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램

2010.02.16 13:29

범의거사 조회 수:13312

  마침내 16대 대통령선거가 막을 내렸다. 노무현후보의 승리를 두고 미디어선거의 승리, 2-30대의 승리, 3김시대의 종언 등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민주당 국회의원 23명이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였다는 기사가 뉴스시간을 장식한다. 정치판에 아마도 많은 변화가 생기리라.

  그런데 무엇보다도 노무현 당선자의 아들(노건호)이 기자회견을 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싶다"고 한다. 그는 LG전자의 신입사원이다. 너무도 당연한, 마땅히 그래야 할 이 말 한 마디가 신문마다 크게 다루어지는 것은 왜일까?
  그 기자회견내용을 보도하는 기자들마다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의 아들들을 머리에 떠올리지 않았을까? 그들은 그 기사를 쓰면서 대통령의 아들이 법정에 서는 모습을 이젠 더 이상 보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는 신동아 12월호의 아래 기사를 보면서 위 기자들의 바램은 바로 온 국민의 바램이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 * * * *

(신동아 12월호 404-413쪽)

            우유 좋아하는 ‘귀공자’…고개는 숙였지만 죄는 부인
                   ===법조 출입기자가 6개월 동안 지켜본 김홍걸 재판과정 뒷 이야기.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다.’

‘나름대로 부모님의 강한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일생일대의 모험이 수인의 신분으로 처절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중략)… 이제 진정한 고통의 잔을 마신 피고인에게 참다운 자유를 주시길 바랍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셋째 아들 홍걸(弘傑)씨가 1심 선고를 앞두고 법원에 낸 최후변론문 내용의 일부다. 6개월간 계속된 재판 과정에 탄원서 한번 내지 않았던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제 진정한 고통의 잔을 마셨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리고 그는 풀려났다.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김용헌·金庸憲부장판사)는 10월11일 홍걸씨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추징금 2억원을 선고했다. 36억원에 이르는 부정한 돈을 받고도 실형을 피해간 것이다.

한 법조인은 “홍걸씨가 권력 주위로 몰려드는 부나방들에게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주변 사업가들의 꼬임에 빠져 소극적, 수동적으로 범행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는 대통령의 아들임을 내세워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비판여론도 상당하다. 어두운 성장과정과 내성적인 성격 등을 부각시켜 쉽게 동정을 얻었다는 것이다.

진실은 무엇인가. 178일간의 구속생활은 과연 그에게 충분한 죄값이었는가. 장기간의 해외 유학생활로 배울 만큼 배우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39세의 사내가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김홍걸. 그는 누구인가.

◇ 출두

귀공자. 5월17일 오전 10시 검찰청사 앞에 모습을 드러낸 홍걸씨를 본 기자의 첫 인상이었다. 185㎝ 가량의 훤칠한 키에 감색 양복이 잘 어울리는 균형 잡힌 몸. 오똑한 콧날과 뒤로 말끔하게 빗어넘긴 머리는 ‘귀하게 자란 도련님’의 외모였다. 꼭 다문 입술은 언뜻 오만해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그는 얼어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지는 노란 포토라인 앞. 그 앞에서는 누구든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유난히 겁을 먹고 있었다. 200여 명에 이르는 취재진 앞에서 그의 두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커다란 체구가 민망하다싶을 만큼 그는 어쩔 줄 몰랐다. “한 마디 해달라”는 취재진의 요구에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홍걸씨 변호를 맡은 조석현(曺碩鉉) 변호사에 따르면 그는 소환 직전까지도 극도의 불안감과 긴장감에 시달렸다. 어머니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통화할 때는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안정을 못 찾는 데다 몸살기까지 있어 조변호사는 기본적인 상담조차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홍걸씨는 정확히 5년 전 구속기소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와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현직 대통령 아들의 금품 및 이권청탁 비리라는 사건의 외양은 유사하다. 측근관리를 소홀히 해 빚어진 테이프 폭로가 사건의 발단이 된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조사받는 태도나 대응 방식이 달랐다.

