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과 취임
2010.02.16 14:06
2006. 7. 10.자로 5분의 대법관(강신욱, 손지열, 이강국, 박재윤, 이규홍)이 퇴임하시고, 다음 날 5분의 새 대법관(이홍훈, 박일환, 김능환, 전수안, 안대희)이 취임하셨다.
떠나시는 분들이 30여 년에 걸친 공직생활을 마감하면서 남기신 말씀이나, 새로 취임하시는 분들이 밝히시는 포부들 모두가 휴배들이 귀를 기울일 만한 것이다.
댓글 7
-
강신욱
2010.02.16 14:07
-
손지열
2010.02.16 14:08
퇴임사
법원 가족 여러분,
32년 6개월간의 법관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여러분의 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한 그 세월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으로부터 갚을 길이 없는, 많은 은덕을 입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 어느 모임에서 저의 소회를 짧은 글로 적어 말씀드리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글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에 대한 인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대법원장님과 새로 구성된 대법관들의 지도 아래 우리 사법부를 더욱 발전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의 신뢰와 존경과 사랑을 한껏 받는 법원으로 가꾸어 주십시오.
여러분 모두와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7월 11일
손 지 열 올림
********************
저는 어제로 32년 6개월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퇴임하였습니다. 27세 약관의 나이로 법관에 임명되어 평생을 몸 바쳐 온 법원을 떠나려 하니 감회가 무량합니다. 그 동안 여러 법원에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다루면서 큰 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또한 여러분의 협조와 성원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송사를 재판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저의 경우 특히 형사재판이 어려웠습니다. 젊은 시절 형사단독 재판을 할 때에는 쉽게 쉽게 사건을 잘 처리했는데, 나이 오십이 되어 고등법원 재판장을 할 때에는 정말로 법정에 드나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기록에 적힌 사건이 아니라 피고인들의 인생 자체가 심판의 대상으로 보이고 방청석에서 목을 빼고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법이라는 이름의 칼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대법관으로 6년간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요 은혜였습니다. 좀더 성실하게 재판에 임하고 좀더 좋은 판결을 남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궁극적 정의를 논의하고 선언하는 기회를 가졌던 것은 저에게는 과분한 영광이었습니다.
법관 생활을 되돌아보면서 못내 아쉬운 일이 있습니다. 좀더 당사자들의 말을 많이 듣고 친절하게 대하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앞에 서 있는 이들을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어려움을 겪는 이웃으로 보고 사랑으로 그들의 고통을 나눈다는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더 겸손하게 섬겼어야 한다는 자책이 법복을 벗는 홀가분함의 한 구석을 누르고 있습니다.
이제 법관의 자리를 물러나서 또 하나의 다른 세상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제 길을 어떻게 인도하여 주실지 생각하면 마음이 설렙니다. 마음도 몸도 넉넉해 진만큼 좀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고 그동안 이웃으로부터 진 빚을 갚아 나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아굴이 가르치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기도를 드리며 저의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언 30장 8절). -
이홍훈
2010.02.16 14:08
취임사
존경하는 이용훈 대법원장님, 대법관님,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법관과 직원 여러분!
오늘 저는 모든 분들의 도움과 성원에 힘입어 대법관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과분한 영광입니다만, 제 자신의 명예로움보다는 대법관으로서의 막중한 역사적 책임과 사명을 생각할 때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대법관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이 순간, 저는 대법관의 소명을 다하기 위한 저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가슴속 깊이 새겨 봅니다.
다산 선생이 재판의 요체에 관하여 일찍이 갈파하신 ‘성의’(誠意)를 가지고 사건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함은 물론이며, 불편부당하고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공정하게 법을 적용하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겠습니다.
30년 가까이 법관생활을 하면서 지금까지 지켜온 바와 같이 깊은 사색과 고뇌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도록 마음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겠으며,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격무에 시달리는 법관과 직원을 보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국민의 소리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며, 국민을 섬기고자 노력하여 우리 헌법상 최고의 이념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대한 배려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겠습니다.
사랑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현대사회는 모든 변화와 다양한 욕구 및 분쟁을 법이라는 제도의 틀 속에서 수용하여 해결되어야 한다는 법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합리적 이성에 의한 법을 통하여, 조화와 균형 및 인류의 공존과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동화적 통합과 시대정신을 구체적 판결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다만, 제 능력이 부족하여 이러한 막중한 사명을 다할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이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러나 저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모든 정성과 열의를 다하여 저에게 부여된 소명과 책무를 성실히 수행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바쁘신 가운데 귀한 시간을 할애하여 취임식에 참석해 주신 한 분 한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6. 7. 11.
