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의 세월(덕유산2)
2010.02.16 12:07
30년의 세월
2003. 6. 14. 1박2일로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민사집행법연구회 정기세미나에 참석하였다가 그 다음날 스키장 슬로프를 逆으로 거슬러 올라가 덕유산 정상에 다녀온 후 정확히 1년이 지난 2004. 6. 12. 그 무주리조트에 다시 다녀왔다. 역시 같은 목적이었다.
1년밖에 안 되어서인지 山川도 依舊하고 人傑도 依舊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판사들이 모이는 자리인 까닭에 1년만에 대하는 반가운 얼굴들도 여전했다. 첫날 5시간 넘게 발표와 토론이 이어지는 열띤 세미나를 하고, 다음날 골프팀과 등산팀으로 나뉘어 체력단련을 하는 일정도 동일했다. 아직도 골프채를 잡기가 겁나는 나는 이번에도 등산팀에 합류했다.
이번에는 작년과 달리 무주구천동계곡으로 들어가 백련사에서 출발하여 향적봉으로 직행하는 정통 등산로를 택하였다. 나로서는 대학교 1학년 때인 1974년 7월에 그 코스로 처음 등반을 한 후 물경 30년만의 일이니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백련사는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던 자그마한 암자가 아니라 제법 규모를 갖춘 사찰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 길의 계단들은 생소하기만 했다. 절이나 등산로가 새로 단장을 한 데 비하여 그 곳을 찾은 나그네는 20세의 앳된 청년에서 50세의 初老로 변하였으니, 山川이나 人傑이 依舊하기에는 30년의 세월이 너무나도 긴 시간인가보다.
작년에 쓴 등산기(‘어떤 등산’)가 있는데 1년만에 또 쓰려니 運筆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아, 이번에 새로 세미나에 동참한 민사20부의 마스코트 美人堂 金英賢 판사의 글을 새로운 등산기에 갈음하여 여기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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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민사집행법연구회 무주 세미나를 다녀와서
시작
서울고등법원에서의 3개월이 훌쩍 지나버린 어느 날, 부장님으로부터 호출이 왔다. ‘에구구, 보나마나 납품한 판결문이 동일성을 상실한 채 되돌아오는구나’라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부장님 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부장님께서는 ‘김판사, 6월 12, 13일에 약속 있어?’하고 물으셨다. 사교성이 없어 평소 평일이든 주말이든 한가한 날이 많다는 점을 일찌감치 눈치 채신 모양이다. 역시 별다른 약속이 없다고 말씀 올리자, 이번에는 ‘무주리조트 가 봤어?’라고 물으셨다. 그제서야 ‘아! 뭔가가 있구나’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으나, 평소 천성이 게을러 가 본 곳이 별로 없는지라 안 가 봤다고 말씀드리고 말았다. 그러자 부장님께서는 민사집행법연구회의 정기세미나가 6월 12, 13일 이틀간 무주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하셨다.
민사집행법연구회에 관하여는 작년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기는 하였지만, 주변 판사님들로부터 민사집행법연구회는 고명하신 분들(소위 ‘고수’)만이 있는 곳이라 들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내가 몸담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부장님께서는 회원으로 가입하지 아니하여도 가 보는 것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선 것이 민사집행법연구회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6월 12일 무주로 출발하기 전날, 즉 6월 11일은 우리 재판부의 기일(期日)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기일(忌日)이었다. 그 동안 재판부 회식을 영화, 연극 등 각종 문화행사로 치루는 아름다운(?) 전통을 지켜온 민사20부에 올해에는 敵軍(아마도 민사18부가 아닐까 한다)이 놓고 간 트로이 목마가 있었으니, 미륵불 김성수 판사님(좌배석)이 바로 그 분이다.
이 부처님 덕분에 재판부의 첫 회식 때 술에 입맛을 들인 것이 그만 화근이 되어 회식 때면 술을 찾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으니... 나는 술을 먹어도 안색이 잘 변하지 않다가 결정적인 한 방에 무너지는 경향이 있는데, 동자승 강승준 판사님(우배석)과 미륵불께서는 그걸 모르시는지라 나에게 계속 술잔이 넘어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11일을 忌日로 보내고 그 다음날 술이 덜 깬 상태로, 아침도 굶은 채 부장님의 愛馬 그랜저 XG(2,500cc)를 타고 무주로 출발하였다.
