莊陵 바로 옆에 있어유).
영월에서 평창이 인근이기에 나선 김에 메밀꽃의 고장으로 발꼬를 틀었더니 아니 웬 비. 雨裝 없이 나선 길인데...
"北天이 맑다 해서 雨裝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단풍 들고 들에는 찬 비로다."
可山선생의 얼이 서린 곳, 봉평은 역시 보름달 아래 돌가루를 뿌려 놓은 듯 하이얀 메밀꽃이 만발하였습니다.
36세로 요절한 李孝石의 흉상만이 덩그러니 서 있을 뿐 그 흔한 詩碑 하나 없는 곳에 명색뿐인 "가산공원"이라는 팻말이 秋客의 비젖은 발길을 맞아 주더군요.
許生員과 成씨 처녀가 雲雨之情을 나눈 물레방아를 돌려 보면서, 이 심심산골에서 京城第一高普와 京城帝大 法文學部를 다닌 인물이 나오다니... 하는 말 그대로 지극히 속물적인 생각을 하였지요.
묻고 물어 허위허위 달려 간 가산의 생가는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비로소 그런 줄 알 전형적 인 농가였답니다. 그나마 '洪00'라는 문패가 하릴없는 나그네를 한심한 듯 바라보더이다. 언젠가 영국의 셰익스피어생가를 방문했을 때의 쓰잘 데 없는 기억과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곳곳에 널려 있는 괴테하우스를 부질없이 떠올리며 썩은 미소를 가을비에 적셔 보내야 했습니다.
주인 아낙네가 내놓는 방명록에
"찾아 오는 길의 양 옆에 메밀꽃을 흐드러지게 피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곳을 메마른 도시인들을 위한 文學의 産室로 할 수 있다면..."
하는 그야말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푸념을 적는 어린 백성의 손이 한심하기 그지 없더군요. 심심치 않게 찾아오는 저 서울, 대구, 충북의 번호판을 단 차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려고 함이던가?
토종 메밀로 만든 봉평막국수로 또다시 배를 불리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횡성, 원주를 거쳐 꼬불꼬불 산골길을 달려 오니 어느덧 戌時,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덕분에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를 꿈속에서만 흥얼거려야 했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乙亥 仲秋에 凡衣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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