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서로 꼭 붙들고
2010.02.16 15:02
대설이 지나고 동지가 멀지 않은 계절이건만, 아직은 큰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쾌한 주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두 주인공이 뿜어내는 사랑의 열기에 아마도 동장군이 겁을 먹고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날씨마저 축복해 주는 오늘 이 자리에서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신랑, 신부의 결혼을 먼저 진심으로 축하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 주기 위하여 연말의 바쁜 시간임에도 어려운 걸음을 하여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최종훈군은, 세명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의정부에서 의술을 펼치면서 21세기의 허준을 지향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한의사이고, 또 하나의 주인공인 신부 오서빈양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내년 초에 법관으로 임용될 예정인 재원입니다.
신랑 최종훈군과 신부 오서빈양이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3년 전인 2006년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신부 오서빈양은 사법시험 준비를 위하여 상주 도장산의 극락정사라는 절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천도제를 지내기 위하여 절에 온 사람이 바로 신랑 최종훈군이었습니다. 이 때의 서로에 대한 첫 인상을 두 사람은 “한 마리의 학”, “착하고 심성이 좋은 남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도제라는 것이 본래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행사인데, 이 날의 천도제는 반대로 고인의 영혼이 두 사람을 인연의 끈으로 맺어주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두 사람 모두 첫눈에 반하여 꽁깍지가 내려앉은 것입니다.
부모 자식의 사이가 되려면 천 겁의 연을 쌓아야 하는데, 남녀가 부부가 되려면 그보다 두 배인 이천 겁의 연을 쌓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겁의 세월을 두고 쌓은 인연의 끈을 뒤늦게 발견한 두 청춘남녀에게는 안타깝게도 데이트할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한 사람은 사법시험을 앞두고 산속의 절에서 공부를 해야 했고, 한 사람은 천리 밖 머나먼 곳에서 의술을 펼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잠도 안 자고 책과 씨름하는 신부 오서빈양, 그 오서빈양을 보기 위해 주중 내내 환자를 돌보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편단심 의정부에서 상주의 극락정사로 허위허위 달려가는 신랑 최종훈군, 두 사람한테 일요일은 말 그대로 축복의 날이었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상주도, 청주도, 대전도 가는 곳마다 전부 극락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애정의 깊이를 더해 가는데, 야속한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흐르는지,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신랑 최종훈군은 의정부로 돌아가야 했으니... 서로서로 꼭 잡은 두 사람의 손은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판소리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대목의 마지막 장면인 “둘이 서로 꼭 붙들고 떨어지지를 못 하는구나”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 밤이면 오서빈양의 베갯잇은 그리움의 눈물로 흠뻑 젖어야 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극락정사의 스님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비구니스님만 계신 절에서 머무르면서 이렇게 연애를 해도 되는 겁니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연애도 잘하는 건가요, 아니면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도 잘하는 건가요? 아무튼 신랑 최종훈군의 정성어린 외조 덕분에 신부 오서빈양은 그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마침내 두 사람은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주례를 맡게 된 것은 제가 청주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할 당시 오서빈양이 그곳에서 실무수습을 한 인연에서 비롯됩니다.
두 사람이 저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왔을 때, 제가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서로의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신랑 최종훈군은 신부가 밝고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인 것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였습니다. 신부 오서빈양은 신랑이 예의바르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밝고 순수한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따뜻한 남자의 표상인 신랑 최종훈군과 밝고 순수한 여자의 표상인 신부 오서빈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두 사람이 믿는 부처님이 정해 주신 인연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객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두 사람이야말로 천생연분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박수를 크게 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거듭 당부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혈처를 세밀하게 찾아 침을 놓듯, 법조문을 분석하듯,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기는 삶을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그럽게 져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싯귀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따뜻함으로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두 사람 모두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십시오.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못 미쳐도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연애기간에는 신부 오서빈양이 공부하느라 여행을 함께 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여행을 많이 하십시오. 두 사람만의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내준 이 숙제를 잘 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이제 주례사를 마치면서 다소 주제넘기는 하지만, 양가의 부모님께도 한 말씀 올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 사랑스런 사위를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이므로,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십시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 12. 13.
주례 민 일 영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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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거사
2011.02.0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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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거사
2011.03.16 13:33
(김승주 주례사)
지척에 놓인 인연
봄이 온 줄 알고 겨울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나오던 개구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이제는 누가 뭐래도 완연한 봄의 길목으로 접어든 3월의 화창한 주말입니다. 이처럼 좋은 시기에 이 자리에서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신랑, 신부의 결혼을 먼저 진심으로 축하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 주기 위하여 주말의 귀한 시간을 내서 어려운 걸음을 하여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김승주군은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현재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서 판사로 근무하고 있고, 신부 전혜원양은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중국어를 통역하고 있는 훌륭한 인재들입니다.
