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설국(雪國)으로!(에베레스트)
2017.04.16 13:08
가자, 설국(雪國)으로!
촌부가 처음 히말라야를 찾은 게 2014년 1월이니 3년 전의 일이다. 당시 7박 8일의 일정으로 안나푸르나의 푼힐 전망대(해발 3,200m)까지 다녀왔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작년 1월 다시 히말라야를 찾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해발 4,130m)를 올랐다. 해발 4,000m가 넘는 곳에 올라가다 보니 힘이 들고 고생도 하였지만, 히말라야를 제대로 다녀왔다는 뿌듯함이 푼힐 전망대 갔을 때보다 더했다.
그런데 말 타면 경마 잡힌다고 했던가, 사람 욕심이 한이 없어 안나푸르나를 두 번 가다 보니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다름 아니라 히말라야의 정수인 에베레스트를 가 보고 싶어진 것이다. 작년에 동행했던 가이드 ‘라나’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여 걷는 것 자체는 안나푸르나에 비해 힘이 덜 든다고 했던 게 유혹의 실마리이기도 했다.
설왕설래 끝에 작년에 동행했던 김용안님, 박재송님, 오강원님 세 분에 박영극님, 최동진님 두 분이 합세하여 촌부를 포함 총 6명으로 한 팀을 꾸렸다. 지난 두 번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 이용했던 혜초여행사에 우리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했더니 16일짜리 트레킹 상품(이게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일반적인 상품이다)을 13일로 줄여 주었다.
요점인 즉, EBC까지 올라갈 때는 일반 상품대로 하되, 하산 시에는 올라간 길을 되돌아 다시 걸어 내려오려면 지루하고 다리만 아프기 때문에 헬기로 하산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ABC의 고도가 해발 4,130m인 데 비하여 EBC는 해발 5,364m나 되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최종 목적지)인 칼라파타르는 해발 5,550m나 되는 까닭에, 지난 두 번과는 달리 사실 출발 전부터 고산증이 은근히 걱정되었지만, 정 안 되면 도중에 하산한다는 생각으로 길을 나선 것이 2017. 3. 6. 이다.
인천공항-->카트만두(Kathmandu)-->루크라(Lukla)-->팍딩(Phakding)
인천공항과 네팔의 카트만두를 오가는 대한항공 직항편이 1년 사이 1주일에 2편에서 3편으로 증편되었다. 네팔(특히 히말라야)을 찾는 항공수요가 그만큼 늘었다는 이야기다. 일본에는 아직도 직항편이 없고, 중국의 상해나 북경에서도 직항편이 없는 것과 비교하여 보면 실로 놀라운 일이다.
작년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가려고 대한항공을 탔을 때는 비행기가 예정시각보다 한참 늦게 출발하여(그것도 이렇다 할 안내방송조차 없이) 원성을 샀는데, 이번에는 정시에 출발하였다.
6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카트만두 공항은 입국장에서 25달러 내고 네팔 입국비자를 즉석 발급받는 것 외에는 작년에 비해 달라진 게 없었다(전에는 출국 전에 미리 발급받았다). 다만 카트만두의 공해가 더욱 심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베테랑 가이드 ‘빠담’을 만나 그의 안내로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Royal Singi Hotel)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바로 근처 식당(SAM’S라는 곳으로 종업원이 대부분 벙어리인 것이 이채롭다)으로 가 저녁 식사를 했다. 3년 전 처음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를 올라갔을 때 안내를 맡았던 가이드 ‘빔’이 바로 빠담의 동생이다. 번갈아가며 형제의 안내를 받아 안나푸르나와 에베레스트를 가다니...묘한 인연이다. 형제 모두 베테랑인데다 참으로 성실한 믿음직스런 가이드들이다.
3월 7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카트만두 공항에서 루크라 가는 국내선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이다.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네팔 국내선 비행기는 정해진 시각에 뜬다는 보장이 없다. 그야말로 떠야 뜨는 것이다. 카트만두 공항과 목적지 공항(포카라, 루크라 등) 모두 안개가 끼지 않아야 한다. 그러려면 가능한 한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는 것이 좋다. 고산지대에 있다 보니 그 특성상 시각이 늦을수록 짙은 안개가 낄 확률이 높은 것이 네팔의 공항이다. 이를 잘 알기 때문에 가이드가 이른 새벽부터 서두른 것이다.
워낙 이른 시각이다 보니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국내선 공항청사의 출입문이 닫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보다도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온 것이리라. 새벽의 쌀쌀한 날씨에 청사 밖에서 한참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다 문이 열려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아침 6시 30분에 이륙하는 루크라 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고작 16인승의 이 경비행기는 지정좌석이 없이 그냥 타는 순서대로 자리에 앉는다. 진행방향 왼쪽 창가에 앉으면 히말라야 산맥을 내려다보며 간다. 그러나 구름과 안개로 인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 내부]
[루크라 가는 비행기 안에서 본 히말라야]
약 40분 걸려 루크라(Lukla) 공항에 도착했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중턱 해발 2,840m 되는 곳을 깎아 만든 이 공항은 활주로의 길이가 고작 90m이다. 카트만두와 이 공항을 오가는 비행기가 16인승의 경비행기인 이유가 비로 이처럼 짧은 활주로 때문이다.