5년 전의 현철씨는 ‘터프가이’에 가까웠다. 그는 검찰수사 당시 크게 반발하며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그가 검찰청에 들어서기 전 내뱉은 말은 “검찰은 절대로 나를 치지 못한다. 수사를 받더라도 입을 열지 않겠다”였다.

현철씨는 이후 혐의를 추궁하는 검사에게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맞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검찰총장을 불러내라”는 요구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 신자인 그가 검사에게 들이민 성경 구절은 ‘원수들을 없애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인 시편 143장.

반면 홍걸씨는 검찰청사 포토라인에서 “검찰 수사에 순순히 응하겠다. 지혜롭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구속 직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읽은 성경구절은 솔로몬의 지혜를 담은 잠언.

“홍걸씨가 우유를 좋아해요”

검찰 관계자는 “홍걸씨가 피곤해하면서도 비교적 담담하게 수사에 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동 안팎에서는 소환 직후부터 그가 최규선(崔圭善)씨에게 휘둘렸을 가능성도 있다는 동정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폐아에 가까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소문도 돌았다.

우습게도 그 이미지를 더욱 강조한 것은 소품인 우유. 수사가 계속되면서 조석현 변호사가 조그만 비닐봉지를 들고 수시로 조사실을 왔다갔다하는 것이 취재진 눈에 띄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우유라고 했다.

“아따, 홍걸씨가 우유를 좋아해요잉. 갖다 달라고도 하고 조사받으면서 지칠 것 같아서….”

조변호사는 특유의 여유와 능청스런 말투로 의혹의 눈길을 던지는 취재진 앞에 우유를 내밀었다. 어린아이를 연상시키는 하얀 우유는 의도적이었건 우연이었건 ‘순둥이’라는 인상을 만들어냈다.  


◇ 첫 공판


“모두 일어서 주시기 바랍니다.”

6월28일 오전11시 서울지법 311호 중법정. 김용헌 부장판사와 두 명의 배석판사가 들어서자 법정 경위가 기립을 외쳤다. 고개를 살짝 숙이는 재판부의 의례적 인사와 함께 착석한 방청객들의 웅성거림이 가라앉았다.

법정 왼쪽 검사석에는 임상길(林相吉) 주임 검사가, 오른쪽 변호인석에는 조석현 변호사가 자리잡았다. 공범으로 기소된 김희완(金熙完)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최규선씨측 변호인단도 앉았다. 아무도 서로 눈길을 마주치지 않았다. 김부장판사가 기록을 뒤적이는 소리만 흘렀다.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기싸움. 누군가가 헛기침을 했다.

“사건번호 2002고합 xxx. 피고인 김홍걸.”

피고인 대기석의 문이 열리고 감색 양복을 입은 홍걸씨가 천천히 피고인석으로 올라왔다. 구속 40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초췌했다. 굵은 뿔테 안경을 썼기 때문인지 얼굴이 더 꺼칠해 보였다. 자해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철테 안경을 쓸 수 없게 한 구치소 방침 때문에 홍걸씨 안경은 갈색의 굵은 뿔테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법정을 둘러보지도 않고 엉거주춤 앉은 뒤 곧바로 정면을 응시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긴장이 한계를 넘으면 저럴까. 방척석에서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은 경직됐다는 느낌을 넘어 오히려 멍해 보였다.

자신만만한 최규선 목소리와 대조

임검사의 주신문이 시작됐다. 홍걸씨의 혐의는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TPI)과 대원SCN 등에서 사업 청탁과 함께 36억9000만원 상당의 돈과 주식을 받고 그 돈을 차명관리하면서 2억2400여만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

“김홍걸 피고인, 최규선 피고인에게서 타이거풀스의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네, 복권 선정과정에 잡음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주식과 관련된 이야기는 훨씬 이후에 들었습니다.”

“동서인 황인돈씨를 통해 주식 약정과 관련해 계약서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내용을 한 번 본 적은 있습니다. 시기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최규선 피고인에게서 타이거풀스 주식 6만6000주를 받은 사실은 있죠?”

“…네.”

혐의를 부인하는 홍걸씨 목소리는 조그맣게 새어나오다 곧 사그라들었다. 재판부가 “조금만 크게 말해달라”고 주문한 뒤에야 자신 없는 목소리가 약간 또렷해졌다.

