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검사님께"

2010.02.16 13:32

강금실 조회 수:13964

"이 글을 읽는 검사님께"

   안녕하셨어요. 법무부에 있는 강금실 입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장관'으로서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법무부에 온지 이제 넉달, 100일이 좀 넘었지요. 그냥 편지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께 그냥 마음의 편지가 쓰고 싶어졌어요. '타인에게 말걸기', 이것은 소설의 제목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말걸기'를 하고 싶어졌나 봅니다. 말을 건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상대의 마음으로 옮겨가고자 하는, 사람이 사람과 함께 숨쉬고, 살기를 원하는 첫 번째 변화 같아요.

  저는 무엇보다도 제가 검사인 여러분께 이렇게 마음을 옮기고 싶게 만들어준 정서의 변화를 가져다준 여러분에게 깊이 고마움을 느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던 체험이고 변화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가 법무부에 와서 정서적으로 여러분을 사랑하고 믿게 만들어준 어떤 변화들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제가 오기 직전, 온 직후의 기사를 우연히 보았어요. 그 때 '검찰개혁'과 관련하여 제가 하였던 이야기들을 보았어요. 그리고 그 후에도 여러 지면을 통하여 이 이야기 저 이야기가 나왔지요. 그 내용에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저의 기본 생각이나 철학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법무부에 와서 많은 검사님들과 생활하고,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안에서 깊이 살속에서 체험하듯이 더 많은 문제들의 근원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점 같습니다.

  '마음의 행로'라는 말도 있지요. 이것은 영화제목인데요, 제 마음의 행로를 구체적으로 설명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처음 시작한 또 다른 삶의 전장에서의 살아 있음이 제 생애를 살면서 느껴 가는 과정일 뿐이지요. '느낌'의 생애라고 할 수 있겠어요. 4월 어느날엔가, 법무부에서 일하시는 검사들과 점심을 먹다가 가슴속에 그런 느낌이 번졌어요. 내가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구나. 이 사람들이 나였으면 좋겠다 하는 소망 같은 것. 그리고 나로서는 행복하게도, 그런 마음의 행로가 계속되어 왔어요. 도대체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 속의 검사와는 너무 다른, 철저히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법률가의 세계관을 유지하는 검사님이 있었어요.

  그것은 헌법과 법률을 실행하는 준사법기관으로서의 검사의 출발점이겠지요. 지금 현실의 검찰조직에 닫힌 시각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는 검사였어요. 아마도 내 고정관념 속의 검사는 검찰이라는 권력기관 속에서 편향된 권력으로 부풀어 오른 이미지였던가 봅니다.

  또 '눈사람'도 만났어요. 이것은 제가 붙인 별명인데, 그냥 눈사람의 이미지입니다. 아주 깨끗하고 아름답고, 햇빛 속에서 순식간에 제 몸을 흔적 없이 다 녹여낼 수 있는, 자기를 비워버린 순정함 같은 것. 너무 많은 눈사람들이 검찰이 이 어려운 시기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서 영혼을 다치지 않고 살고 있었어요. 그냥 자유인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주 겸허히 묵묵히 살고 있었어요.

  저는 계속하여 검사의 정체성에 대하여 생각하여 왔습니다. 제가 안에 들어와서 같이 사는 사람으로 부딪치고 느끼면서요. 아직 온전한 생각에 이르지는 아니하였으나, 저는 검사가 삶의 한 극정에 이른 '순결성'을 지닌 직업인이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순결성'이라는 화두에 대하여 계속 반복하여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라와 민족이라는 말로, 혹은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로, 공익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직업의 본직에서 자신을, 사상을 뛰어넘은 자리에 이르러 자기가 베어지고 지극히 점제된 단순한 정점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순결함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겠지요. 제가 어느 글에선가도 인용하였던, 무척 좋아하는 김수영의 시구절이 있습니다. -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 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으리, 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 같이, 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 적에게나 벗에게나, 땅에게나, 그리고 모든 것에서부터, 나를 감추리' - 이 시를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와서 보면, 저는 삶의 진정성은 전사로서의 삶이고, 전사의 영혼이 순결함을 표상 한다는 믿음에 이른 것 같습니다. 요즘은 그래서 '전사'와 '투사'에 대하여서도 생각합니다. 투사는 무언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지요. 그러나 전사는 자기 삶을 이미 죽음 속에 던지고 살아남음의 미련이 없는 지점까지 가서 삶 그 자체를 대면하고 싸웁니다. 저는 '검사'라는 직업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전사로서의 삶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살아 있음의 안온함과 평화를 원하지만, 삶의 전장은 그것을 방해하는 무엇들과 그침 없이 다투고 다투면서 궁극에는 , 결국은 자기 자신만의, 세상의 방해하는 무엇들의 힘 속에 투항하고자 하는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전사의 영혼을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사는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삶을 직면하기에 스스로 겸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생애가 만들어낸 가장 순결한 상태가 아닐까. 말이 너무 번졌는가요. 그런 생각 속에서 저는 검사라는 직업은 그 순결성에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사회적 실존형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래서 요즘 순결성의 회복에 대하여 많이 생각해요. 순결함이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온 역사에 대해서도 그 원인들에 대해서도 회복이라는 말을 드리는 것은 지금의 검찰 속에 그 순결함을 다치게 하거나, 오염시킨 문화들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여러분의 순결성을 지켜주기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그릇됨들과 내가 다투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제 이야기가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면, 같이 합심하여 다투기를 희망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린 것은 지금까지 제가 하여온 생각들의 일면을 전하는 데 그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동의하고 지키기를 원하는, 되찾기를 원하는 어떤 정신의 바탕 위에서 대화가, 모든 논의가 진행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주 밑바닥의 무엇, 근원,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일상성 속에서도, 무언가를 뛰어넘어 있는 어떤 상태,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숭고한 지리, 우리에게 희망하는 무엇, 그것을 깊이 멀리, 넓게 더듬어나가면서 길을 찾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길, 나그네, 그런 말들 속에는 무언가 비움의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요. 내 앞의 길은 언제나 끝이 나겠지만, 그 길은 영원히 계속 될 것인지.

  오늘 제 이야기가 제 느낌대로 흐르다보니, 너무 튀고, 당혹스럽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요즘 제게 행복감을 주는 유일한 기쁨 같은 것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 안에 대부분 여러분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사랑하고 믿으면서 사는 일만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 위에서 기쁜 큰 위안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게 사람은 어디에서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제가 받아들인 삶의 많은 부분을 메워주신 데 대하여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하면서.

                                       2003. 6. 30 밤

                                                    강금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