활주로는 이착륙을 쉽게 하기 위해 경사지게 만들었다. 착륙 시에는 오르막으로 정지하기 쉽고 이륙 시에는 내리막으로 뜨기 쉽게 만든 것이다.
[루크라 공항]
아무튼 착륙 시에 90m 안에서 정지하지 못하면 산을 들이받고, 이륙 시에 90m 안에서 뜨지 못하면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곳,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이 바로 루크라 공항이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본래 조종사의 솜씨에 생명을 맡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루크라 공항에서 이착륙을 할 때는 생사의 문제를 그야말로 팔자소관으로 돌리는 것이 마음 편하다.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려면 달리 다른 방법도 없으니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90m의 활주로에서 곡예를 하는 조종사의 손에 목숨을 맡기고 에베레스트를 찾는다.
루크라에 있는 로지(Lukla Numbur Hotel)의 식당에 들어가 가이드가 카트만두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빵과 과일, 음료수 등을 골고루 준비해 와 히말라야에서의 첫 식사를 나름 괜찮게 하였다.
식사를 마치자 산행 중에 기온에 따라 갈아입을 옷 위주로 배낭을 다시 꾸리고 나머지 큰 짐들은 포터 편에 보낸 후, 8시 30분 루크라를 출발했다. 드디어 에베레스트를 향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날의 최종 목적지는 해발 2,610m에 위치한 팍딩(Phakding)이다.
[에베레스트를 향한 관문. 좌로부터 박재송, 김용안, 촌부, 최동진, 박영극, 오강원]
[EBC 트레킹 개념도]
네팔은 위도가 낮기 때문에 비록 해발고도가 3,000m 가까이 되어도 낮에는 다소 덥다. 한국의 초여름 날씨이다. 산행 시작 후 처음 대하는 설산이 콩데(Kongde. 해발 6,186m) 산이다. 나중에는 그보다 멋진 설산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되지만 처음 접하는 설산(이 때 까지는 정상부근만 눈이 덮여 있었다)인 만큼 눈길을 끈다.
남체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계속 이 산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콩데 산]
본격적으로 걸으면서 땀이 나 등산 자켓을 벗었다 입었다 하면서 전진하다가 10시 40분 타도고시(Tado Koshi)의 로지(Holiday Inn)에 도착했다. 로지 뒤로 구숨강구루(Kusum Kanguru. 해발 6,367m) 산이 멋진 모습을 자랑하는 곳이다.
다소 이른 시각이지만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메뉴는 비빔밥. 트레킹 팀이 6명 이상만 되면 혜초여행사에서 가이드와 포터 외에 한식요리사를 따로 대동시켜 주기 때문에 식사 문제만큼은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요리사가 하루 세끼 따뜻한 식사를 다양한 종류의 한식으로 준비해 주는 이런 트레킹은 히말랴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구숨 강구루 산]
[한식으로 준비한 식사]
점심 식사 후 한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마을 한 가운데에 라마교의 상징인 타르초(라마교 경전을 천에 적어 수직으로 세운 깃발)와 룽따(라마교 경전을 오방색 천에 적어 만국기처럼 줄로 매단 것)가 펄럭이고, ‘옴마니반메훔(번뇌와 죄악이 소멸하고 지혜와 자비가 충만하길 바라는 진언)’을 겉에 쓰고 경전을 속에 말아 넣은 마니차(원통형 바퀴)와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었다.
그 통을 돌리며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의례적이 아닌 간절한 기도였다.
[옴마니반메훔과 마니차]
오후 2시 팍딩(Phakding. 해발 2,610m)에 도착해 Star Lodge에 여장을 풀었다. 새벽부터 서두른 덕분에 일찍 도착한 것이다. 아직 해발 고도가 3,000m가 안 되는 만큼 고산증 증세는 없었지만, 새벽 4시에 일어나 설친 피로감이 몰려와 저녁 6시까지 휴식을 취했다. 이곳 로지는 이번 여정 중에서 묵은 로지 중 시설이 제일 허름했다. 지대가 높지 않은데도 와이파이(Wifi)가 터지지 않았다.
팍딩(Phakding)-->몬조(Monjo)-->남체(Namche)
3월 8일. 이제부터는 새벽 6시 기상, 7시 아침식사, 8시 출발의 패턴이 이어진다. 팍딩을 출발하면 이날 최종 목적지인 남체까지는 오르막이 꾸준히 이어진다. 남체까지의 거리는 11km이다. 3시간 정도 올라가 11시에 몬조(해발 2,855m)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메뉴는 카레라이스이다.
몬조를 지나면 에베레스트가 있는 사가르마타(Sagarmatha) 국립공원의 입산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는 곳이 나온다. 본격적으로 쿰부(Khumbu) 히말라야 지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신고나 허가, 비용 지불 등은 가이드 빠담이 전부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개별적으로 와서 입산허가를 받으려면 약 4만 원 정도 낸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몬조의 이정표]
해발 3,000m 지점에서 계곡을 가로지르는 길고 높은 출렁다리가 한양나그네들을 맞이하였다. 다리가 상하 두 개인데, 아래 것이 먼저 놓인 것으로서 그것이 오래 되어 낡게 되자 폐쇄하고 더 높은 곳에 새로 놓은 것이다. 그 다리에서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히말라야의 계곡에는 만년설이 녹은 푸른 물이 소리 내서 흐르고 있다.
