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엽편주에 내 마음 띄우고

 

   6월의 마지막 주말(6/28~6/29)에 태안을 거쳐 예산 가야산을 다녀왔다. 진즉 계획했던 일이긴 하여도, 출발에 즈음해서 한반도에 장마가 시작되어 다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장마전선이 남쪽에 머무르며 북상을 하지 않아 기대 이상으로 즐거운 여정이 되었다. 

 

    6월 28일 늦은 오후에 도착한 태안의 텃골 교수님 댁은 앞뜰 바로 밑이 바다이다. 그 만경창파(萬頃蒼波)에 일엽편주(一葉片舟) 조각배(교수님이 최근 구입하신 1인용 자가용이다)를 두둥실 띄우고 ‘어기야 어야디어라’ 노를 저어가니 온 천지가 가슴에 다가와 안기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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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 번 웃자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노를 저어가라 가자 가자 가자

   가슴 한번 다시 펴고

 

   송창식의 ‘가나다라’를 흥얼거리다 짝퉁 강상풍월로 넘어간다. 

 

   태안에 둥둥 떴는 배 풍월 실러 가는 밴가

   십리 바다 벽파상에 왕래하던 거룻배

   마덕사 석양 아래 김텃골 놀던 밴가 

                  · · · · · · · · · · · ·

   백구야 날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다

   한양을 떠나옴에 너를 쫓아서 예 왔노라

  

   그렇다, 해가 서쪽 하늘 아래로 뉘엿뉘엿 넘어갈 채비를 하는데, 바람 한 점 없어 잔잔하기 그지없는 바다 위에서 일엽편주에 몸을 맡긴 채 두둥실 떠다니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물 아래 그림자 져서 배 타고 나아가니

   내 가는 곳 어디냐고 배 주인이 물으신다

   긴 노로 흰 구름 가리키며 말없이 저어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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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산 등산은 6월 29일 아침 8시에 덕산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석문봉, 가야봉을 거쳐 오후 1시에 원점회귀형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하였다. 총거리가 대략 8km 정도 된다. 등산로 입구의 산행 안내 지도에는 3시가 20분 걸린다고 되어 있지만, ‘세월아, 네월아’ 하며 걷다 보니 5시간이 걸렸다. 

 

가야14.jpg[가야산 등산지도]

 

   가야산은 분명 서산과 예산에 걸쳐 있는 산이건만, 극구 당신이 거주하고 있는 태안의 관할구역 안에 있음을 강조하시는 텃골 교수님의 영도 아래 산행을 하였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교수님은 ‘마덕사의 마름’을 겸하고 계신다(본인 주장). 아무튼 덕분에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하였고, 귀중한 사진들도 남겨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가야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최고봉인 가야봉이 해발 678m), 가야봉이나 석문봉의 정상을 오르기 직전에는 경사가 매우 급하여 가쁜 숨을 내쉬어야 한다. 특히 심한 급경사에는 그나마 철계단을 설치하여 놓아 산객의 힘을 덜어준다. 

    

   녹음이 우거진 산길은 대부분 그늘이 져서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대신 바람이 거의 없고, 능선에 올라서면 바람이 있는 대신 햇볕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님도 보고 뽕도 따고’는 욕심이다. 

   석문봉 올라가는 중간에 옥양폭포가 있는데, 여름임에도 물이 많지 않아 폭포라고 하기에 민망하다. 그냥 경사진 계곡에 물이 흐르는 정도라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그나마 가야산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있는 폭포인 걸 어쩌랴. 아무래도 산이 높지 않다 보니 깊은 계곡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가야4.jpg[옥양폭포]

 

   석문봉 정상까지 오르는 데 대략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100대 명산에 속하는 이 산의 석문봉(해발 658m)에 올라서면 암봉인 봉우리 자체도 멋지지만,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여 해미 쪽으로 서해바다까지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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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6.jpg[석문봉]

 

   그런데 석문봉에는 뜬금없이 백두대간 종주 기념탑이 하나 세워져 있다. ‘해미산악회’라는 곳에서 돌탑을 쌓은 것인데, 석문봉은 백두대간과는 거리가 먼 금북정맥에 속하는 곳인 만큼 영 어울리지 않는다. 산에다 그런 인공조형물을 함부로 조성할 일도 아니거니와, 이왕 할 거면 그에 부합하는 장소를 찾아야 하지 않을는지. 서울 북한산에 가야산 종주 기념탑을 세운다면 과연 어울리겠는가.     

