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2010.02.16 14:14
하늘은 푸르고 말은 살찌는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백년해로를 약속하게 되는 신랑, 신부의 결혼을 먼저 진심으로 축하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 주기 위하여 월요일 저녁의 바쁜 시간에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권국현군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 공군법무관을 거쳐 2002년부터 국내 제일의 법률회사인 “김앤장”에서 부동산 분야의 전문변호사로서 활약하고 있는 유능한 법조인이고, 또 하나의 주인공인 신부 주리양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한 후 삼성그룹 영상사업단을 거쳐 현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의 디지털솔루션센터 기획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재원입니다.
신랑 권국현군과 신부 주리양이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15년 전인 1991년에 두 사람이 대학교에 처음 입학한 후, “뽀뽀회”라는 야릇한 이름을 가진 모임의 신입생 환영회 석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두 사람 다 서로를 소 닭 보듯 하면서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아마도 그 나이의 젊은이들이 다 그렇듯, 두 사람 모두 제 잘난 맛에 최상의 짝을 찾는답시고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을 것입니다.
신이 점지해 주신 보물덩어리인 자기의 짝이 바로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헤매길 무려 15년, 두 사람은 금년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눈을 크게 뜨고 상대방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인 2006년 3월 27일, 바로 신부 주리양의 생일인 이 날, 신랑 후배들이 바람을 잡아 만들어진 술자리가 계기가 되어, 환기미술관과 강릉의 바닷가를 전전한 끝에 오늘의 이 자리로 이어진 것입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여름 내내 천둥이 치고, 가을 밤 무서리가 내려야 하듯, 두 사람은 오랜 시행착오의 뒤안길을 지나 불현듯 제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부모 자식의 사이가 되려면 천 겁의 연을 쌓아야 하는데, 남녀가 부부가 되려면 그보다 두 배인 2천 겁의 연을 쌓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겁의 세월을 두고 쌓은 인연의 끈을 뒤늦게 발견한 두 청춘남녀에게는 아깝게도 데이트할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전문영역에서 활동하느라 바빴기 때문입니다.
신랑 권국현군이 밤 11시가 넘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광화문에 있는 사무실을 나설 때 과일을 깎아 들고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부 주리양의 모습, 자리를 옮긴 선릉역 주변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가운데 놓고 신부 주리양의 미소띤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신랑 권국현군의 모습,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시계바늘은 자정을 넘어 사정없이 흐르건만 꼭 잡은 두 사람의 손은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할 수 없이 헤어져야 할 때가 되면, 아침에 먹으라며 우유와 과일을 신부 주리양의 손에 쥐어 주던 신랑 권국현군의 자상함이야말로 신부 주리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나날이 익어갔고, 마침내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주례를 맡게 된 것은 신랑 권국현군이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동안 지도교수로서 가르친 인연에서 비롯됩니다.
지난달에 두 사람이 저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왔을 때, 제가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서로의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신랑 권국현군은 신부가 신랑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는 것이 너무 고맙고, 그래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거장의 명화가 아닌 동네 꼬마의 서투른 그림 솜씨에서도 아이의 순진한 마음씨를 읽을 줄 아는 신부의 해맑은 눈을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신부 주리양은 겁 많고 용기없는 자기에게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랑하고 싶은 용기를 준 신랑에게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하루 바쁜 삶 속에서도 넉넉함과 여유를 잃지 않고, 크나 큰 배려로 부족한 자기를 감싸 주는 따뜻한 마음이 너무나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사법연수원에서 2년 동안 신랑 권국현군을 지도하고,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사제간의 정을 유지하면서 보고 느낀 신랑의 모습은 "따뜻한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 한 번 안 내고 오히려 상대방을 감싸고 배려하는 신랑 권국현군을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가슴이 따뜻한 사람도 있구나”하고 감탄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랑 권국현군에게서 그런 따뜻한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에 감명을 받아 34년간 꽁꽁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연 신부 주리양이야말로 실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지혜로움을 갖추었기에 신부 주리양의 미모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따뜻한 남자의 표상인 신랑 권국현군과 지혜로운 여자의 표상인 신부 주리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이 정해 주신 인연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객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두 사람이야말로 천생연분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박수를 크게 쳐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신랑 권국현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거듭 당부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법조문을 분석하듯,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듯,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기는 삶을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그럽게 져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싯귀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따뜻함으로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두 사람 모두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십시오.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못 미쳐도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연애기간이 길지 않아 이제까지는 여행을 함께 할 기회가 적었겠지만, 결혼 후에는 여행을 많이 하십시오. 두 사람만의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내준 이 숙제를 잘 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이제 주례사를 마치면서 다소 주제넘기는 하지만, 양가의 부모님께도 한 말씀 올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 모두 새로 맞이하는 식구에 대하여 은 대단히 만족해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 사랑스런 사위를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이므로,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십시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6. 10. 16.
주례 민 일 영
댓글 2
-
나그네
2010.02.16 14:15
-
범의거사
2010.02.16 14:16
웬 아저씨?