대법관 이 홍 훈 -
박일환
2010.02.16 14:09
취임사
존경하는 이용훈 대법원장님, 선배 대법관 및 선후배 법관과 직원 여러분!
오늘 제가 대법관으로 취임함에 있어 자리를 함께하여 주셔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청문회에 이어 오늘도 제가 두 번째 순서가 되었습니다. 이미 이 대법관께서 훌륭한 취임사를 하셔서 제가 다시 새삼 새로운 말씀을 드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1978년 초임 법관으로 임관되어 남부지원에서 이 대법관의 자리를 물려 받았는데 제주지방법원 원장 자리에 이어 오늘 다시 이 연단을 물려받는 인연이 되었습니다.
제가 초임법관 시절에는 정말 법원이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특히 남부지방법원은 어려운 사건이 많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보니 그때 같이 근무하던 선배께서 여러분 대법관이 되어 여기 계십니다. 저에게 여러모로 힘이 되어 주셔서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대법관 임명과정을 겪으면서 저는 국민들이 법원에 보내준 애정과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국민들은 법원에 대하여 사회의 각종 분쟁에 대하여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되는 좋은 판결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기대를 대법원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채우기가 어렵습니다. 하급심을 통하여 다양한 의견이 표현되어야만 대법원에서도 좋은 판결을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능동적으로 노력하여야만 변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이 한가지만을 당부하는 것으로 취임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6. 7. 11.
대법관 박 일 환 -
김능환
2010.02.16 14:10
취임사
존경하는 대법원장님, 대법관님, 그리고 법관 및 직원 여러분,
먼저, 이 자리를 마려해 주신 대법원장님과 귀한 시간을 내어 참석해 주신 대법관님, 법관 및 직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대법관으로 임명된 것을 개인적으로 대단히 영예롭게 생각하며, 성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 처와 가족친지에게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저는 법률의 규정 이전에, 우리가 마땅히 추구하여야 할 일정한 질서와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대법관은, 시대정신에 깨어 있으면서, 독립하여, 무엇이 정의인지를 밝히고, 국민 각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라는 엄숙한 사명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법에 있어 대법관이 지고 있는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 심급제도와의 관계에서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새삼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과연 그 책임을 다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을지, 두려운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일찍이 중국의 법철학자 오경웅(吳經熊) 박사가, “국민은 법관이 완전무결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정직하고 공평하며 솔직하고 합리적이기만을 기대한다.” “법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대하고 진실한 정신과 문제에 정면으로 대처할 마음의 용기이다.”라고 갈파하였던 바에 힘입어, 국민이 부여한 대법관으로서의 소명을 감히 감당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소명은, 저 혼자의 힘으로는 완수할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대법원장님은 물론이려니와 여러 대법관님, 그리고 법관 및 직원 여러분의 지원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제게 필요한 도움을 아낌없이 주시리라고 기대하며 또한 믿습니다.
저는 거기에 기대어, 저의 생각과 믿음에 따라, 대법관으로서의 책무와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저의 온 힘을 다할 것을 엄숙히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6. 7. 11.
대법관 김 능 환 -
전수안
2010.02.16 14:11
취임사
존경하는 여러 선배님과 후배, 동료인 법관과 직원 여러분,
우리는 어느 대법관 개인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법원의 새로운 구성과 출발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참석해 주신 여러분 앞에서, 앞으로 6년 동안 대법관으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고, 부족하나마 그 지향하는 바를 제시할 의무가 있음을 무겁게 받아 들입니다.
저는 오늘 대법관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국민과 국가 사이의 약속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 중에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한 국가의 약속에 유념하고자 합니다.
저는 대법관으로의 부름을 받고 직전 근무지인 광주를 떠나오면서, 그 곳 5.18 묘역에 머물러 있는 137인의 풀지 못한 한이 끝내 좌절하지 않고 의미 있는 미래의 역사가 되도록, 법관으로서 소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하였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에 헌신하겠습니다. 재판이 공정할 뿐 아니라 공정한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관 또한 청렴할 뿐 아니라 국민들의 눈에 청렴하게 비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은 공직자에게 사사로운 의리나 지키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에 공감하면서, 법원 구성원인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의리가 아니라 정의임을 유념하겠습니다.
