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통하는 곳(두타산 마천루)
2021.09.23 23:23
하늘로 통하는 곳
충주지원장 시절(1997년 2월), 그리고 법원도서관장 시절(2008년 11월), 이렇게 두 번에 걸쳐 두타산의 무릉계곡을 찾은 일이 있다. 첫 번째에는 겨울의 저녁 무렵이라 무릉계곡의 초입만 둘러보았고, 두 번째에는 두타산의 정상으로 올라 청옥산을 거쳐 하산하느라 정작 무릉계곡은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한참 지난 2021년 8월 21일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1년 전에 무릉계곡 입구에서 시작하여 베틀바위와 마천루를 거쳐 쌍폭포를 둘러보는 등산로가 두타산에 개설되었다. 그동안 워낙 험한 코스라 출입이 금지되었던 구간인데, 산림청과 동해시가 힘을 합해 안전한 등산로를 만들었고, 그 결과 천하의 비경을 구경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아 언론에 보도되기에 이르자 1년 동안에 무려 70여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촌부가 어찌 가만히 있으랴. 꼭 1년 전 남도 사찰기행을 함께 했던 백동, 담허, 금오 세 도반과 함께 8월 20일 오후에 무릉계곡 초입의 삼화사에 도착하였다. 절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일찍 산행을 할 요량이다.
주지 임법 스님이 선방 도반인 대흥사 회주 월우 스님과 본사인 월정사의 주지 정념 스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반갑게 맞아 주신다.
[삼화사]
신라시대 창건된 고찰인 삼화사는 경내가 넓고 정갈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찾는 이가 적다는 이야기도 된다. 베틀바위와 마천루 길이 열리면서 무릉계곡을 찾는 이가 많이 늘어난 반면에, 등산객들이 오히려 그곳으로 몰려 삼화사는 찾는 발길이 줄어들었다니 아이러니다.
그나저나 삼화사의 주법당인 적광전(寂光殿)에 모셔진 노사나좌불(보물제1292호)은 특이하게도 철불이다. 철불은 박물관에 있는 것 말고 산사에서는 오래전에 철원의 도피안사에서 본 이후 처음 본다. 이 불상은 나말여초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삼배를 하며 다음날의 무사 산행을 빌었다.
삼화사에는 법당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템플스테이용 숙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촌부 일행은 주지 스님이 제공해 주신 별도의 당우(堂宇)에서 묵었다. 작은 계곡 바로 옆이라 밤새 물소리가 요란했지만, 어느 순간 자장가로 들리기 시작했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8월 21일 새벽 6시에 아침 공양을 하고, 주지 스님 방에서 다담(茶談)을 나누며 스님으로부터 산길의 경치며 소요시간 등 산행정보를 들었다. 여기서 조선시대 영조 때의 문신 조명리(趙明履. 1697-1756)의 흉내를 내 본다.
무릉도원 가는 길에 삼화사 스님 만나
스님더러 물은 말이 풍광이 어떠한지
요즈음 연하여 비오니 때 맞았다 하더라
아침 7시 30분에 산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삼화사에서 무릉계곡 관리사무소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베틀바위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처음부터 오르막 경사로이다(베틀바위까지 1.5km). 완급을 조절하며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어느 순간에는 쳐다만 보아도 기가 질리는 급경사의 계단으로 변하기도 하고, 계곡 저편의 맞은편 산에는 요새 내린 비로 수량이 늘어 생긴 폭포들이 반갑다고 인사한다.
‘서울에는 비가 많이 온다는데, 이곳은 안 와서 좋다’고 했더니, 그 말을 두타산 산신령이 듣기라도 한 듯 결국 빗방울이 듣는다. 다행히 산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덥지 않아서 좋은 면도 있다. 그게 세상사이다.
[급경사 계단]
평소 산에만 가면 헉헉대던 금오 선사가 웬일로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볍다. 매일 15,000보 걷기운동을 하여 체중을 4~5kg 줄인 효과란다. 백동선생 또한 자기도 매일 그렇게 걷는다며 걷기 예찬론을 펼친다. ‘걷는 자는 살고, 눕는 자는 죽는다’는 말이 헛말이 아니다.