계곡의 위쪽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 아직은 눈의 나라가 아니라 늦은 봄 내지 초여름의 신록이 우거진 산들이 이어진다.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를 만나려면 한참 더 올라가야 한다.
[해발 3,000m 지점의 출렁다리]
이 출렁다리를 지나면 남체까지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 때부터 해발 3,000m 이상의 지대로 들어서는지라 두통 등 고산증 증세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3년 전 처음 히말라야에 왔을 때는 해발 3,000m 지점에서 벌써 고산증 증세가 심했었는데, 그 후 최종목적지 고도를 높이며 작년에 이어 세 번째 오다 보니 이제는 그 정도 높이에서 느끼는 고산증 증세는 그냥 머리가 띵한 정도이다. 그만큼 적응이 된 것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한국인이었는데, 에베레스트에서는 그와 달리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에베레스트 트레킹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안나푸르나 트레킹의 1/10 정도라고 한다).
이날도 영국, 뉴질랜드,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온 사람들과 계속 마주쳤다. 우리처럼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미 올라갔다 하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서로 간에 처음 보는 외국인들이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모두 즐거운 산행이 되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우리처럼 팀을 짜서 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 명이나 두세 명이 포터 한 명 고용해서 온 사람들도 많다. 특히 젊은 여자 혼자서 포터 한 명 고용하여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 놀라게 한다. 이 깊은 산중에 그런 산행을 하는 용기가 대단하다.
그들은 대개 로지 식당에서 파는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데, 토스트, 샌드위치, 스파게티, 카레라이스 등이 주된 메뉴이다.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서양들이야 2주일씩 그렇게 먹어도 되겠지만, 우리는 2주일 동안 그렇게 먹고 산행하라면 두 손 들을 것 같다.
하긴 도중에 만난 한 한국인 청년은 놀랍게도 포터조차 없이 혼자 와서 그렇게 먹으며 다니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 혼자 온 젊은 여자는 우리와 일정이 여러 날 겹쳤는데, 식사 때마다 김치와 밥을 나눠 주니까 무척 좋아했다. 일본에서도 평소에 김치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오후 4시, 진눈깨비가 날리는 가운데 남체 바자르(Namche Bazar. 해발 3,440m)에 도착했다. 에베레스트 산행 중에 통과한 가장 큰 마을이다. 단순히 등산객들을 위한 로지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약국 등 각종 시설이 갖춰진 이 마을에는 시장도 형성되어 있으며(‘바자르’라는 말 자체가 ‘시장’이라는 뜻이다), 마을 입구에 분수까지 있어 산객의 입이 벌어지게 한다.
[남체 바자르]
남체에서 이틀 동안 묵을 로지의 이름이 하필이면 ‘사쿠라 게스트 하우스(Sakura Guest House)’여서 순간적으로 기분이 안 좋았지만, 로지의 시설 자체는 좋아서 방에 화장실과 세면장이 딸려 있었고, 침대에 이불도 놓여 있었다. 식당 벽에 태극기가 걸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묵고 간 어느 한국인 산악회나 단체에서 걸어놓고 간 모양이다.
[남체 사쿠라 게스트하우스 식당의 태극기]
해발고도가 3,440m이다 보니 본격적으로 찾아오는 고산증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아직은 여전히 두통 단계이다. 로지에 배낭을 벗어놓고 시장에 가서 "EVEREST"가 새겨진 모자를 하나 샀다. 가격은 4불. 네팔 돈으로 400루피이다. 사실 공식 환율은 1불에 105루피 정도 하는데, 네팔 상점에서는 어디나 1불을 100루피로 계산하다.
3월 9일.
이날은 고소적응을 위해 남체에서 종일 머물렀다. 간밤에 진눈깨비가 눈으로 바뀌어 많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마을 전체가 하얀 동화 속의 나라로 변해 있었다. 바깥 경치는 그렇건만, 정작 그 경치를 보려고 멀리 동방에서 온 나그네는 두통이 심하고 얼굴이 부어 있었다. 고산증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이아막스와 비아그라를 먹었다. 다이아막스는 여행사에서 준비한 약으로 이뇨제이다. 이 약을 먹을 때는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을 자주 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약을 먹으면 부작용으로 인해 손발이 저리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 올라갈 길이 까마득한데...
[눈으로 덮인 남체 전경]
아침을 먹고 로지 뒷산에 있는 에베레스트 뷰(Everest View) 호텔로 출발했다. 해발 3,880m에 위치한 이 호텔은 날이 좋으면 에베레스트가 보이기 때문에 호텔의 이름부터 그렇게 지었다. 일본인이 세우고 운영도 한다고 한다.
호텔로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주위 산의 풍경은 절경 그 자체이다. 비록 하늘은 쾌청하지 않고 여전히 흐려 있지만, 산과 구름과 눈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 경치에 반하여 숨이 가쁜 것도 잠시 잊었다.