나아가 재판에 임하는 법관으로서는 불편부당하다는 신뢰가 생명이라고 생각되므로, 저 역시 저를 대법관 후보로 추천한 이른바 보수단체나 진보단체의 편파적 신뢰나 일방적 기대를 망설임 없이 털어버리고 기꺼이 배반하면서, 오직 국민들이 갈구하는 정의의 발견과 선언에만 전념하겠습니다.
그러나 한편 고독한 성에 머무르거나 공허한 정의를 선언하는 대법관이 되지도 않겠습니다.
다양한 법원 밖 비난의 목소리까지도 두려움 없이 두루 경청하여서, 높은 담을 넘어 들어오는 큰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겠습니다.
작금의 현안들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일에도 유념하겠습니다.
구두변론, 공판중심주의에 의해 형성된 사실심의 심증과 사실인정에 대하여, 기록에 편철된 서면의 검토만으로 사실심의 조처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일에 시간을 쪼개지 않으려 합니다.
대법원이 사실심 법원을 신뢰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이를 신뢰할 리 없습니다. 대법원이 사실심 법관에게 주는 신뢰는 남상소를 줄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사실심의 심리에 더욱 진지하게 임하도록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법원 내 소수자 내지는 자유주의자의 역할도 감당하고자 합니다.
대법관은 더 이상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마지막 자리입니다. 동료 대법관과 대법원장에게까지도, 법원 구성원들의 목소리와 법원 밖 정당한 목소리까지 가감 없이 전달하는 일에 용기를 내겠습니다.
저는 우리 법원 또한 지금까지와 같이 유지되고 보존되는 것보다는, 고치고 바꾸어서 더 나아질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쪽에 서 있습니다. 변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없다면 변화할 수 없으며, 모두가 그 절박함을 깨닫게 되는 때에는 이미 늦은 경우가 태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힘을 얻고 있는 하나의 견해일 뿐이며, 저는 우리 법원의 변화가 고정관념을 버리고, 관행을 깨치며, 배타적. 폐쇄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개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변화란 결국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므로, 우리가 끊임없이 각성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한, 5년 후 10년 후의 법원은 분명 오늘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꿈꾸어 봅니다.
이제 저의 개인적 소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대할 때는 오지 않던 기회가, 여러 번 스쳐 지나가기에 그냥 무심히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때에야 문득 저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조금만 더 허락해 주신다면, 남도시인 문정희님의 시 한편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써 저의 소회에 대신하고자 합니다.
나의 신 속에 신이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 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이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처음 걷기를 배운 날부터
지상과 나 사이에는 신이 있어/ 한 발자국 뒤뚱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뿐
시들은 얼마나 가벼운 신을 신었을까/ 바람이나 강물은 또 무슨 신을 신었을까
아직도 나무뿌리처럼 지혜롭고 든든하지 못한/ 나의 발이 신고 있는 신
이제 벗어도 될까, 강가에 앉아/ 저 물살같은 자유를 배울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보지만/ 삶이란 비상을 거부하는/ 가파른 계단
나 오늘 이 먼 곳에 와 비로소/ 두려운 이름 신이여!를 발음해 본다
이리도 간절히 지상을 걷고 싶은/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 <먼 길>
끝으로, 좋은 법관이 되겠다는 꿈을 함께 소중히 여겨 격려하고 희생을 감수해 준 가족들, 이 자리에 계셨더라면 누구보다 좋아하셨을 아버지께 감사 드리고, 어린 제자를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셨으나 결국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저의 수많은 은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6. 7. 11.