 

가야7.jpg[백두대간 종주 기념탑]

 

   석문봉에서 가야봉까지는 능선을 따라 1시간 정도 가는데(1.5km), 암릉길과 흙길이 교차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군데군데 묘한 형상의 바위(사자바위, 소원바위, 거북바위 등)가 나타나 나그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고개를 들면 흰 구름과 태양, 그리고 파란 하늘이 어우러지고 있다. 등산지팡이로 그 하늘을 가리키며 말없이 가다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쉬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다. 사람(人)이 산(山)에 가면 곧 신선(仙)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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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봉 가는 능선에서]

 

  가야봉 정상에는 통신시설과 방송국 중계탑이 설치되어 있어 순수한 산객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쉽다. 진짜 정상을 밟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해발 678m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곳은 실제로는 정상이 아니다. 이곳의 실제 높이는 650m이다.  678m의 진짜 정상은 출입이 금지된 중계탑 경내에 있다. 결국 정상 표지석은 짝퉁인 셈이다. 그나마 이곳에 전망대를 설치하여 놓은 것은 등산객을 위한 배려라고 해야 하나. 말하자면 ‘꿩 대신 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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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11.jpg[가야봉]

 

   촌나그네가 그동안 다녀본 경험으로는 우리나라의 많은 산 중에는 군사시설이나 통신시설로 인해 정상에 오를 수 없는 곳이 적지 않다. 심지어 정상이 있는 봉우리 자체를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예컨대, 가평과 화천의 경계에 있는 화악산). 그런 면에서 보면 가야봉은 정상의 마지막 일부만 못 올라갈 뿐이기에 ‘다소’ 아쉬울 따름이지 ‘크게’ 아쉬워할 일은 아니다. 

 

   가야봉 정상에서 주차장쪽으로 하산하는 길은 경사가 급해서 조심해야 한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들릴 때까지는 아픈 무릎을 끌고 내려가야 한다. 상가저수지에 도달할 즈음에서야 발걸음이 편해진다. 이어서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가 나오고 그 아래 발굴작업 중인 가야사 터를 지나게 된다.      

가야12.jpg[남연군묘]

 

   남연군묘와 가야사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2018년에 개봉한 영화 '명당'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아래에서 파락호 생활을 하면서도 권력에의 의지를 키우던 이하응(후일의 흥선대원근)은 당대의 풍수가 정만인에게 앞날의 운세를 물었다. 

  이에 정만인은

  “덕산 땅 가야산에 천하의 명당이 있는데, 그곳으로 부친의 묘를  이장하면 영화를 누리고 2대에 걸쳐 황제가 나올 것”

   이라고 하였다.

   이하응은 그의 말에 따라 부친인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려고 했으나, 정작 그 명당에는 이미 가야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었고, 봉분을 모셔야 할 자리에는 석탑이 있었다.

   권력을 잡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힌 이하응은 가야사를 불태우고 석탑을 부순 뒤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였다(1840년). 그리고 천하의 명당으로 묘를 이장한 덕분에 아들을 왕위에 오르게 하고 꿈에 그리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다.

   그러나 정만인의 예언대로 2대(고종, 순종)에 걸쳐 황제가 나온 것을 끝으로 조선은 허망하게 멸망하고 말았다. 

 

   한편 독일인 오페르트(Oppert)가 1868년 이 남연군묘를 도굴하려다 묘가 워낙 견고하여 실패하였다. 오페르트는 애당초 묘 속에서 시체와 부장품을 꺼내 이를 이용하여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려고 했던 것인데, 도굴에는 실패한 채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만 초래하였다. 

 

   하산을 마친 후 근처 온천에서 간단히 목욕을 하고 수덕사의 말사인 정혜사로 설정스님을 뵈러 갔다. 수적사의 방장과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역임하신 스님은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꼿꼿하시다. 다만 작년에 교통사고를 당하신 후유증으로 인해 자리에 앉는 것이 불편하시다. 

 

  스님께서 과일과 차를 내 주시더니, 산행하느라 점심 공양을 못 하였을 거라며 시자(侍子) 스님을 시켜 떡을 가져오게 하셨다. 언제나 한결같으신 그 자상함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깊은 산속에 계시면서도 여전히 우국충정으로 나라 걱정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스님의 건강을 빈다. 

 

가야13.jpg[정혜사에서 설정스님과 함께]

 

  글을 마치며, 다음에는 태안 앞바다에 카약도 띄우고 놀아보자는 텃골교수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태백산맥2.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