[에베레스트 뷰 호텔 가는 도중의 경치]
10시 30분에 호텔에 도착하여 에베레스트를 보기 위해 테라스로 나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날씨가 쌀쌀하여 따뜻한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너나없이 에베레스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야속하게도 에베레스트는 구름 속에서 나올 줄 모른다. 그렇게 목을 빼고 1시간 30분을 기다리는 동안 그야말로 잠깐 구름이 걷히고 에베레스트의 정상부분이 보였다. 그러나 너무나 순간적이었는지라 모두들 아쉬움의 탄식을 해야 했다.
[에베레스트 뷰 호텔과 호텔의 테라스]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도 느꼈지만 히말라야의 8,000m 급 고봉들은 기후 변화가 매우 심하고 구름에 가려 있는 때가 더 많아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대략 오전 10시가 넘으면 산 중턱으로부터 구름이 피어올라 순식간에 산을 덮어 버리기 일쑤이다.
12시가 되어 도리 없이 남체로 복귀하기로 했다. 한 시간 걸려 남체로 내려가니 점심식사로 전치국수가 준비되어 있었다. 식욕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요리사가 고맙다. 점심 식사 후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일행들과 시장 구경을 나섰다. 상점의 물건들은 일상용품도 있긴 하지만 대개가 등산용품이다. 어제 내가 산 것과 유사한 모자를 다들 하나씩 사서 썼다. 이날 저녁식사 메뉴는 김치찌개. 어찌나 맛나게 끓였던지 평소 안 하던 과식을 하여 속이 불편해 소화제를 먹어야 했다. 아무튼 이번 산행 중에서 제일 맛있는 식사를 했다.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에 갔다가 Agnes라는 이름의 독일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올해 나이 64세인 이 할머니는 히말라야를 벌써 열 번째 찾는다고 한다. 포터 한 명 데리고 이미 촐라 고개(해발 5,420m)를 넘고 빙하지대를 지나 남체까지 내려온 것인데, 18일째 히말라야 산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이 식당 난롯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64세의 독일 할머니 Agnes]
이 할머니는 손에서 책을 놓는 법이 없었다. 두께가 제법 나가는 커다란 책을 배낭에 넣고 다니며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서도 틈나는 대로 읽는 이 할머니를 보니 배낭이 무겁다고 빈손으로 간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후에 페리체 로지의 식당에서 만난 뉴질랜드와 호주 출신 젊은 아가씨들도 마찬가지로 책을 가까이 하여 한양 나그네를 부끄럽게 했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면서도, 아니 심지어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면서도 휴대폰의 노예가 되어 있는 한국인들이 정말로 반성하고 본받을 일이다.
아무튼 이 할머니는 독일에 손자가 다섯 있고 개 두 마리를 키우는데, 그 개들과 매일 조깅을 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래, 맞다~ 조깅!”
히말라야 산 속에서 18일째 보내면서도 지친기색을 안 보이는 이 할머니의 건강의 비결이 바로 개와 함께 하는 조깅이 아닐까 싶다.
히말라야 같은 높은 산을 오르려면 심폐기능이 좋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깅이나 수영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 원리인데 왜 그걸 몰랐을까. 그걸 몰랐기에 나중에 페리체에서 땅을 치며 아쉬워해야 했으니...
다음날 아침 식사 후 로지 식당에서 헤어졌는데(할머니는 팍딩으로 내려갔다), 그 순간에도 할머니 옆에는 책이 놓여 있었다.
남체(Namche)-->디보체(Deboche)
3월 10일.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쾌청하다. 로지 밖으로 나가자 마침 로지 맞은편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아침 햇빛을 받아 멋진 일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여러 날에 걸쳐 하더라도 사실 여간해서는 설산의 아침 일출 광경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다. 산이 눈으로 덮여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 뜨는 방향이 맞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날씨가 맑아야 하는데, 이들 조건을 다 구비하는 것이 의외로 어렵다. 높은 산들에 막혀 시야가 가리고 기상변화가 심하여 툭하면 구름이 산을 가리기 때문이다.
[남체의 일출 광경]
남체를 출발하면 이내 에베레스트 하이웨이가 나온다. 쿰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해발 3,600m 정도 되는 산중턱을 따라 길을 냈는데, 그 길이 워낙 잘 닦여 가히 ‘고속도로(하이웨이)’라고 부를 만하다. 날씨가 쾌청하면 이 고속도로에서 에베레스트가 보인다.
[에베레스트 하이웨이]
특히 1953년 힐러리(Edmund Percival Hillary)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세계 최초로 등정한 셀파 텐징 노르게이(Tenzing Norgay)를 추모하면서 등정 50주년을 기념하여 2003년에 세운 불탑(초르텐)이 있는 곳에서는 에베레스트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 날은 구름이 잔뜩 끼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텐징 노르게이는 등반대에 고용된 포터였지만 힐러리는 ‘진정한 영웅은 내가 아니라 텐징'이라며 영예를 텐징에게 양보하였다. 두 사람은 에베레스트 등정 후 히말라야에 학교, 병원 등을 설립하며 에베레스트 초등으로 얻은 자신들의 영예를 히말라야에 갚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한다. 후술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산악인 엄홍길이 히말라야에 학교를 설립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는지.