(조웅 판사 주례사)
유난히도 덥거나 아니면 비가 많이 오던 여름이 가고, 하늘이 푸르고 말은 살찌는 결실의 계절이 찾아 왔습니다. 마침 밖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고,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두 사람의 고귀한 사랑이 반지의 약속으로 맺어지는 오늘, 미더운 반려로서의 아름다운 시작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 주기 위하여, 주말의 바쁜 시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걸음을 하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조웅군은, 한양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 해군법무관을 거쳐 2003년 4월에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되어, 현재는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근무하고 있는 유능한 법조인이고, 또 하나의 주인공인 신부 최은영양은 한양대학교 체육대학에서 발레를 전공한 후, 현재 압구정동에서 더 발레아카데미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재원입니다.
신랑 조웅군과 신부 최은영양이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5년 전인 2002년 1월이었습니다. 나이 차이가 7년이나 되다 보니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신랑 조웅군에게 있어 신부 최은영양은 “귀엽고 어린 동생”으로 그야말로 첫눈에 반할 만했지만, 정작 신부 최은영양에게 있어 신랑 조웅군은 “아니 웬 아저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약속을 안 했는데도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후배 사이임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일주일에 4-5회는 귀신같이 자기 앞에 나타나는 아저씨의 공세에, 그 아저씨가 어느 새 오빠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듯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그 아저씨의 되풀이되는 말이 신부 최은영양의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불러일으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나 할까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무르익어 갈 무렵인 2003년 4월 신랑 조웅군이 대구지방법원 판사로 발령 나는 바람에, 두 사람은 그만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위기이자 기회의 순간이 도래한 것입니다. 자주 볼 수 없기에 안 보면 멀어진다는 말처럼 사랑이 식어버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떨어져 있기에 느끼는 애틋함 때문에 사랑이 더욱 돈독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초임판사인 신랑 조웅군은 주말이면 신부 최은영양을 만나러 서울에 가기 위하여 주중에 매일 밤 야근을 해야 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신부 최은영양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통에 매달렸습니다. 보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신랑 조웅군의 떨리는 목소리에 신부 최은영양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일이 많아 신랑 조웅군이 서울에 올라오지 못한 2004년 12월의 삭풍한설이 몰아치는 어느 주말, 오빠가 밥을 제대로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새벽부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직접 만든 도시락을 싸들고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싣는 신부 최은영양의 모습, 두 사람에게 서울과 대구는 이제 더 이상 먼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어느 시인이 노래하였듯이, 이제껏 외로 달려오던 두 물줄기가 마침내 하나로 합쳐져 흘러가니, 두 사람이 서로 맞잡은 손 안에서 향기 높은 꽃 한 송이를 피워내고, 기쁨의 노래를 드높이 부르게 된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주례를 맡게 된 것은, 신랑 조웅군이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동안 지도교수로서 가르친 인연에서 비롯됩니다. 두 사람이 저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왔을 때, 제가 두 사람에게 서로의 어떤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냐고 물었습니다.
신랑 조웅군은 신부가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신부 최은영양은 신랑이 마치 도덕선생님 같아 존경스럽고 만나면 마음이 편해서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신랑이야말로 부모님을 제외하면 이 세상에서 자기를 가장 헌신적으로 사랑해 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사법연수원에서 신랑 조웅군을 지도하면서 보고 느낀 신랑의 모습은 “도덕선생님” 그 자체였습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매사에 옳은 일을 찾아 정도를 걸으려고 노력하는 신랑 조웅군의 모습은, 장차 신랑이 우리 사법부의 커다란 기둥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랑 조웅군에게서 그런 도덕군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에 감명을 받아 마음의 문을 연 신부 최은영양이야말로 실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지혜로움을 갖추었기에 신부의 미모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정신이 올바른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올곧은 남자의 표상인 신랑 조웅군과 지혜로운 여자의 표상인 신부 최은영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객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두 사람이야말로 천생연분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박수를 크게 쳐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신랑 조웅군을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거듭 당부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법조문을 분석하듯, 발레자세를 교정하듯, 따지고 분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기는 삶을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그럽게 져 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싯귀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따뜻함으로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두 사람 모두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십시오.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못 미쳐도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비록 두 사람의 연애기간이 길었다 하더라도 이제까지는 여행을 함께 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이지만, 결혼 후에는 여행을 많이 하십시오. 두 사람만의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바빠 정 시간을 내기 어려우면 집 가까이에 있는 남산이라도 정기적으로 걸어서 올라갔다 오십시오. 두 사람에게 내준 이 숙제를 잘 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이제 주례사를 마치면서 다소 주제넘기는 하지만, 양가의 부모님께도 한 말씀 올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 모두 새로 맞이하는 식구에 대하여 은 대단히 만족해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스런 맏며느리, 사랑스런 맏사위를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이므로,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십시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 9. 1.
주례 민 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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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례사입니다.
훌륭한 주례의 명주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