처음부터 크고 자신만만한 최규선씨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이었다. 최씨는 질문마다 장황한 답변과 설명을 덧붙였다. 입에 가까이 댄 마이크 때문에 소리가 울릴 정도. 신문 도중에 “존경하는 재판장께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고위공무원에게 청탁할 능력도 없고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라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이날 세 사람의 주장은 한마디로 “돈과 주식은 받았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는 것. 타이거풀스 주식은 회사 대표인 송재빈씨가 복표사업자 선정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신경써줘 고맙다는 뜻으로 준 것이고, 대원SCN 등에서 받은 돈도 “해외 기술합작을 도와준 정당한 대가”였다는 주장이었다.

“다음 재판은 7월19일 오후 2시로 하겠습니다. 변호인측 반대의견 있습니까? 없으면 그때 속행하겠습니다.”

한 시간 가량의 검찰 신문을 끝으로 1차 공판이 마무리됐다. 홍걸씨는 들어올 때와 똑같이 홀린 듯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방청석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어차피 방청석에 그를 지켜봐줄 가족은 없었다. 청와대 법률담당 행정관으로 파견된 강선희(姜仙姬) 변호사와 공무원 서너 명만이 뒤쪽에 앉아 재판 내용을 기록하고 있었다.  


◇ 수감생활

2차 공판이 다가올 때쯤 법조계 안팎에서는 그의 구치소 생활이 화제에 올랐다. 대통령 아들 형제가 한 달 간격으로 함께 구속된 사상 초유의 ‘비극’을 놓고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더욱이 홍걸씨는 형 홍업(弘業)씨와 같은 층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 홍걸씨가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13동 3층 제10실, 홍업씨가 같은 층 14실.

형제가 같은 층에서 수감생활

보통 가족은 같은 구치소나 같은 층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구치소 방침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아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넓은 독방을 쓰도록 배려하다 보니 불과 4칸 떨어진 방에서 한지붕 생활을 하게 된 것. 구치소측은 휴식시간이나 운동시간에 형제가 마주치지 않도록 임시 칸막이를 설치했지만 눈길을 마주칠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 상황이었다.

서초동 주변에서는 두 형제가 사동 밖에서 한 차례 조우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두 사람이 말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형제의 눈빛이 처연했다는 식의 감상적 평가도 덧붙여졌다. 이 즈음 조석현 변호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홍걸씨를 면회했다. 조변호사는 “접견 때문에 다른 사건에 신경 쓸 틈이 없다”며 홍걸씨를 만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특별한 재판 전략을 짜거나 법률적인 부분을 논의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냥 자꾸 와 달라고 한다는 것. 어떤 날은 다른 사건 때문에 도저히 자리를 비울 상황이 아닌데도 홍걸씨가 “꼭 좀 와 달라”고 호소해 조변호사가 결국 구치소로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이런 때는 구치소 생활이나 바깥 사회의 분위기 등에 대해 가볍고 조용한 대화만이 오갔다.

면회 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2.17평 크기의 독방에서 홍걸씨는 외로움과 막막함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대통령 내외 등 가족은 면회를 오기 어려운 처지인 데다가 조변호사가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며 철저하게 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홍걸씨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구치소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외부 인사로는 유일하게 홍걸씨를 접촉해온 조변호사에 따르면 그는 운동과 식사도 규칙적으로 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완당평전과 목민심서 등을 읽으며 지냈다. 완당평전은 과거 아버지가 언급했던 책인데 조변호사에게 구입을 부탁했다고 한다. 조변호사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지혜롭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 하며 반성의 빛을 보였다. 조변호사는 “대견하다”는 말로 홍걸씨 상태를 표현했다.  


◇ 두 번째 공판


7월19일 오후2시 311호 법정. 여느 때와 마찬가지 절차가 진행됐다. 방청객 기립, 재판부 착석, 피고인 호명, 신원 확인…. 그저 느낌이었을까. 두 번째로 법정에 나온 홍걸씨는 훨씬 안정돼 보였다.