[텐징 노르게이 추모탑]
에베레스트 하이웨이에는 이 길을 만든 사람들을 위한 기부함도 놓여 있어 100루피를 기부하고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다.
에베레스트 하이웨이를 지나면 사나사(Sanasa. 해발 3,680m)에서 고쿄(Gokyo. 해발 4,790m) 및 촐라 고개(Chola Pass. 해발 5,420m)로 가는 길과 EBC로 직접 가는 길이 갈린다. 촐라 고개는 쿰부 히말라야에서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넘는 고개 중 높고 험하면서도 멋진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촐라 고개를 거쳐 칼라파타르로 가는 길을 택하면 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지만, 여정이 길어지고 너무 힘이 들 것 같아 우리는 EBC로 직접 가는 길을 택하였다.
[갈림길]
이 무렵부터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온 하늘이 잔뜩 흐린 가운데 히말라야의 눈 내리는 길을 걷는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 춥고, 가시거리가 매우 짧고, 미끄럽고...
도중에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산길을 오르는 야크 군단(?)을 만났다. 야생에서 뛰놀지 못하고 어쩌다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와 저 고생을 하게 되었을까. 갈림길을 지나면 해발 3,250m 지점까지 내리막이다. 이날의 최종 목적지인 디보체가 해발 3,820m인데 3,250m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려니 쉬운 일이 아니다.
[눈이 내리는 산길]
[등에 짐을 싣고 눈이 내리는 산길을 오르는 야크들]
11시 40분에 점심식사 장소인 에버그린(Ever Green) 로지에 도착하여 따뜻한 수제비를 먹었다. 계속 내리는 눈에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는다. 식사 후 다시 출발하여 가는 도중에 17박 18일 일정으로 아일랜드 피크를 갔다 오는 한국인 일행을 만났다. 한국인 단체 트레킹팀을 이번 여정에서 처음 만났다. 하산하고 있는 그들이 부럽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서로 조심해서 잘 가라고 인사를 나눴다. 그런가 하면 20대로 보이는 이스라엘 젊은 여자가 혼자 포터 한 명과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괜찮다며 환하게 웃는다. 에베레스트는 정말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중간에 잠깐 맑게 갠 적이 있으나 이 날은 거의 종일 눈이 내렸다. 해발 3,860m의 텡보체(Tengboche)에 도착했을 때는 눈발이 더욱 굵어졌다. 이곳은 쿰부에서 가장 큰 곰파(Gompa. 라마교 사원)가 있는 곳이다. 겉으로 보기에도 사원의 규모가 정말 엄청났다.
안에 들어가 자세히 들러보고 싶었지만, 눈이 계속 내리는 통에 가이드가 서둘러 가야 한다고 독촉을 한다. 이 날은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 바람에 에베레스트도 못 보고 쿰부 제일의 사원도 못 들어가 보는 등 아쉬움의 연속이다.
[곰파(라마교 사원)]
게다가 텡보체를 지나서 나오는 내리막에서 눈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넘어졌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오른 쪽 다리의 대퇴부에서 무릎까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추위에 혈관이 오므라든 상태에서 충격을 받으니까 모세혈관이 많이 터진 모양이다. 이 멍은 그 후 2주일 넘게 지속되었다.
전날 남체에서 에베레스트 뷰 호텔에 올라갈 때는 아이젠을 배낭에 넣고 다니다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 날은 아이젠을 큰 짐에 넣어 포터 편에 보낸 까닭에 정작 눈길에 아이젠 없이 걷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오후 4시 디보체(Deboche. 해발 3,820m)의 파라다이스(Paradise) 로지에 도착했다. 로지는 건물은 컸으나 하룻밤 묵을 방은 남체의 그것보다 협소했다. 남체의 로지보다 400m 정도 높은 곳인데 종일 눈을 맞으며 걸은 탓인지 로지가 매우 추웠다.
저녁 식사(메뉴 : 닭백숙) 후 침낭 위에 이불을 덮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끌어안고 자리에 누웠지만, 해발 3,820m의 히말라야 산속에서 맞는 밤은 결코 녹녹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파라다이스 로지]
디보체(Deboche)-->페리체(Pheriche)
3월 11일.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천지가 설국이다. 족히 2-30cm는 내린 것 같다. 그래도 이날도 6시 기상, 7시 아침식사, 8시 출발의 하루 일정 시작은 동일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갰다 한다. 아마다블람(Ama Dablam. 해발 6,856m)을 구름 속에서 잠깐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본격적으로 눈이 온다.
그 눈 속에서 거짓말처럼 히말라야판 세한도의 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추사 김정희가 그 옛날에 이곳에 왔었을 리는 없는데....시간과 공간을 넘어 유체이탈이라도 한 걸까.
[추사의 세한도]
[히말라야의 세한도]
눈 속을 뚫고 오전 11시 20분, 아마다블람 베이스 캠프로 연결되는 팡보체(Pangboche. 해발 3,930m)에 도착하자 엄홍길 휴먼재단에서 세운 학교를 알리는 일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시간이 없어 학교까지 가 보지는 못했다. 산악인 엄홍길은 히말라야의 8,000m가 넘는 산 16개를 모두 등정한 것을 기려 네팔에 학교 16개를 건립하는 중이다. 현재 12개를 완공하여 지역주민들에게 기증한 상태이다.