대법관 전 수 안 -
안대희
2010.02.16 14:12
취임사
이 자리에 참석하신 법원의 간부님, 법관 및 직원 여러분께 반가운 인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부터 저는 영광스럽게도 대법관으로서 법원가족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법부의 밖에서 있다가 새로이 여러분들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매우 기쁘기도 하지만, 막중한 책임감을 느낌과 동시에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검찰에서 쌓아 온 저의 경험과 식견을 토대로 새롭게 재판에 관한 지식을 보완한다면 신뢰받는 사법부가 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고, 또한 그 동안의 제가 가져온 사법부에 대한 존중과 애정의 자세와 마음에 비추어 여러분들과 함께 호흡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법원이 미래를 지향하는 법을 선언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최고 정책법원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사법에 대한 진정한 신뢰라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밖에서 본 사법부는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구성원 모두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상당한 수준의 신뢰를 얻고 있다고 평가됩니다만, 아직 국민의 기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법부의 존립 근거인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항상 국민을 섬기는 자세를 잃지 않고 어떻게 하면 국민과 의사소통하며 그들의 진실한 목소리와 숨결을 듣고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여러분과 함께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또한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치고자 합니다.
그리고 권력으로부터, 여론으로부터, 나아가 법원 내부로부터도 독립하여 오로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법관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구호만이 아닌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 당위에 의한 존중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신뢰를 받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합니다만) 대법관 직분이 국민이 제게 부여한 소명이라 생각하면서 이 자리에서 한 다짐들을 실천하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만) 여러분이 새로운 가족인 저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를 기대하면서 인사말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7월 11일
대법관 安 大 熙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11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2] | 범의거사 | 2010.02.16 | 17516 |
110 | 청문회를 열까요? [1] | 범의거사 | 2010.02.16 | 15437 |
» | 퇴임과 취임 [7] | 범의거사 | 2010.02.16 | 20585 |
108 | 퇴임사 [1] | 배 기 원 | 2010.02.16 | 15419 |
107 | 이용우 대법관의 퇴임사 [1] | 범의거사 | 2010.02.16 | 16606 |
106 | 제14대 대법원장 취임사 [1] | 범의거사 | 2010.02.16 | 15733 |
105 | 최종영 대법원장 퇴임사 전문 | 법의거사 | 2010.02.16 | 15624 |
104 | 반구제기(反求諸己) | 범의거사 | 2010.02.16 | 15187 |
103 | 법학전문대학원 | 범의거사 | 2010.02.16 | 16864 |
102 | 송광수 검찰총장의 퇴임사 | 범의거사 | 2010.02.16 | 15247 |
퇴 임 사
저는 오늘 6년간의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공직자로서 마지막 정열을 바쳐 일했던 정든 법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6년은 정말로 무거운 짐을 지고 험준한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무척 힘든 시간이었습니다만, 그러나 보람도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막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면서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동안 대과 없이 임무를 마칠 수 있게 이끌어 주시고 도와주신 대법원장님과 동료 대법관님들,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을 마다하지 않으신 연구관들과 직원 여러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 지난 30여년간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고, 그에 힘입어 우리 사법부도 때로는 국민들의 따가운 질책을 받기도 하였으나 우리 모두의 부단한 노력으로 공정한 재판을 위한 토대인 사법권위 독립을 어느정도 성취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신뢰는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사회 일각에서 일부 집단이나 개인들이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하려는 언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 등의 말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사법질서에 대한 불신입니다. 대부분의 사법부 구성원들은 이런 말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이든 아니든 국민들이 아직도 이런 말들을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법조인 모두가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할 이 시대의 과제입니다.
또 한편 우려스러운 것은, 근간 우리사회에 심화되고 있는 여러 분야에서의 분열과 대립 양상이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또 있어야 마땅한 다양한 의견의 표출을 넘어 자기의 의견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하고, 증오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법분야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법의 잣대로 재단하기 보다는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조정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들 조차도 사법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가진 일부 집단이나 개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고된 판결에 대하여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여 보수니 진보니, 걸림돌이니 디딤돌이니 하면서 승복하지 않으려 하고, 나아가 건전한 비판의 정도를 넘는 원색적이고 과격한 언동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한 단계 더 높은 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만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하는 우려스러운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이에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의연한 자세로 묵묵히 법과 양심에 따라 이 나라의 법질서를 확립하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주어야 하겠습니다.
민주사회에서는 소수의 의견도 끝까지 존중되어야 하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생각이 시끄러운 소수의 강경한 목소리에 묻혀서는 진정한 사회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보수의 편도 아니고, 진보의 편도 아닙니다. 오로지 법과 정의와 양심의 편일뿐입니다.
돌이켜보니 6년이란 참으로 어렵고 긴 세월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사법부 발전에 디딤돌이될 작은 돌 하나 더 놓지 못하고 떠나는것 같아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임무를 완수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고 여러분 곁을 떠나려 합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