6월 12일
나는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고향인 대전 이남에는 거의 가 본 일이 없다. 광주에 결혼식이 있을 때 우등고속을 타고 다녀온 적이 있지만, 그 때는 커튼을 치고 그야말로 푹 자다가 결혼식장에 내려서 잠시 사진 찍고 밥 먹은 후, 다시 버스에 올라 푹 자면서 상경하였기 때문에 대전 이남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무주가 전라도에 있다는 것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다.
서초동 법원에서 9시 20분쯤 출발하였으나, 최고학력의 꽃미남 운전기사(조병구 판사님)의 능숙한 운전실력 덕분에 12시 30분쯤 무주리조트에 도착하였다. 중간에 금산휴게소에서 인삼과 우유를 섞어 믹서기로 간 인삼즙이라는 것을 마셨는데, 그 조화가 기괴했다. 그 맛있는 우유를 왜 인삼과 섞을까... 우유 매니아인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무주리조트는 그야말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숙소 건물들이 산기슭을 타고 계단식으로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리조트 안에 들어서서 숙소 쪽을 바라보면 건물들이 산을 병풍 삼아 늘어선 것처럼 보인다. 리조트답게 식당, 술집, 슈퍼마켓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을 뿐만이 아니라, 숙소 내부 또한 꽃무늬 이불에 꽃무늬 커튼으로 장식하여 매우 따듯한 인상을 주었다. 역시 꽃무늬는 요즘 최고의 트렌드이다.^^
간단히 점심식사를 한 후, 드디어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말로만 듣던 고명하신 분들을 직접 뵐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우선 회장님이자 민사집행법연구회의 최고 美男이신 김능환 부장님, 貴陀庵의 庵主이시자 우리 부의 부장님이신 민일영 부장님(이하 많은 부장님들이 등장하시지만, 不事二君이라 하였는바, ‘부장님’이라고만 하면 민일영 부장님을 칭하는 것이다), 연수원 때부터 그 고명하신 인품에 관하여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유승정 부장님(유승정 부장님께서는 30, 31기 3반 연수생을 지도하셨는데, 내가 바로 32기 3반이었다), 매사 꼼꼼하시기로 유명하신 서기석 부장님 등을 직접 뵈었다. 코엑스몰에서 배용준을 직접 봤을 때보다 더 황공하였다.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위와 같이 고명하신 분들이 계신 자리라서 그런지 계속 실수의 연발이었다. 처음 뵙는 자리였는데... 안타깝기는 하지만 덕분에 나를 기억하시기는 쉬울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글을 쓰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한 줄 한 줄 살을 에는 기분으로 짜내고 짜내서 글을 쓴다. 판결문이든 혹은 학술적인 글이든, 심지어 신변잡기적인 글까지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다른 판사님들의 글을 읽는 것은 많은 가르침이 된다. 글 자체도 그렇지만, 업무로 매우 바쁜 와중에도(특히 윤경 부장님은 사법연수원 1년차 교수로서 연수생들 등쌀에 매우 바쁘실 것이다) 연구하고 글을 써 가는 부지런한 마음가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언젠가는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예비판사가 있었음 하는 거창한 바램도 든다.
요즘 ‘참여’라는 모토가 유행인 듯한데, 우리 민사집행법연구회의 학술발표는 매우 활발한 토론을 한다. 발표자가 연구주제에 관하여 준비해 온 논문을 발표하면, 그 문제의 시발점이 된 법원실무제요 민사집행편 등을 실제로 집필하신 분, 해당 판결을 재판연구관으로서 검토하신 분, 현재 신청, 경매 담당 판사로서 비슷한 사건들을 처리하시고 계신 분들이 질의를 하고 토론을 하셨다. 그야말로 전문가들의 토론이다. 예비판사로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어느덧 세미나가 끝나고 기념촬영을 한 후, 회식을 하기 위해 고깃집으로 이동하였다. 나에게 폭탄주를 가르쳐 주신 은사님께서는, ‘전날 과음하였다’는 취지의 항변은 그 자체로 이유 없으며, 오히려 벌주의 대상이 된다고 하셨다. 결국 고깃집에서도 폭탄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휴재 판사님 옆 자리에 앉았는데, 역시 일찍 결혼하신 분들은 뭔가 이유가 있다(26살에 결혼을 하셨고, 지금은 두 아이의 아빠라고 한다). 그렇다고 나를 비롯하여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한 사람들 또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날 밤의 최고 화두로 북방계와 남방계 논쟁을 빼 놓을 수 없다. 통상 북방계는 얼굴의 위, 아래가 긴 타원형이나 직육면체로 안면의 좌우가 좁고 몸매 또한 호리호리한 반면, 남방계는 안면 좌우의 비율이 넓고 전체적으로 뭉툭한 체형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서승렬 판사님은 그러한 분류에 반기를 들고, 그 반대라고 주장하셨다.
