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物은 流轉한다?

2010.02.16 13:29

범의거사 조회 수:13731

   秋史 김정희가 그의 나이 54세에 제주도로 귀양가는 길에 해남 대흥사에 들렀다. 대웅전에 걸려 있는 원교 이광사의 현판글씨("大雄寶殿")를 보고는 草衣스님에게 당장 떼어내라고 호통을 쳤다. 이광사야말로 조선의 글씨를 망쳐놓은 장본인이라는 것이었다. 추사와 막역한 사이였던 초의스님은 할 수 없이 현판을 떼어내고 추사의 글씨로 바꿔 달았다. 추사는 그로부터 무려 9년간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한 후 63세가 되어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그리고 초의스님에게 말했다.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이 보관되어 있나? 있거든 내 글씨를 떼어내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그 때는 내가 잘못 보았네"

   以上은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완당평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2003. 2. 11. 1년 동안의 대전 생활을 마감하고 떠나던 날 일부러 짬을 내서 계룡산의 甲寺를 찾았다. 住持 장곡스님께 작별인사도 하여야 했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의 짐을 벗어야했다.

   내가 갑사를 처음 간 것은 1997년 7월이다. 사법연수원 제자들과 계룡산 등산을 하는 길에 들른 것이다. 아래는 그 때 썼던 글(계룡산 山行記)의 일부이다.
  
   『계룡산 밑에 자리한 甲寺는 백제시대 때 창건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절이다. 비록 마곡사에 딸린 末寺라고는 하나, 그 규모가 여느 本寺 못지 않다. 십간(十干) 중의 으뜸인 "甲" 한 글자를 따서 지은 절 이름에서부터 이 절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입구의 잘 정돈된 길 양옆에 늘어서서 하늘을 가리는 古木들이 절의 역사를 말해주고, 原形을 거의 잃지 않고 있는 철당간의 위치와 크기가 전성기 때의 절의 규모를 웅변하여 준다.ㆍㆍㆍㆍㆍ대웅전에 가려고 절의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맙소사, 정녕 禪房으로나 사용되어야 할 곳임이 분명한데, 떡하니 가게가 차려져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두 군데나. 아무리 불교용품만을 판다고 한다지만,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나의 좁은 견문으로는 이런 절은 처음이다. 선방을 상점으로 만들어 버린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심사가 뒤틀려 대웅전이고 뭐고 대충 둘러 본 후 서둘러 안마당을 벗어났다. 默言祈禱를 하는 大寂殿 가는 길로 접어드니 이번에는 계곡 옆에 전통찻집이 나타난다. 주점이나 다방이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하는 걸까. 큰 절의 입구에는 어디나 그렇듯이 이미 절 입구에 대규모 상가가 조성되어 있는데 무슨 돈을 얼마나 벌겠다고 경내에 발 닿는 곳마다 가게를 늘어놓고 있단 말인가. 불행히도 甲寺는 이미 절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대전고등법원에 부임한 후 몇 달이 지난 2002년 여름에 다시 甲寺를 찾았다. 그리고 몇 번 더 갔다가 2002. 12. 25.에 또 갔다. 그런데, 불교용품을 파는 가게가 있던 건물이 없어졌다. 웬일인가 의아해했는데, 마침 住持 장곡스님이 궁금증을 풀어주셨다.
   본래 그 건물은 甲寺에 없었던 것인데,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추가로 지은 것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가람배치가 '입구(口)자' 형태였던 절을 '날일(日)자' 형태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뒤늦게나마 일제의 잔재를 지우고 절 본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하여 그 건물을 헐어버리고 안으로 물렸던 강당건물을 본래의 자리로 환원하는 공사를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깊은 산 속의 절에까지 미친 일본인들의 간악한 짓에 전율하면서 甲寺측의 조치에 경의를 표했다.

  그 후로 甲寺는 나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전통찻집의 雨前茶 향기가 입안에서 감돌았고, 팔상전의 황토방 요사채는 안온하기 그지없는 안식처였다. 무엇보다도 공양간의 구수한 된장맛을 잊을 수 없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 보이는 것만큼 느꼈다가 5년이 지나서야 아는 만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전을 떠나던 날 甲寺의 대웅전에 꿇어앉았다. 甲寺는 진정한 절이다.    
          
   무릇 알면 아는 만큼 보이지만, 모르면 보이는 만큼만 알고 느끼는 것이 삶의 이치이다. 어제 본 글씨와 오늘 본 글씨는 그 글씨가 그 글씨이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의 눈은 몰랐던 어제와 알고 난 오늘이 다르게 된다. 그러고 보면 流轉하는 것은 萬物이 아니라 萬物을 대하는 눈이 아닐는지...    
   이제 곧 새 정부가 들어선다. 이를 계기로 각 분야에서 개혁의 논의가 한창이고, 법률분야라고 예외가 아니다. 같은 法이라도 어제의 法과 오늘의 法이 달라질지 모른다. 법이 달라지든 법을 보는 사람의 눈이 달라지든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국가와 만족을 위하는 쪽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