신랑 김승주군과 신부 전혜원양이 처음 만난 것은 작년 8월 2일이었습니다. 마침 그 날이 김승주군 아버님의 생신날이었습니다. 한 집안의 장남이면서도 불혹이 멀지 않은 나이가 되도록 혼자만의 삶을 즐기던 신랑 김승주군이, 뒤늦게나마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처음 마주한 미모의 중국어 통역사 아가씨, 늘씬한 키와 또렷하고 큰 눈망울을 지닌 신부 전혜원양한테 신랑 김승주군은 그만 첫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반면 12년 전 사진 속의 미소년을 상상하며 약속장소에 나갔던 전혜원양의 눈에 비친 신랑 김승주군은 “아니 이럴 수가!” 사진 속의 남자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신부 전혜원양의 그런 실망스런 기분은 마주 앉은 카페에서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내 사그라지기 시작했고, 그날 밤 한 시간 동안의 전화통화와 이틀 뒤 신랑 김승주군의 생일에 이루어진 재회, 그리고 그 후의 주말마다 계속되는 만남 속에서 서서히 상대방에 대한 신뢰로 변하고, 마침내 사랑이 샘솟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이지 김승주군과 전혜연양은 신사중학교, 구정고등학교를 3년 차이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다닌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장남과 장녀로 사는 곳마저 한 동네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서로의 짝을 바로 옆에 두고도 그 사실을 모른 채 두 사람 모두 엉뚱한 곳을 헤매고 다녔던 것입니다.
지구상의 인구가 60억 명 중 대략 반이 남자이고 반이 여자일 테니, 30억 남자 중의 한 명인 신랑 김승주군과 30억 여자 중의 한 명인 신부 전혜원양이 만나서 결합할 확률은 900억분의 1인 셈입니다. 그래서 부모 자식의 사이가 되려면 천 겁의 인연을 쌓아야 하는데, 남녀가 부부가 되려면 그보다 두 배인 이천 겁의 인연을 쌓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겁의 세월을 두고 쌓은 인연의 끈이 바로 지척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7개월이 갓 넘은 상태에서 오늘의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느 시인이 노래하였듯이, 이제껏 외로 달려오던 두 물줄기가 마침내 하나로 합쳐져 흘러가니, 두 사람이 서로 맞잡은 손 안에서 향기 높은 꽃 한 송이를 피워내고, 기쁨의 노래를 드높이 부르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7개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 동안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을 거쳐 봄이 왔습니다. 두 사람에게 있어 그 7개월은 남들의 7년에 버금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신랑 김승주군은 머나먼 창원에서 판사로 근무하고, 신부 전혜원양은 서울에서 중국어 통역 업무에 종사하느라 바쁘다 보니 데이트를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두 사람은 매일 밤 한 두 시간씩 전화기를 붙들고 살아야 했습니다. 통신회사의 입장에서는 더없이 고마운 고객이겠지만, 매달 몇 십만 원씩 나오는 그 전화비를 혹시 양가 부모님이 내 주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밤낮 없이 일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비가 오나 눈가 오나 주말마다 창원에서 서울까지 천리길을 달려오는 김승주군, 통역과 번역에 바쁘면서도 이제나 저제나 김승주군을 만날 날을 기다리는 전혜원양, 두 사람한테 주말은 말 그대로 축복의 순간이었습니다. 주중에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주말에 다 풀어야 하는 두 사람에게는 서울 근교의 드라이브길도, 에버랜드의 동물원도, 그리고 공포의 청룡열차도 모두 환희의 대상이었고, 늦은 밤 정종대폿집에 주고받는 정종 한 잔은 후일 상봉 言約酒였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찾은 부산의 해운대 모래사장은 그 위에 심장모양을 그려 사랑을 고백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였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애정의 깊이를 더해 가는데, 야속한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흐르는지,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두 사람은 다시 일주일 후를 기약하며 헤어져야 했으니... 서로서로 꼭 잡은 두 사람의 손은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판소리 춘향가 중 이도령과 춘향이가 오리정에서 이별하는 대목의 마지막 장면인 “둘이 서로 꼭 붙들고 떨어지지를 못 하는구나”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중국 유학 다녀오랴, 그리고 통번역대학원 다니랴 30대 초반이 다 지나도록 공부밖에 할 줄 모르던 여자, 신부 전혜원양에게 도대체 김승주군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내 아이의 엄마가 되어 평생 함께 살다가 내가 죽을 때 눈을 감겨 달라”는 정말로 멋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프로포즈를 받고도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대답이 뜻밖으로 간단하고 명쾌하였습니다. 김승주군의 착한 마음씨가 무엇보다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신랑 김승주군을 사법연수원생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아 오면서 느낀 모습은 “착한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늘 소탈한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착한 어린이”입니다.
