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직업보다 고향이 더 좋아”
2010.02.16 14:58
“세계 최고의 직업보다 고향이 더 좋아”
■ 사의 밝힌 美 수터 대법관
“나를 내 고향 시골집으로 보내주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5040111&top20=1
대법관 지명때 싼 이삿짐 19년동안 풀지도 않고 다시 돌아갈 날만 기다려 “워싱턴은 최악의 도시”휴가때마다 고향집 찾아 “나를 내 고향 시골집으로 보내주오.” 지난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올여름에 사직하겠다”는 편지를 보낸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69·사진)은 9명의 대법원 판사 가운데 네 번째로 젊다. 그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업’으로 불리는 종신직인 미 대법관직을 임용 19년 만에 미련 없이 내던진 이유는 뭘까.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2일 미 동북부 뉴햄프셔 주 웨어 카운티에 있는 2층짜리 낡은 농가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가 11세 때부터 산, 녹슨 우체통에 ‘수터’라는 이름이 여전히 선명한, 헛간처럼 보이는 이 나무집은 수터 대법관이 워싱턴 생활 내내 자신의 마음을 담아둔 곳이다.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1990년 대법관에 지명되자 홀로 U홀(차 뒤에 매달아 끌고 가는 이삿짐 수송용 렌터카)을 끌고 뉴햄프셔를 떠났다. 그때 어릴 적 사진 등 추억이 깃든 물건을 상자에 빼곡히 담아 왔는데 여전히 짐을 풀지 않았다. “빨리 시골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약혼 경력만 있고 독신인 그는 워싱턴 시내의 고급 관사 대신 시내 남쪽의 작은 아파트를 세내 혼자 살았다. 매일 12시간 이상을 일하고 점심은 주로 요구르트와 사과를 싸와서 집무실에서 해결했다. 휴가철만 되면 뉴햄프셔로 차를 몰고 가 집 인근 산에서 하이킹을 즐겼다. 그리고 시골집에 쌓아둔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주민들은 밤마다 휘적휘적 홀로 가는 플래시 불빛을 보고 ‘마을의 자랑’인 대법관이 집에 돌아왔음을 알았다. 은행 투자에 성공해 재산이 600만∼30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재산가이지만 낡은 폴크스바겐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 다닌다. 여전히 만년필을 고집하며 e메일도, 휴대전화도, 자동응답 전화기도, TV도 없다. 외아들로 태어나 혈혈단신인 그는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 땐 친구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 가족과 식사를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언론 인터뷰나 파티를 극구 회피하는 수줍음 많은 성격이다. 그런 그에게 워싱턴 대법관 생활은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최악의 도시에서 보낸 최고의 직업’이었다. 2004년엔 아파트 앞에서 밤에 산책을 하다 강도에게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동료 대법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휴가 때 시골집에 가면 평화스러움을 느낀다. 그 휴식은 맑은 공기와 경치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온다”고 쓴 그는 언젠간 여전히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향 마을에 대한 책을 쓰겠다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곤 했다. 1990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하버드대 학부와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뉴햄프셔 주 검찰총장 등을 지낸 그를 대법관에 지명했다. 당시엔 보수파 몫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론 중도 진보에 가까운 독립적 판결을 내렸다. 1992년 여성의 낙태권 인정에 찬성했고 2000년 대선 플로리다 재검표 소송에서도 소수의견을 내 결과적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 당선에 반대하는 쪽에 섰다. 보스턴글로브 등이 꼽은 후임 대법관 후보에는 10여 명이 거론되는데 한국계로 국무부 법률고문에 내정된 고홍주(미국명 해럴드 고·54) 예일대 로스쿨 학장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이 15년 만에 대법관을 지명하는 이번 후임자 선정에선 결국 히스패닉이나 흑인 출신의 여성이 지명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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