1시간 정도 걸려 베틀바위 전망대에 도착했다. 베틀바위 자체가 깎아지른 형상이라 전망대도 수직 절벽 위에 만들었다. 등산로를 만들고 전망대도 조성하느라 애쓴 사람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베틀바위]
베틀바위(해발 550m)는 베틀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촌부의 눈에는 영 베틀처럼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이름이 아무려면 어떠랴, 베틀바위의 멋진 풍광은 필설로 그려내기가 쉽지 않다.
“와, 멋지다. 정말 장관이다!”
이것 말고는 더 할 말이 없다.
베틀바위 전망대에서 급경사의 길(일부는 계단)을 따라 위로 200m 올라가면 미륵바위가 나온다. 바위의 생김새가 미륵불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꼭 미륵불은 아니더라도 사람 얼굴 형상(촌부의 눈에는 감투를 쓴 양반처럼 보인다)을 한 것은 틀림없다. 마치 조각을 한 듯하다. 조선 중기의 문인들이 이곳을 즐겨 찾았다고 안내판은 전한다.
[미륵바위]
미륵바위를 지나면 두타산의 산록을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며 발길이 마천루(정확한 표현은 ‘두타산 협곡 마천루’)로 향하게 된다(2.4km). 도중에 두타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갈림길도 나오는데, 이정표만 믿고 그 지시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다만, 이 길은 많은 부분이 절벽 위로 좁게 나 있는지라 조심해야 한다. 진행 방향 오른쪽으로 천 길 낭떠러지가 동행하는 것이다.
그래도 계곡 건너 맞은 편으로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폭포 위를 걸어서 넘는 낭만도 있다. 여러 단으로 이루어져 떨어지는 폭포의 중간 부분을 건너는 스릴이 촌노(村老)를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물이 많으면 건너기가 불가능하고, 너무 적거나 없으면 무미건조할 텐데, 이날은 마침 그동안 며칠 내린 비로 딱 적당한 양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물론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미끄러져 추락하면 십중팔구 불귀의 객이 될 것이다.
[폭포 중간에서]
미륵바위를 출발하여 도중에 수도골에서 석간수(거대한 바위틈으로 물이 똑똑 떨어져 샘을 이루었다)로 목을 축이고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마천루에 도착했다.
그동안에 빗방울이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여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 했다. 강아지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두타산 산신령의 심술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원망할 계제가 아니다. 심사를 거슬려 천둥·번개에 벼락이라도 치는 날이면 낭패이니 말이다.
마천루(摩天樓)는 한마디로 말해 깎아지른 바위들이 모여 있는 금강산바위군 중 두타산의 협곡과 주위 풍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만든 전망대이다(해발 470m). 이를 위해 산허리에 길을 내고 잔도를 설치하였다. 일견해서도 엄청난 난공사였으리라고 짐작된다.
오후 1시 30분경 이곳에 도착하니 앞의 베틀바위 전망대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치가 정말 장관이다. 특히 하늘을 쓰다듬는 곳이라는 뜻의 '마천루'라는 이름에 걸맞게 발아래 펼쳐지는 경치가 일품이다.
그 경치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저 아래쪽으로부터 구름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온다. 그러더니 어~어~ 하는 사이에 온 천지를 덮어버린다. 그 바람에 우리 일행 바로 뒤에 오던 사람들은 간발의 차이로 구름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마천루로 구름이 올라오는 모습]
[마천루의 잔도]
[마천루의 고릴라 바위]
구름에 덮인 마천루에서 쌍폭포로 내려가는 잔도도 경사가 급하여 발걸음을 조심조심 내디뎌야 한다. 그 와중에도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깎아지른 절벽 위로 고릴라 바위가 구름 속에서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고릴라의 입 앞에 서 있는 나무는 먹이인가, 노리개인가.
마천루에서 30분 정도 내려가면 쌍폭포가 나온다.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지점의 각 계곡에 폭포가 있어 쌍폭포로 이름지어진 곳이다.
무릉계곡을 대표하는 폭포로는 흔히 후술하는 용추폭포를 드는데, 촌부의 짧은 안목으로는 이 쌍폭포가 더 멋지다. 근래 비가 계속 내린 까닭인지 폭포의 수량이 풍부하여 나그네를 더 즐겁게 한다. 폭포 주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몰려 있어 인증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했다.