그러고 보면 신랑 김승주군한테서 그런 착한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에 반한 신부 전혜원양이야말로 진정으로 착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착함과 지혜로움을 갖추었기에 신부 전혜원양의 빼어난 미모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착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내빈 여러분 어떻습니까, 착한 남자의 표상 김승주군과 지혜로운 여자의 상징 전혜원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커다란 박수로 두 사람을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신랑 김승주군을 사법연수원에서 가르쳤던 훈장으로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당부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때로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법조문과 판례를 분석하거나 중국어의 문장을 분석하듯, 그렇게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기는 삶을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그럽게 져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생각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세 번만 참으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시구(詩句)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따뜻함으로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 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두 사람 모두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옛말에 “꽃은 벌을 부르고 벌은 꽃향기를 좋아하니, 꽃과 벌은 서로 도우며 영원히 상생한다(花召群峰 蜂樂花香, 花峰相助 終古不變)”는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바로 이 꽃과 벌처럼 살기 바랍니다.
끝으로, 두 사람은 모두 일반인의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전문직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로부터 많은 은덕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애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애국자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닙니다. 애국의 길, 알고 보면 참으로 쉽습니다. 아이를 최소한 둘 이상 낳으면 그게 바로 애국의 길입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거의 꼴찌에 이른 우리나라가 이 지구상에 계속 존립하기 위하여 이 땅의 신혼부부에게 꼭 요구되는 의무이자 덕목입니다. 애국의 길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울러 애국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건강하여야 하는데, 흡연은 한 마디로 건강의 적입니다. 신랑 김승주군은 이번 결혼을 계기로 그 동안 10년 넘게 피워 왔던 담배를 끊겠다고 한 약속을 이 자리에 계신 내빈들 앞에서 다시 한 번 서약하시기 바랍니다. (신랑이 금연서약서를 큰 소리로 낭독)
이제 주례사를 마치면서 신랑, 신부에게 숙제를 내줄까 합니다. 1년 전에 돌아가신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두 사람만의 정기적인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색다른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내준 이 숙제를 잘 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 3. 12.
주례 민 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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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약 서
저는 결혼 이후로부터 담배를 끊을 것을 서약합니다.
2011. 3. 12.
김 승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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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거사
2011.05.06 14:57
(김은호 주례사)겨울 장갑
겨우 내내, 아니 겨울이 지나가고도 한참 동안 기승을 부리던 시베리아의 찬 공기도 멀리 물러가고, 이제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이 함께 어울려 자태를 한껏 뽐내는, 말 그대로 백화제방(百花齊放)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기에, 그야말로 만물이 생동하는 화창한 4월에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신랑, 신부의 결혼을 먼저 진심으로 축하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 주기 위하여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걸음을 하여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혼주(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김은호군은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매일유업에서 마케팅홍보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신부 김주연양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맥쿼리증권의 파생운용부에서 주식 매매를 담당하고 있는 훌륭한 인재들입니다.