곧이어 이은경(李恩庚) 변호사가 일어섰다. 그는 조석현 변호사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1차 공판 직전에 추가로 선임된 변호사. 이변호사가 두꺼운 변론 서류를 한 손에 들고 홍걸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유달리 카랑카랑하고 톤이 굵은 이변호사의 목소리가 법정을 울리기 시작했다.

“피고인은 어렸을 때 비교적 느긋하고 낙천적인 성격이었죠?”

“네.”

“그러나 초등학교 재학중이던 1971년 아버지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한 뒤 72년 유신 선포, 76년 3·1 구국선언 등으로 아버지가 가택연금 당하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기 시작했죠?”

“…네.”

“군인들이 무장한 채 피고인의 집에 구둣발로 난입해 아버지를 연행해 가기도 했고 형들이 중앙정보부에서 죽을 고생을 할 때 어머니와 일하는 아주머니와 함께 10개월 가까이 거의 연금상태에서 생활하기도 했죠?”

“네.”

“피고인은 이 시절 사람을 믿어서도 안 되고 말을 많이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때문에 친구를 잘 사귀지도 못했으며 조금 친해졌다 싶어도 곧 경계심을 갖고 한 걸음 거리를 두게 됐죠?”

“네.”

“1980년 5·18 당시 아버지가 사형선고를 받는 참담한 상황을 겪으면서 왜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게 됐죠?”

“네.”

“피고인은 예민한 사춘기 시절 이렇게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을 겪으면서 점차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으로 변해갔죠?”

“네.”

“아버지께 도움될 수 없다는 극도의 무력감과 좌절감, 대인기피증과 불신감, 스스로 소극적 부정적 항상 고독하다는 느낌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을 무척 부러워하는 정서가 생겼죠?”

“…네.”

홍걸씨는 자신의 심경과 성장 과정 등을 공개된 법정에서 털어놓고 있었다. 비록 자신의 입으로 직접 진술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고백’이었다.

변호사가 재판 전략의 일환으로 유도해낸 이야기라 할지라도 구체적인 내용은 홍걸씨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허름하고 퀴퀴한 구치소 접견실에서 홍걸씨가 변호사를 상대로 자분자분 어린 시절을 토해내는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물론 재판을 유리하게 몰고 가기 위해 피고인의 불우한 성장 환경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변론 전략. 부풀려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언론 노출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극도로 꺼려온 홍걸씨가 자신의 부끄러운 약점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은 의외였다.

최규선에 대한 호감이 비극의 씨앗

변론 소재는 어느덧 최규선씨와의 관계로 넘어갔다.

“피고인은 최규선씨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과는 달리 발이 넓고 추진력이 뛰어난 최씨의 성격을 의아해 했지만, 피고인이 갖지 못한 점을 보완해주는 후원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죠?”

“네.”

“피고인은 1998년 최규선씨가 평소 상상하기 어려웠던 인기 팝스타 마이클 잭슨과의 만남을 실제로 주선하자 그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갖게 됐죠?”

“네.”

변론내용에 따르면 홍걸씨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나 마이클 잭슨과의 친분관계를 과시하는 최씨의 능력을 믿었다는 것. 반신반의하던 홍걸씨의 신뢰를 얻은 최씨는 1999년 11월 “나이도 30대 후반인데 이제 기반을 잡자”며 동업을 제의한다. 아버지와 형들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홍걸씨는 그 사업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사업에 성공하면 부모님과 사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것. 최규선씨와 함께 타이거풀스 송재빈 대표, 대원SCN 박도문 회장, 성전건설 손병문 회장 등을 만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선수재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최씨 부탁으로 사업가들을 만나는 자리에 동석했을 뿐 사업 청탁에 관여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최씨에게서 받은 돈이 그들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도 몰랐다는 것. 타이거풀스 주식도 최씨가 “해외투자를 위해 싼 값에 구입했으니 동서인 황인돈 계좌에 보관하자”고 하기에 동의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변론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변호인단은 속사포처럼 쏟아붓던 질문 속도를 늦췄다.

“피고인은 거창한 포부를 가졌지만 독자적인 판단이 결국은 아버지께 누를 끼치는 시발점이 된 것이죠?”

“네.”