[쌍폭포]
쌍폭포를 지나 오른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0여 분 위로 올라가면 용추폭포(龍湫瀑布)가 나온다. 무릉계곡에서 제일 많이 알려진 폭포이다. 이 폭포는 두타산이 아닌 청옥산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온 물이 3단의 절벽에서 떨어지며 생긴 것이다.
하단의 폭포 앞에 관람을 위한 다리가 놓여 있어 용추폭포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이곳에서 구경하고 돌아간다. 그런만큼 용추폭포를 소개하는 사진은 으레 이 하단의 것이다.
그런데 위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가면 중단의 폭포도 볼 수 있다. 하단에서 그냥 돌아설 촌부가 아니기에 당연히 그리로 올라갔다. 항아리 모양의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나무숲 사이로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민다. 하단의 폭포와는 달리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그나마 중단 폭포는 이정도라도 볼 수 있지만, 상단 폭포는 아예 볼 수 없다.
[용추폭포(하단)]
[용추폭포(중단)]
두타산 정상을 오르지 않고 무릉계곡 일대만 둘러보는 산행을 할 경우에는, 무릉계곡 입구에서 베틀바위를 지나 마천루를 거쳐 용추폭포에 이르면(총 4.7km. 3시간 소요) 하이라이트를 다 본 셈이기 때문에, 이후로는 계곡을 따라 곧바로 출발지로 내려가는 것(2.6km. 50분 소요)이 일반적인 산행코스이다.
그렇지만 촌부 일행은 용추폭포에서 발걸음을 관음암으로 향했다. 2008년 11월에 두타산 정상을 오르다가 무릉계곡 맞은편 산(청옥산)의 절벽에 걸려 있는 듯한 관음암을 바라보며,
“계곡 건너 절벽에 걸려 있는 관음암은 속세와 연을 끊은 모습이다. 저곳에서 면벽수도하면 100일 안에 득도할 것만 같다.”
는 감상을 산행기에 남기며 기회가 되면 한번 가봐야지 했던 곳인데, 어찌 외면하랴.
더군다나 삼화사 주지 스님이 관음암에서 점심 공양을 할 수 있게 연락해 두겠다고 하신 마당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관음암이 자리한 곳은 청옥산 자락의 아랫부분이다. 용추폭포에서 이곳으로 가려면 우선 하늘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급경사의 300개가 넘는 철계단 앞에서 서면 우선 기가 질린다. 하지만 어쩌랴, 이왕 나선 길인데 오르지 않고 어쩌겠는가.
경사가 하도 급하고 계단이 많다 보니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곳도 있다. 끝에 다다르면 마침내 하늘로 통하는 문(=하늘문)이 객을 반긴다. 하늘을 쓰다듬다(摩天) 성이 차지 않아 아예 하늘로 들어가는 것이다. 신선이라도 될 참인가.
하늘문을 통과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천상의 세계이런가. 그러나 그것은 그저 희망 사항일 뿐, 탐진치(貪瞋痴)의 속진(俗塵)에 찌든 촌부에게는 언감생심이다. 천상계도 아니고 마법의 성도 아닌, 여전히 백발번뇌를 안고 사는 사바세계일 따름이다.
[하늘문]
거친 숨을 돌리며 시계를 보니, 아이고 벌써 12시 10분이다. 절(=관음암)에서 점심 공양을 하려면 지금쯤은 절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하늘문을 나서면 바로 나오는 이정표에는 관음암까지 아직 1km를 더 가야 한다고 되어 있다. 우중의 산길이라 아무리 서둘러도 30분 이상 걸릴 텐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든다.
나그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음암으로 가는 산길은 만만치 않다. 말 그대로 일모도원(日暮途遠)이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은 산의 산록 절벽 위에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을 냈으니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비라도 그쳐 주면 좋으련만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그 대신 산을 덮고 있는 구름이 비경을 연출하여 주니 원망도 못 한다. 그래, 관음암에서 공양을 못 하면 하산해서 먹지 뭐....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선경이 더 눈에 들어온다. 암상좌불(岩上坐佛)의 흉내를 내 볼거나.