또한, 통상 달걀형 얼굴에 호리호리한 체형임을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뜻밖에도 서승렬 판사님은 스스로 둥근 얼굴에 뭉툭한 체형이라면서 북방계임을 선언하시고 북방계가 민사집행법연구회의 정통성을 이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 결과 남방계인 나는 민사집행법연구회에 가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달걀형 얼굴에 호리호리한 체형이라고 불러주시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사집행법연구회에 가입시켜 줄 수 없다는 결론은 슬프기 그지없었다(서판사님의 뜻과는 달리 나는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당당히 가입하였다).
저녁식사 후 노래방에서의 환락의 밤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김경선 교수님의 댄스곡과 안철상 교수님의 감미로운 발라드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역시 연수원 교수님들은 젊고, 멋있다.
6월 12일과 6월 13일 사이
언제 밤 12시가 지났는지는 알 수 없다.
여자 판사들(이수영 판사님, 최유정 판사님, 이준영 판사님 그리고 나)은 2인이 한 방을 쓰기로 하였는데, 이수영 판사님께서는 진작부터 주무시고 계셨기 때문에, 방 열쇠가 없는 최유정 판사님은 이수영 판사님의 곤한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방에서 같이 주무시기로 하였다(그런데, 이수영 판사님은 룸메이트인 최유정 판사님이 밤새 들어오시지 않아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방마다 2인용 침대와 1인용 침대가 있었는데, 어느 모로 보나 이준영 판사님과 내가 2인용 침대를 쓰는 것이 마땅했다. 둘이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하면서 잠을 청하였는데,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좋았다. 자기 전에 낮은 목소리로 얘기할 사람이 옆에 누워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나도 이젠 결혼할 때가 되었나 보다.
6월 13일
둘째 날 오전에는 골프파와 등산파로 나뉘어 운동을 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부장님을 비롯하여 이우재 판사님, 최유정 판사님 등과 함께 덕유산 등산을 하기로 하였다. 덕유산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은 산이라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갈 차비를 하였는데, 부장님과 이우재 판사님 간의 분위기가 무언가 심상치 않다. 결국 이의제기할 수 있는 기간과 방법조차 고지되지 아니한 채 등산코스가 변경되었다. 원래 처음에는 작년에 그러했던 것처럼 무주리조트의 스키장 슬로프를 逆으로 거슬러 올라갈 예정이었는데, 스키장 슬로프이기에 다소 완만한 경사의 나무 하나 없는 재미없는 코스였다는 게 중평이었던 듯하다. 그 반작용으로 올해는 차라리(?) 골프를 치겠다고 한 분들도 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코스는 무주구천동 쪽으로 돌아들어가 백련사 옆 계단식 등산로를 따라 정상인 향적봉에 오르는 것으로 변경된 것이다.
이 무렵 6월 10일까지는 비가 많이 왔는데, 등산 당일에는 날이 화창하였다. 비온 뒤 산과 하늘과 그 속에 싸여 있는 무주군의 풍경은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2시간여의 등반으로 정상에 올랐으나 카메라를 가져온 사람이 없어 갑제1호증(기념사진)을 남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차에, 부장님께서 묘안을 내셨다. 서울남부지방법원 공식 지정 꽃미남(김상훈 판사님)을 파견하여 묘령의 여인으로부터 디지털 카메라를 빌려 사진을 찍은 후 나중에 E-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도록 美男計를 써 보자는 것이었다. 김상훈 판사님은 잠시 주저하시는 듯하였으나, 이내 프로정신을 발휘하여 셔츠 단추를 두 개나 풀은 후 위 공작을 완벽하게 성공시켜 꽃미남임을 스스로 입증하셨다.
