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산사, 그리고 바다(칠장사와 서해안)

2010.02.16 11:15

범의거사 조회 수:10891



          겨울의 山寺, 그리고 바다



   丁丑년으로 해가 바뀌니, 흐르는 물같던 세월이 시위 떠난 화살같이 지나간다. 중원에서 머물 날도 이제 한 달, 하루하루가 아쉬워 아직은 한 겨울인 1월 26일에 病軀를 이끌고 모처럼 운전대를 잡았다.

   찾아온 일곱 도둑놈을 감화하여 일곱 선사로 만들었다는 七賢山 七長寺는 SBS의 임꺽정 드라마 때문인지 찾는 이가 많았다. 대웅전 앞의 요사채로 보이는 신축 건물의 문에 출연진과 주지 도광스님이 함께 찍은 큼지막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보다는 도광스님이 그린 달마대사의 墨畵가 더 눈길을 끄는데, 한 폭 달라고 할까 봐 그러는지 잠깐 보여주고는 얼른 나가라고 한다.  

   고려시대에 세운 古刹임을 웅변하듯 대웅전의 단청이 다 벗겨지고, 현판 글씨는 눈을 비비고 보아야 했지만, 그것이 더 운치가 있다.
   본래는 엄청난 규모의 巨刹이었는데, 자리한 터가 워낙 明堂이어서 조선시대 때 방귀 깨나 뀌던 사람들이 자기네 조상 묘자리로 쓴다고 자주 불을 지르는 바람에 번듯한 건물이라고는 대웅전 하나가 겨우 남은 小刹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겨울나그네를 슬프게 한다.  

   눈 덮인 산사의 고즈넉함을 맛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포근한 날씨에 녹여버리고, 美食家인 박사 어부인의 명에 따라 냉면집을 찾아 절문을 나섰다. 명색이 겨울인데 말이다.
   안성인지 평택인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언젠가 ‘고박사냉면집’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나. 서울 가서 金가 찾는 식이었지만, 어쩔거나! 지엄하신 분부를 거역할 수가 없으니...  

   다행히 안성 입구의 주유소에 그 집을 아는 아주머니가 한 분 있었다. 평택역 앞의 명동거리에 가면 있다고 한다. 아마 그 아주머니도 박사님 못지않은 美食家인 모양이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 집에는 명성에 걸맞게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TV에 출연한 모습을 액자에 담아 벽마다 주렁주렁 걸어 놓았다.  
   그런데, 정작 냉면을 먹고 나니 어찌하여 ‘과대포장’이라는 말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을까. 귀가길에 박사님은 결국 활명수 신세를 져야 했다.

   평택까지 온 마당에 어찌 그냥 回軍할쏘냐 하는 ‘稚氣’와 겨울바다를 보자는 ‘浪氣’가 어울려 아산으로 빠졌다.
   朴正熙 대통령은 갔어도 삽교천의 방조제는 北上길이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밀린다는 것 말고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벌거벗은 群像들이 없기에 겨울바다는 오히려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호젓함이 가져다 주는 부산물이리라.

   겨울 山寺와 겨울 바다의 정취를 '똥차의 자존심, 프레스토!'(작은 아들놈이 10년 된 자기 집 차를 이렇게 부른다)에 싣고 발길을 돌리는데,
北上길의 밀려 있는 서울 번호판들이 村夫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시골 사는 고마움을 새삼스레 다시 한 번 느끼고, 아예 당진으로 남행하여 합덕→ 예산으로 돌아 온양→ 천안을 거쳐 오창→ 증평으로 빠지는 우회로를 歸路로 잡았다.  

   합덕을 지나려니 '솔뫼성지'라는 곳이 있어 없는 시간을 쪼갰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하는 심정으로 길가의 볼 만한 곳은 가능한 한 들러 본다.
   金大建 신부가 태어난 천주교 성지인 이 곳은 말 그대로 소나무동산이다. 마침 내방객이라곤 중원에서 온 나그네 가족뿐이어서 참으로 조용하였다.  
   그 유명한 金신부가 25세에 요절하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짧고 굵게 산 인물이랄까.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는데, 가늘고 길게 사는 것과 어느 편이 더 나은 삶인지?  
   降將은 不殺이라, 1심의 死刑에서 減一等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안도의 한 숨을 내쉬는 어느 전직 대통령의 얼굴이 떠오른다.(1997.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