본격적인 주례사를 하기에 앞서 잠시 시계바늘을 지금부터 1년 3개월 전인 2010년 1월 12일로 돌려보겠습니다. 당시 2년차 새내기 회사원인 신랑 김은호군은 아직은 직장에 적응하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이제는 벌써 8년차가 된 중참의 증권맨인 신부 김주연양은 ‘내 님은 어디에’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추운 겨울을 춥게 보내면서도 정작 그 추위의 정체를 모르고 있던 차에, 김은호군의 절친한 친구이자 김주연양의 직장동료인 수호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두 선남선녀를 서울시청 부근의 삼겹살집으로 이끌었습니다.청춘 남녀가 처음 만남을 가질 때는 근사한 호텔 커피샵을 이용하는 게 보통인데,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이렇게 첫 만남을 삼겹살 구워 먹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참으로 된장 맛이 나는 구수한 만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삽겹살을 그렇게 잘 굽는 여자는 처음 보았다는 신랑 김은호군은 그만 신부 김주연양의 삽겹살 굽는 솜씨에 홀딱 반하였고, 그 후 이어지는 만남에서 서로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끼던 어느 날, 신부 김주연양이 장갑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살을 에는 칼바람에 꽁꽁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부는 모습을 보고 신랑 김은호군이 그 여린 손을 꼭 잡아주면서, 마침내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필이면 이 때 장갑을 왜 잃어버렸는지, 혹시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청문회를 개최하여 진실을 규명하여야 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시간 날 때마다 데이트를 하며 사랑의 깊이를 더해 가던 2010년의 마지막 날,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서울 명동의 밤거리,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커피를 마셨던 ‘커피애’라는 찻집을 두 사람이 일부러 찾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신랑 김은호군은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하며 이적의 “다행이다”라는 노래를 부르고,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공개구혼을 하였습니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펼쳐진 것입니다. 이런 멋진 청혼을 거절할 여자는 아마도 이 지구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장갑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떨리며 처음 잡았던 손을 앞으로 영원히 놓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제껏 외로 달려오던 두 물줄기가 마침내 하나로 합쳐져 흘러가니, 두 사람이 서로 맞잡은 손 안에서 향기 높은 꽃 한 송이를 피워 내고, 기쁨의 노래를 드높이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의 부모님은 이럴 때 써먹으라고 김은호군에게 어릴 적에 피아노를 가르치신 건가요?
지구상의 인구가 60억 명 중 대략 반이 남자이고 반이 여자일 테니, 30억 남자 중의 한 명인 신랑 김은호군과 30억 여자 중의 한 명인 신부 김주연양이 만나서 결합할 확률은 900억분의 1인 셈입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되기보다도 훨씬 어려운 그 900억분의 1인 확률이 현실화되는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부모 자식의 사이가 되려면 천 겁의 인연을 쌓아야 하는데, 남녀가 부부가 되려면 그보다 두 배인 이천 겁의 인연을 쌓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영겁의 세월을 두고 쌓은 인연의 끈을 맺은 두 사람이 저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찾아왔을 때, 제가 김주연양에게 김은호군의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대답이 뜻밖으로 간단하고 명쾌하였습니다. 김은호군의 따뜻한 마음씨가 무엇보다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신랑 김은호군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보아 오면서 느낀 모습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감싸고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면 신랑 김은호군한테서 그런 따뜻한 모습을 발견하고, 거기에 반한 신부 김주연양이야말로 진정으로 착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착함과 슬기로움을 갖추었기에 신부 김주연양의 빼어난 미모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마음이 따뜻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착하고 슬기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내빈 여러분 어떻습니까, 마음이 따뜻한 남자의 표상 김은호군과 착하고 슬기로운 여자의 상징 김주연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커다란 박수로 두 사람을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 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신랑 김은호군을 어릴 적부터 보아 왔고,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이제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우선, 결혼생활은 천리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천리 길을 가려면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하게 뛰어서는 천리 길을 결코 갈 수 없습니다. 황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가야 합니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입니다. 무엇이든 서둘러 한꺼번에 이루려 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듯이 착실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에 얽힌 이야기를 늘 염두에 두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머나 먼 천리 길을 감에 있어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당부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때로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홍보할 상품과 고객의 심리를 살피거나 주식시장의 시황을 분석하듯, 그렇게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함을 뽐내며 상대방에 대하여 이기는 삶을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는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보다는 너그럽게 져주는 현명한 삶이 필요합니다. 똑똑함보다는 현명함이 요구된다는 이 말을 꼭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신랑은 화성에서 온 남자이고, 신부는 금성에서 온 여자이니,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고,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세 번만 참으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시구(詩句)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따뜻함으로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 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감싸십시오. 시이불견(視而不見)하고 청이불문(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 모두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일심동체(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옛말에 “꽃은 벌을 부르고 벌은 꽃향기를 좋아하니, 꽃과 벌은 서로 도우며 영원히 상생한다(花召群峰 蜂樂花香, 花峰相助 終古不變)”는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바로 이 꽃과 벌처럼 살기 바랍니다.
끝으로, 두 사람은 모두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이제껏 어려움 없이 성장하여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로부터 많은 은덕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 은혜에 보답하여야 합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주위의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애국자가 되기 바랍니다. 애국자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닙니다. 애국의 길, 알고 보면 참으로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최소한 둘 이상 낳으면 그게 바로 애국의 길입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거의 꼴찌에 이른 우리나라가 이 지구상에 계속 존립하기 위하여 이 땅의 신혼부부에게 꼭 요구되는 의무이자 덕목입니다. 꼭 애국자가 되기 바랍니다.