“손에 닿을 수 없는 신기루를 좇았다는 허망함과 자괴감, 안타까움만 남지만 모든 책임을 감수할 테니 40대 아들의 잘못을 고령의 부모님께 돌리지 말고 본인에게만 물어주기를 바라죠?”

“…네.”

“재판장님, 이상입니다. 오늘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 반전

법정에서 진실을 100% 이야기하는 피고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피고인들의 주장은 몇 %나 믿을 수 있을까.

판사들은 보통 법정을 ‘거짓말 경연장’이라고 말한다. 자기방어의 기회가 보장돼 있는 피고인은 물론이거니와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엄숙히 선서한 증인들조차 조그만 이해관계에 따라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위증죄 처벌조항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법정의 현실.

홍걸씨 주장대로라면 최규선씨는 혼자서 이 모든 일을 계획했을까. 정말 상처받은 대통령 아들의 약점을 이용해 거액의 검은 돈을 받아 챙긴 것일까. 홍걸씨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

우선 홍걸씨의 성장기와 성격에 대한 변호사의 설명은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도 1980년 옥중 서신에서 ‘어린 시절과 사춘기의 너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너에게 본의 아닌 못할 일을 한 것 같아 죄책감을 느껴왔다’고 적고 있다. ‘홍걸이 처지는 눈물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홍걸이가 겪은 시련은 특별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때 홍걸씨의 ‘측근’이었던 최규선씨는 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음은 검사 신문에 대한 최씨의 답변.

“김홍걸씨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가요, 아니면 외향적이고 적극적이던가요?”

“관심 분야에 대해서는 적극적인데 말수가 적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이야기를 활발하게 하지 않습니다.”

“김홍걸씨가 무언가를 알고 사업을 진행하며 사람들과 관계도 매끄럽게 끌어나가던가요, 아니면 세상물정을 모르고 타인과 대화를 피하던가요?”

“사교력이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자신이 관심을 가졌거나 연구해온 분야에 대해서는 아주 박식했고 그 이야기를 할 때는 흥이 나서 이야기한 기억이 납니다.”

“홍걸에게 준 10억원은 대가성”

최규선씨의 진술은 홍걸씨에게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최씨는 8월31일 열린 3차 공판에서 홍걸씨를 감싸고 나섰다. “홍걸씨에게 준 돈은 사업 투자금이나 개인적 차원의 용돈이어서 대가성은 없었다”고 진술한 것.

최씨는 홍걸씨 변호인단의 반대신문 과정에 “홍걸씨가 벤처투자회사 설립을 준비하느라 학업을 중단했고 집안의 반대로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인간적인 책임감에서 용돈을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타이거풀스의 복표사업자 선정 결과가 홍걸씨 덕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반전된다. 4차 공판이 진행된 8월31일. 311호 법정에는 이전 공판 때와 달리 양복 차림의 50대 남성이 그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남자 몇 명과 방청석에 있었다. 이들은 진술 내용을 진지하게 들으면서 때로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의논하곤 했다. 기자가 우연히 옆에 앉았다.

최규선씨를 상대로 한 검사의 추가 신문이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최씨는 “내가 대원SCN에서 받은 돈은 정당한 사업 대가로 받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때였다. 옆자리의 50대 남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함께 온 사람들에게 어깨를 으쓱대 보였다.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증인 박도문씨 앞으로 나오세요.”. 몇 분 뒤 재판부의 호명에 일어선 것은 그였다. 그가 바로 홍걸씨 등에게 돈을 건넨 대원SCN 박도문 회장이었다.

박회장의 증언 취지는 “각종 사업과 관련된 청탁을 홍걸씨에게 직접 했고 그 대가로 주식지분 양도 및 현금 제공 등을 약속했다”는 것. 1시간 가량 계속된 증인신문을 통해 나온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최규선씨를 통해 홍걸씨에게 조폐공사와 합작법인 설립 건, 경남 창원 아파트 부지의 용도변경 등과 관련된 청탁을 했다. 이후 최씨를 통해 이 내용이 홍걸씨에게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했다. 2000년 11월 홍걸씨를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는 이를 직접 언급했다. 당시 ‘저번에 부탁드린 일을 빨리 추진해주면 합작법인 주식의 10%를 주고 용도변경 대가로 현금 10억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더니 홍걸씨가 ‘잘 알았다’고 답변했다.”