하산하는 길은 슬로프를 따라 운행하는 곤돌라를 타기로 하였는데, 산기슭의 풍경 또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당초의 등산일정대로라면 그 길을 걸었을 것인데, 언뜻 보니 나무 하나 없는 땡볕에 굴곡 없는 오르막길이었다. 그렇게 재미없는 길로 덕유산에 오르지 않도록 한 부장님의 배려에 정말 감사드린다.
마치며
점심식사를 한 후 각자의 교통편으로 서울로 향하였다. 일요일이라 차가 많이 밀릴 것에 대비하여 비상식량으로 호두과자를 샀는데, 서울에 가까워지는 정도를 보아 하나씩 꺼내서 부장님, 김하늘 판사님, 조병구 판사님과 나누어 먹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생각보다 빨리(저녁 8시경) 서울에 도착하여 부장님과 저녁식사를 하였다. ‘이젠 집에 가서 일찍 자야지’ 하는 생각으로 후다닥 식사를 마친 후 차를 가지러 법원에 들어왔는데, 부장님께서 사무실에 잠깐 들르자고 하셨다. 조금 뒤 기록을 싸 들고 귀가하시는 부장님의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았다. 그럼 나도... 라는 생각에 기록을 싸들고 집에 갔지만, 난 기록을 싼 보자기를 풀어보지도 않은 채 그 다음날 그대로 들고 출근하고야 말았다. 역시 난 아직 갈 길이 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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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에 덕유산을 오른 후 법원산악회의 회장을 할 때인 2013년 4월에 회원들과 더불어 다시 올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2018. 2. 3.에 또다시 덕유산을 찾았다. 이번에는 설산등반이었다. 100% 정확하지는 않으나 이로써 다섯번 오른 셈이다.
동행한 도반은 복석회 친구들인 김춘수,김 문규, 김완빈, 최기용 등 4인이었다.
춘수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무주구천동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여 차를 주차하고 등산을 시작했다. 겨울이긴 하지만 매서운 바람이 불지 않아 등산하기에는 오히려 적당한 날씨였다.
무주구천동 입구에서 백련사까지는 고속도로(?)나 다름없는 길(자동차가 다닌다)이라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는데, 다만 워낙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길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 초입부터 아이젠을 착용해야 했다. 대략 한 시간 걸려 백련사에 도착했다.
5년 사이에 요사채가 더 들어섰고, 절도 더욱 정비된 모습이다.
[백련사]
백련사 안마당을 관통하여 절을 벗어나면 바로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제껏 룰루랄라 하던 친구들의 입에서 "아이고~" 하는 신음소리가 연이어 튀어나왔다. 나는 다섯번째 오르는 산이지만, 기용이는 처음이라 하고, 다른 친구들도 매우 오래 전에 오른 기억밖에 없다고 한다.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는 2 시간 반 정도 걸렸다. 거리가 길지는 않아도 경사가 급한 눈길이라 빨리 걸을 수 없었다.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정식 등산객뿐만 아니라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로 인해 거의 남대문시장 수준으로 붐볐다. 돌로 된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선 줄이 끝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나무로 만든 표지판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남겼다.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전자보다는 한결 수월했다.
[덕유산 정상]
해발 1,614m의 향적봉은 역시 그 높이를 자랑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발 아래 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스키슬로프 실크로드를 바라보며 충주지원장 시절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와 스키를 타고 내려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2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 때의 즐거웠던 추억이 생생하다. 당시는 나이가 막 40대로 접어든 때로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듯했는데, 이제는 어느덧 60대가 되어 뒷전으로 물러나 있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세월의 흐름을 어쩌랴.
하산은 설천봉으로 가서 곤돌라를 이용해 무주리조트로 내려갔다. 3시간 반 걸려 오른 산을 덕분에 순식간에 내려가니까 다리도 안 아프고 편해서 좋았으나 다소 허망했다. 무주리조트에서 무주구천동 탐방지원센터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