[암상좌불]
빗방울이 더 굵어진 가운데 마침내 관음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 30분이 넘었다. 젊은 주지 스님이 이제 오면 어떻게 하냐며 공양 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늦게 온 우리가 잘못인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발길을 돌리는데, 공양주 보살님이 소매를 잡는다. 점심을 차려 줄 터이니 바깥에서 비 맞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란다. 관세음보살이 따로 없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절인 '관음암'의 진정한 관세음보살이었다. 적어도 촌부에게는.
공양주 보살님이 삼화사 주지 스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기다리고 있었다며 정성스레 상을 차려 준다. 그야말로 꿀맛이다. 시주하려고 준비했던 보시금을 그 보살님에게 드렸다. 그게 오는 정 가는 정 아닐까.
앞서 언급했듯이 속세의 연을 끊은 채 100일 면벽수도하면 득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관음암은 아쉽게도 나그네의 발길을 오래 머물지 못하게 했다. 점심 공양을 마치자 바로 길을 나섰다. 법당도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서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그쳤다. 차라리 100m 미인으로 남겨 둘 것을...
[관음암]
삼화사로 돌아오니 오후 2시가 넘었다. 총 산행시간이 대략 6시간 30분 걸린 셈이다. 이제 남은 일은 삼화사에서 씻고 귀경하는 것뿐이다. 이번에도 베스트 드라이버 담허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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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13. 무릉계곡을 다시 찾았다. 그 1년 전에 가보았던 베틀바위 산성길의 멋진 풍광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재차 찾아 나선 것이다. 산행코스도 동일했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난 2024.5.4. 두타산을 또 올랐다. 이번에는 정상을 등정하는 것이다. 정상 등정은 2008.11.1.에 이어 두 번째다.
전날(5.3.) 삼화사에 도착하여 1박을 하고 아침 7시에 절에서 출발했다. 학소대, 두타산성, 대궐터를 거쳐 정상에 오른(총 6km) 후 청옥산 쪽으로 가다가 박달령에서 쌍폭포 쪽으로 하산해 삼화사로 돌아오는(총 8km) 코스를 택하였다. 총연장 14km로 11시간 걸렸다.
두타산은 정상이 해발 1,353m로 설악산 대청봉(해발 1,708m)보다 낮지만, 출발지 고도가 해발 180m인 까닭에 표고차가 1,173m나 되어 오색(해발 650m)과의 표고차가 1,058m인 설악산 대청봉보다 오르기가 더 힘들다. 더구나 표고차뿐만 아니라 국립공원이 아닌 탓에 등산로 정비가 안 되어 있어, 대부분의 급경사길을 철계단 없이 생짜로 올라야 한다. 그 길이 특히 너덜지대인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곳을 통과하려면 그야말로 고역이다. ‘골 때리는(=두타) 산’의 진면목을 과시한다.
두타산 정상에는 16년 전에 보았던 옛 표지석 외에 새로운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나 다소 아쉽다.
박달령에서 쌍폭포로 하산하는 길은 두타산의 여러 등산로 중 경사가 특히 심하다. 그래서 조난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니 우회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2020년에 베틀바위 산성길이 열린 후에는 두타산 등산객이 그쪽으로 몰려 정상을 오르는 사람이 가뜩이나 줄었는데, 그 영향인지 이 길을 내려가는 동안 우리 일행 말고는 다른 등산객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지난해 폭우에 쓰러졌을 나무들이 곳곳에서 길을 막고, 오랫동안 쌓인 낙엽들이 길을 덮어, 툭하면 등산로가 사라지는 통에, 그러잖아도 급경사로 인해 힘든 나그네의 발길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그동안 강원도의 여러 산을 올라본 촌나그네의 시각에서는 무릉계곡을 끼고 있는 두타산이 국립공원 치악산보다 더 멋진 산으로 생각되는데, 그 두타산이 이렇듯 방치되어 있는 게 이해가 잘 안 된다, 국가 차원에서 안 하면 강원도나 하다못해 동해시가 나설 만도 한데, 관계자들의 무신경이 안타깝다.
그나저나 푸른 5월의 신록으로 물든 두타산의 풍광은 실로 장관이었다. 연두색과 초록색이 어찌 그리도 멋진 조화를 이룰까. 나그네가 그 푸르름의 바다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