낮 12시 10분 중간 기착지 쇼마레(Shomare. 해발 4,010m)의 로지에서 짜장밥으로 점심을 먹고 난 후 왼쪽으로 다보체(Taboche. 해발 6,367m)를 두고 오른쪽으로 아마다블람을 바라보며 설국의 산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갔다. 산속으로, 산속으로~~ 마치 거대한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다.
그렇게 가다가 숨을 헐떡이며 한 고갯마루를 오르니 성황당이 나타났다.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게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똑같다. 단지 그 위에 룽따의 조각이 걸려 있는 게 다를 뿐이다. 돌을 하나 집어 그 위에 얹고 무사 산행을 빌었다.
“히말라야의 산신령이시여!
부디 저희 일행이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황당]
그렇게 빌고 나서 순간적으로 ‘히말라야의 산신령이 한국말을 모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신들에게는 이심전심으로 통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후술하는 것처럼 페리체에서 중도 하산해야 했던 것을 보면 산신령이 기도를 못 알아들었거나 기도의 간절함이 부족했던 듯하다.
성황당을 지나 고개를 내려가면 얼마 후 길이 페리체 가는 길과 딩보체(해발 4,410m) 가는 길로 갈라진다. 페리체 가는 길은 우리 일행의 목적지인 EBC로 가는 방향이고, 딩보체 가는 길은 임자체(아일랜드 피크)로 가는 방향이다. 온 천지가 하얀 설국에서 이리 가면 어디이고 저리 가면 어디임을 아는 게 용하다. 현지 사정에 밝은 가이드가 없으면 헤매기 십상이다.
히말라야의 해발 4,000m가 넘는 높고 깊은 산중에서 달랑 8명(우리 일행 6명과 가이드, 보조 가이드)이 눈을 맞으며 종일 걷는다는 것, 어찌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하고 위험한 만용일 수도 있다. 그 8명이 실종된들 누가 알겠는가.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그렇게 걷는 것일까.
그러나 그 높고 깊은 산속을 걷는 것이 주는 희열은 가서 직접 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저 걷고 또 걷다 보면 어느 새 머릿속은 텅 비고,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 그냥 그 날의 정해진 목적지까지 간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처에서 온갖 일에 부딪히며 사느라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하는 데 이보다 더한 보약이 있을까...
[설국의 산속으로, 산속으로~~]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덧 페리체(해발 4,240m)이다. 계속 내리는 눈에 로지의 지붕들이 하나 같이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다. 아직 오후 4시밖에 안 되었는데, 날씨가 흐린 까닭에 어둠이 일찍 찾아온 듯 어스름하다. 먼발치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페리체의 전경은 마치 날카로운 펜으로 그린 수묵화 같다.
[페리체 전경]
마침 야생 야크들이 먹이를 찾아 눈 덮인 산을 오르는(헤매는?) 모습이 보였다. 인간의 손에 들어온 야크들은 자유가 없는 대신 먹이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이들 야생 야크들은 자유를 누리는 대신 생존을 위한 먹이를 걱정해야 한다. ‘빵이냐, 자유냐’는 인간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눈 덮인 산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야생 야크들]
온 종일 눈을 맞으며 걸어서일까, 아니면 피로가 누적되어서일까, 이날따라 등골을 타고 흐르는 냉기에 로지의 식당에 있는 난로가 유난히 반갑다.
난롯가에는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온 20대의 젊은 여자 세 명이 먼저 와 있었다. 그들은 이미 EBC를 다녀오는 길인데, 바람이 심해서 칼라파타르는 못 올라갔다고 한다. 저녁을 식당에서 파는 토스트로 때운 그들은 로지의 방을 미리 예약하지 않아 식당 홀에서 잘 거라고 한다. 젊음의 특권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아무튼 종일 언 몸을 이 따뜻한 난롯가에서 녹일 수 있어 좋았는데, 맙소사, 이게 화근이 될 줄이야! 해발고도가 높아 가뜩이나 산소가 부족한 마당에 난로(블랙야크의 말린 똥이 연료이다. 덜 말라 불이 잘 안 붙으니까 그 위에 석유를 부었다)를 피우니 식당 안에는 산소가 더욱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춥더라도 방에 가서 침낭에 들어가 있을 것을 난롯가에 너무 오래 있는 바람에 산소 부족으로 고산증 증세가 심해졌다(심해진 두통에는 석유 냄새도 한몫 했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안 것은 이 로지에서 하루를 더 보내고 나서이다.
3월 12일
이 날은 고산 적응을 위해 페리체에서 하루 더 지냈다. 이틀 동안 내리던 눈이 다행히 그쳐 하늘이 맑게 갰다. 이번 일정 중 가장 쾌청했다. 로지 맞은 편 다보체(해발 6,367m)와 촐라체(해발 6,335m)가 해가 떠오름에 따라 선명한 자태를 드러냈다. 다른 날보다 아침식사를 다소 늦게 하고, 로지의 뒷산에 올라갔다. 해발 5,000m까지 올라갔다 돌아오기로 했다.
