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를 찾았으면
2010.02.16 13:38
3월부터 이 나라의 법조계, 아니 전 국민을 들끓게 했던 대통령 탄핵사건이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으로 막을 내렸다. 그 당부를 놓고 또 이런 저런 말들이 오고가지만 이젠 그다지 의미를 둘 일이 못 된다.
언필칭 “국민의 뜻”이라는 게 본래 필요에 따라 가져다 붙이는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원용하는 편리한 수단이지라, 이 사람이 말하는 국민의 뜻과 저 사람이 말하는 그것이 다르다고 하여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는 정당의 존재가 필수적이고, 그 정당은 자기들의 존립 목적에 따라 목소리를 달리 하게 마련이고 보면, 한 쪽에서는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이 국가의 우선적 과제라고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 민생경제 살리기가 먼저라고 외친다고 해서 헷갈릴 것도 없다.
어느 것에 무게 중심을 두든 간에 지금 이 순간 소박한 국민은 이젠 제발 좀 나라가 제 자리를 찾고,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마다 구호가 아닌 내실을 다져가길 바라고 있다고 한다면 틀린 말일까? 그러나 이 또한 검증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국민의 뜻”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의 살림형편이 그것을 과연 용인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어서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주5일제 근무라고 하여 주말의 이틀을 쉬는 분위기가 이 사회에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서초동의 법조타운에서는 주5일 근무는커녕 “월화수목금금금”으로 한 주일을 보내야 하는 법관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느 女판사는 밤 12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것이 일반화되다 보니 안전귀가를 염려한 부모님이 밤마다 데리러 온다고 하고, 급기야는 30대 초반의 젊은 배석판사 한 사람이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지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고 한다. 예비판사 2년을 거쳐 올 봄에 정식으로 임관한 어느 판사는 이런 푸념을 한다.
"달력의 빨간 날이 싫어요!"
화창한 주말에 남들은 산천경개가 좋다고 야단인데, 침침한 사무실에서 눈을 부비며 기록을 넘기려니 "빨간 날"이 어찌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들이 그 흔한 야간근무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을 요구한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그런 것은 꿈에서조차도 생각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들은 단지 사건을 신속, 적정하게 처리하려는 사명감 하나로 밤을 밝히고, 주말을 사무실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사법개혁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 방향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법관들도 “월화수목금금금”이 아닌 “월화수목금토일”의 한 주일을 보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면 분에 넘치는 過慾일까? 작년 1년 동안 대법원에서 처리한 사건수가 무려 17,000여 건이라고 한다.
지금 법원이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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