박회장의 진술은 지금까지 “박회장과 덕담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만 나눴다”며 청탁 대가를 부인해온 홍걸씨 주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검찰이 들이댄 홍걸씨의 메모도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물증이었다. 홍걸씨가 2000년 작성한 메모에는 ‘대원 박회장 주식 10% ->대원SCN 주식인가, 또 새로 만드는 회사의 주식인가?’라고 적혀 있었다.

홍걸씨는 이에 대해 “최규선씨와의 통화 도중 사업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다시 설명해 달라는 뜻으로 적어보낸 것일 뿐 지분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진술했지만 석연치 않았다.

이후의 공방은 대가성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변호인단은 홍걸씨가 사업 청탁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적은 없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증인들을 상대로는 청탁이 명시적이었는지, 홍걸씨에게서 직접 확답을 받았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유죄 인정하지만 고통 겪었다”

재판은 길어지고 있었다. 내용이 다른 증언들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3명의 피고인이 모두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 검사와 변호인단의 추가 신문이 탁구공처럼 오갔다. 각각 다른 진술과 수백장의 변론기록에 묻혀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희미해지는 상황.

검사측이 증인들을 상대로 유죄를 뒷받침하는 취지의 진술을 이끌어내면 즉각 변호인단이 반대신문을 진행했다. 그럴 때마다 각각 양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이 조금씩 흔들렸다. 사람의 기억은 100% 정확성을 입증하기가 어려운 법. “그때 정말 그런 이야기를 들었느냐” “정확히 그 시점이었느냐” 등을 따져들면 증인들은 대부분 말꼬리를 흐린다. 시점이 조금만 달라져도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려버릴 수 있는 상황에 수백가지 답변에 모두 확신을 갖기는 쉽지 않은 탓이다.  

◇ 결심과 선고

10월15일 오후2시. 마침내 재판부가 결심을 선언했다.

검찰측이 먼저 논고문을 읽어내려갔다.

“김홍걸씨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이권에 개입, 수십억원의 금품을 받고도 반성하기는커녕 사리에 맞지 않는 변명으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법정에 세워 비통한 심정이지만, 비온 뒤 땅이 굳듯이 피고인을 엄히 단죄해 법의 권위를 세우고 이런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다음으로는 변호인단의 최후 변론.

“피고인은 사회 물정에 대한 무지, 그리고 내성적이고 경계심 많은 성격 탓에 건전하고도 다양한 사람들과 친분관계를 가지지 못한 채 최규선에 대하여만 편향적인 친분관계를 맺었던 것입니다. 뒤늦게나마 문제의 소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이미 때는 너무도 늦은 시기였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홍걸씨의 최후 진술.

“먼저 부모님과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국내 인맥을 넓히고 투자회사 파트너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오늘의 곤경에 처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중단했던 학업을 계속해 연구활동으로 사회에 봉사하고 싶습니다.”

이제 법원이 판결을 선고할 차례. 1심 재판부는 결심 후 20여 일간의 기록 검토 끝에 홍걸씨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성전건설 손병문 회장에게서 기무사 이전공사 수주 청탁과 함께 1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만 “증거가 없다”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판단한 최규선씨에는 징역 2년6월의 실형과 추징금 4억5610만원을 선고했다.

홍걸씨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글의 첫 부분에 밝힌 것 외에 형인 홍업씨가 비슷한 시기에 중형을 선고받은 점, 부친의 명예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겨 고통을 겪게 한 정황 등을 언급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홍걸씨에 대한 따끔한 질책도 잊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몸가짐을 조심하거나 처신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어두운 성장환경이 사람을 바꿔놓는 것은 때로 불가항력이다. 뒤늦게나마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주변인물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겹쳐 검은 돈에 손을 댄 것이라는 동정론이 나올 만도 하다. 크게 보면 김대통령의 과거 민주화 운동 과정부터 시작된 역사의 비극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권력형 비리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과거에 매이지 않도록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연약함 자체가 그에게는 죄 아니었을까. 씁쓸함을 오래 남기는 이 사건을 놓고 독자들은 어떤 판결을 내리겠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