[페리체 로지 주위의 산들. 왼쪽 산이 촐라체]
이틀 동안 내린 눈으로 산으로 오르는 길이 눈에 깊숙이 덮여 걷기가 쉽지 않았지만, 한 발짝씩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경치를 감상하는 맛에 계속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선 작은 산 하나를 오르니 아마다블람(해발 6,856m)이 바로 코앞에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제껏 멀리서 그것도 흐린 날씨에 구름 속에 있는 모습만 보아 오다 잉크를 뿌린 것 같은 파란 하늘 아래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이 산을 대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정말 너무나 멋지다. 세계 3개 美峰(아마다블람, 마차푸차레, 마터호른) 중 하나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아마다블람]
그리고 그 아마다블람 옆으로 이어지는 탐세르쿠(해발 6,608m)의 연봉들이 연출하는 능선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공해가 있을 수 없는 히말라야의 높은 산, 그것도 이틀이나 눈이 내린 후에 맑게 갠 쪽빛 하늘 아래 하얗게 빛나고 있는 설산들, 그 산들을 보면서 이곳에 왜 ‘눈이 거처하는 곳’, 즉 설국(雪國)이라는 뜻의 ‘히말라야’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확실히 깨닫게 된다.
[탐세르쿠]
3년 동안에 세 번째 온 히말라야에서 진정한 설국(雪國) 속으로 들어가 100% 그대로의 설산들을 눈앞에 마주하자 고산증으로 고생하면서도 찾아온 보람을 새삼 느낀다. 내 발품을 직접 팔지 않고 이 아름다운 정경을 어찌 감상할 수 있으랴. 추위도 잊은 채 연신 카메라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담았다.
가이드 빠담의 재촉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좀 더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대략 해발 4,500m 정도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아일랜드 피크로 더 잘 알려진 임자체(해발 6,189m)가 보인다. 주위가 온통 설산이건만 이 산은 봉우리가 유난히 더욱 하얀 까닭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 아일랜드 피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딩보체(Dingboche. 해발 4,410m)의 로지들도 눈에 들어온다. 이틀 전 우리 일행이 지나온 페리체 방향의 길과 갈라진 길이 그곳으로 이어져 있다. 산을 사이에 두고 페리체와 딩보체가 양 옆에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피크는 전문산악인이 아니더라도 장비를 갖추고 조금만 훈련하면 일반 트레커들도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나중에 카트만두에 돌아가서 아일랜드피크를 다녀온 한국인들을 만났다. 그런데 일행 중 사진을 찍다가 장갑을 잃어버린 사람이 동상에 걸려 헬기로 긴급 후송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일랜드 피크]
페리체나 딩보체의 로지들은 하나의 단지가 되어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유심히 보면 두 곳 다 마을 부근에 밭들이 많이 있다. 전에는 그곳에서 감자농사를 짓거나 야크용 목초를 재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밭들을 놀린다. 성수기에 로지만 운영하면 한 해 살아갈 돈을 충분히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수기에는 카트만두 등 대처에 나가 산다고 한다. 사람들의 주업이 농업에서 관광업으로 바뀐 것이다.
[딩보체 로지 주위의 밭]
아일랜드 피크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점에서 본래 예정대로 5,000m까지 더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페리체의 로지로 내려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생각은 전자로 굳은 지 오래인데, 몸이 안 따라온다. 몸에서 자꾸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갑자기 고산증 증세가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갑자기’가 아니라 추위에 떨고 피로가 누적되어 그동안 서서히 나타나던 증세가 고도가 더욱 높아짐에 따라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결국 촌부와 오강원, 최동진 세 사람은 가이드와 함께 로지로 내려가기로 하고, 박영극, 김용안, 박재송 세 사람은 보조가이드와 함께 당초의 예정 지점까지 더 올라가기로 했다. 나는 겨우겨우 페리체의 로지로 돌아와 비아그라를 한 알 먹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만일 지난 이틀 동안 눈이 오지 않았다면? 추위가 훨씬 덜하여 고산증이 분명 덜하였을 것이다. 그 대신 아마다블람이야 그래도 설산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그 아마다블람을 감상하며 서 있던 지점이나 페리체는 설국이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고산증이냐, 설국이냐’에서 이 때 하늘은 설국을 선물하고 대신 심한 고산증을 안겨 준 것이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에 관련된 많은 사진들을 보면, 눈이 없는 때에는 페리체는 물론이고 고락셉(Gorak Shep. 해발 5,140m)이나 칼라파타르(Kalapatthar. 해발 5,550m)에서조차도 맨 땅의 돌길을 걷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니 눈이 거처하는 곳, 히말라야에서도 말 그대로 온 천지가 하얗게 변한 설국 속에 지내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며, 그 자체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단지 그 축복의 대가인 고산증이 문제였으니...
점심식사 메뉴는 라면이다. 촌부는 평소에는 라면을 멀리하는데, 히말라야 깊은 산속에서 김치와 더불어 먹는 라면만큼은 그 맛이 그야말로 일품임을 이미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부터 익히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그 라면의 맛을 모르겠다. 속이 울렁거려 반 그릇도 채 못 비웠다.