이제 주례사를 마치면서 신랑, 신부에게 숙제를 한 가지 내줄까 합니다. 1년 전에 돌아가신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정기적으로 찾아다니면서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취를 느끼다 보면, 이제껏 몰랐던 색다른 감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내준 이 숙제를 잘 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이상으로 다소 장황했던 주례사를 마치려고 합니다. 요컨대,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는 따뜻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서로를 공경하고 이해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자세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새 며느리, 새 사위를 맞이하신 양가의 부모님께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리며,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도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1. 4. 16.
주례 민 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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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주례사)
눈 속에 핀 매화 한 송이
겨울로 들어서는 문턱이라는 입동이 진작 지나고 이제 이틀 후면 소설입니다. 예년 같으면 눈도 내리고 본격적으로 겨울로 접어들 때가 되었건만, 아직은 이렇다 할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포근하고 상쾌한 주말입니다. 아마도 오늘 이 자리에 선 두 주인공이 뿜어내는 사랑의 열기에 동장군이 겁을 먹고 접근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좋은 날씨에 이 자리에서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신랑, 신부의 결혼을 먼저 진심으로 축하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 주기 위하여 주말의 바쁜 시간임에도 어려운 걸음을 하여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이윤기군은, 서울산업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함과 동시에 영국 Northumbria 대학의 공동학위과정을 이수한 후,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최고기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에서 Scheduling System Engineer로 일하고 있는 산업역군이고, 또 하나의 주인공인 신부 용세희양은 신랑 이윤기군과 마찬가지로 서울산업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진로를 바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의 영어교사양성과정을 거쳐 현재 정철어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훌륭한 재원입니다.
신랑 이윤기군과 신부 용세희양이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7년 전인 2003년이었습니다. 당시 신부 용세희양은 서울산업대학교 2학년인 반면, 신랑 이윤기군은 1학년 신입생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신부가 선배이고 신랑은 그 후배인 셈입니다.
당시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이 개최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선배 용세희양의 눈에 띈 후배 이윤기군의 얼굴에는 신비한 후광이 서려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도 그 후광이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때부터 용세희양의 가슴은 콩닥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용세희양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이윤기군은 재학 중에 군대를 갔고, 강원도 전방의 산골에서 병영생활을 하던 2006년 1월의 첫째 주말이 되었습니다.
마침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 한껏 운치를 뽐내건만,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었던 이윤기상병이 부대원들과 함께 PX에서 불어터진 라면그릇에 젓가락을 담근 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부대 면회실에 한 마리 학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나타났습니다. 그 여인은 하얀 눈 속에 핀 한 떨기 매화꽃 그 자체였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란 이윤기상병 앞에 나타난 이 여인, 다름 아닌 바로 용세희양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통닭과 피자를 들고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이 때의 광경을 과연 어떻게 표현하여야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아쉽게도 면회시간은 고작 30분, 그렇지만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이 만남이 바로 오늘의 축복받는 자리로 연결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저에게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하러 왔을 때 제가 신부 용세희양에게 물었습니다. 이윤기군의 어떤 점이 좋아서 배우자로 선택하게 되었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신부 용세희양은 이윤기군의 착한 마음과 차분한 성격이 무엇보다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 동안 어릴 적부터 보아온 신랑 이윤기군의 모습은 “착한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착한 사람도 있구나”하고 감탄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신랑 이윤기군에서 그런 착한 모습을 발견하고, 첫눈에 반한 신부 용세희양이야말로 실로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지혜를 갖추었기에 신부 용세희양의 아름다운 미모가 더욱 돋보이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착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내빈 여러분 어떻습니까, 착한 남자의 표상 이윤기군과 지혜로운 여자의 상징 용세희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커다란 박수로 두 사람을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당부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때로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컴퓨터의 전산시스템을 설계하거나, 영어의 문장을 분석하듯, 그렇게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기는 삶을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그럽게 져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시구(詩句)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따뜻함으로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두 사람 모두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옛말에 “꽃은 벌을 부르고 벌은 꽃향기를 좋아하니, 꽃과 벌은 서로 도우며 영원히 상생한다(花召群峰 蜂樂花香, 花峰相助 終古不變)”는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바로 이 꽃과 벌처럼 살기 바랍니다.
끝으로,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십시오.
돌아가신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연애기간에는 서로 공부하느라, 또 갓 취업한 직장에 충실하느라 여행을 함께 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여행을 많이 하십시오. 두 사람만의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내준 이 숙제를 잘 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 사랑스런 사위를 새로운 식구로 맞이하는 것이므로,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0. 11. 20.
주례 민 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