침대에 가서 쉬니까 다소 진정이 되는 듯하더니 저녁이 되니까 가슴의 울렁임이 더 심해지고 식사를 하기가 힘들다. 두통도 더욱 심해진다. 전날과 달리 식당의 난롯가에 가기도 싫다. 누룽지 끓인 것으로 겨우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이아막스 한 알과 비아그라 한 알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핫팩을 등과 배에 붙이고 두꺼운 거위털 파카를 입고 뜨거운 물을 담은 보온물주머니까지 두 개 침낭 속에 넣었건만 너무 춥다. 눈이 그쳤기 때문에 실제 기온은 전날보다 높은데도 몸 컨디션이 안 좋다 보니 더 춥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잠이 잘 안 온다. 가슴과 등이 조여 통증이 심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가 이내 깨서 일어나 앉았다가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내가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밤새 씨름하다 날이 밝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3월 13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숨이 가쁘다. 어제까지는 보통 걸어야 숨이 찼는데,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숨이 가쁘다. 걸어서 숨이 차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면 그 때가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니 욕심 내지 말고 하산해야 한다는 고산증 주의사항이 생각났다. 마침내 결단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욕심을 내서 로부체(Lobuche. 해발 4,910m)를 거쳐 고락셉, EBC, 칼라파타르까지 갈 것인가, 아니면 아쉽더라도 여기서 하산할 것인가? 전날에 이어 계속되는 맑은 날씨 덕분에 페리체의 로지 밖으로 바라보이는 로부체의 방향이 선명하게 눈에 잡히는데.... 이젠 날씨가 계속 좋다는데...
아침식사를 도저히 할 수가 없다. 오강원님이 가져온 수프를 끓여 겨우 마셨다.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이드에게 하산하겠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난 겨울 내내 헬스클럽에서 다리근육의 힘을 키우는 근력운동을 했건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포기해야 하다니... 하룻밤만 더 견디면 되는데... 쉽게 다시 올 수 있는 곳도 아닌데.... 진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카트만두 행 헬기에 올랐다. 1주일 걸려 올라온 곳을 헬기를 타니까 55분 만에 내려갔다.
[하산용 헬기]
[박재송님이 칼라파타르에 가서 찍은 에베레스트의 석양]
후기
카트만두에 도착하여 바로 병원에 가서 흉부 X레이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그러나 설사를 계속했고, 귀국해서도 1주일이나 이어졌다. 그 밖에 속이 쓰린 증상, 귀가 먹먹한 증상 등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고산증을 제대로 겪은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에베레스트로 떠나기 전에 근력운동보다는 유산소운동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히말라야 트레킹의 최고 높은 지점인 칼라파타르를 갈 거면 아무래도 추위가 덜한 계절(4-5월, 9-10월)을 택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히말라야의 준봉에 카트만두의 갠지스강 상류 힌두교 화장장이 겹쳐 떠오른다. 고산증으로 자칫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곳(실제로 그런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에서 간신히 귀환하여 정작 삶을 끝낸 사람들이 저승을 향해 떠나는 곳을 찾았다는 게 아이러니이지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 바로 사바세계가 아닐는지.
[카트만두의 갠지스강 상류 힌두교 화장장]
그러기에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삶은 한 조각 구름이 피어나는 것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은 그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다)
이라 하지 않았던가.
한 조각 구름이 피어났다 스러지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삶이요 죽음인 것이다.
그나저나 히말라야의 설국 모습이 다시 눈에 아른거리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추기) 힘든 여정을 함께 하신 김용안님, 박영극님, 박재송님, 오강원님, 최동진님(이름 가나다 순)께 감사드린다. 특히 혜초여행사 예약부터 시작하여 모든 연락과 궂은일을 도맡아 가까이에서 촌부를 정성껏 도와준 박재송님의 은혜가 크다.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모든 일정을 빈틈없이 마련하고 진행하여 준 혜초여행사의 관계자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끝)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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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열
2017.04.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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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거사
2017.04.17 17:22
우대리님,
산행 과정 내내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신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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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아
2017.06.12 17:04
오랜만에 대법관님의 기행문을 읽습니다. 히말라야 다녀오신 이야기를 말씀으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 읽으니 전혀 다른 느낌이네요. 저도 마치 옆에서 동행하는 듯, 정말 생생한 느낌을 받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그렇지만 너무 아름답네요. 역시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만든 것들은 부족하고 하찮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멋진 후기 감사드립니다. 정진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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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거사
2017.06.21 13:57
정교수 방문사실을 모르고 있었네.^^
채점하느라 힘들고 영일이 없을 텐데
감사~~
폭염에 건강 조심하길~!!!
주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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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상열입니다. 기억하시는지요. 글을 읽으니 마치 제가 옆에서 같이 걷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현지에 대한 팁을 좀더 상세히 설명을 하고 잔소리를 더 했으면 어땟을까 하는 아쉬움마져 드네요.
산은 항상 그자리에 있습니다. 정상을 앞두고 발걸음을 돌리는 것 또한 정상에 서는 것보다 힘든 판단이며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과 기록, 그리고 고맙다는 한마디에 보람을 느낍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우상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