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蓮說(애련설)
2016.09.01 23:17
마침내 9월이다.
9월이야 때가 되면 매년 찾아오는 달이지만, 올해는 의미가 색다르다.
다름 아니라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의 더위를 기록한 8월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렇게도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갑자기 며칠 새 신기할 정도로 물러가고,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젠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파란 하늘이 바로 머리 위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지난봄에 했던 실종신고를 거두어들여야 할 것 같다.
찌는 삼복더위에 시달리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니” 하고 인내한 보람이 있나 보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그 무엇보다도 좋다.
이런 상서로운 기운이 전 국토, 온 국민에게 계속 이어진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금당천변에도 가을의 전령이 찾아왔다.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들녘이 보는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풍요를 느끼게 한다.
대처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잠을 깨 이슬에 젖은 논두렁길을 걷노라니 메뚜기와 방아깨비가 친구 하자고 길을 막는다.
어릴 적에는 봉지 가득 잡아다가 볶아 먹었는데(그 시절에는 참으로 맛있었다),
耳順을 넘긴 지금은 그냥 반가울 따름이다.
몸이 늙어 순발력 있게 잡지 못함을 이런 식으로 합리화한다 해서 크게 흉볼 일은 아닐 것이다.
논두렁의 나팔꽃과 메꽃도 아침인사를 하고,
물오리떼와 백로가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지난 봄,
우거 옆 연못을 청소하고 연(蓮)을 심었다.
한동안 개구리밥이 온통 연못을 덮고 연(蓮)은 물 위로 나올 생각을 안 해 애를 태웠는데
(자고 나면 연못을 가득 덮는 개구리밥을 건져내느라 땀 깨나 흘렸다),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씩 자태를 드러내더니
삼복더위를 지나면서 쑥쑥 올라와 이젠 어엿하게 연못의 주인이 되었다.
황금들녘과 더불어 촌부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하얗게 핀 연꽃을 보면서 성리학의 시조라 할 송나라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愛蓮說(애련설)을 떠올린다.
愛蓮說(애련설)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수륙초목지화 가애자심번)
물과 땅에 자라는 초목의 꽃에는 사랑스러운 것들이 매우 많아,
晋陶淵明獨愛菊 (진도연명독애국)
진(晋)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自李唐來 世人甚愛牧丹 (자이당래 세인심애목단)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몹시 사랑하였다.
予獨愛蓮之 (여독애련지)
그런데 나는 오직 연꽃을 사랑하노니,
出於泥而不染 (출어니이불염)
연꽃은 진흙에서 나오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濯淸漣而不妖 (탁청련이불요)
맑은 잔물결에 깨끗이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中通外直 不蔓不枝 (중통외직 불만부지)
줄기 속은 비어 있으나 겉은 곧아서 덩굴이나 가지를 내지 않으며,
香遠益淸 亭亭淨植 (향원익청 정정정식)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可遠觀而 不可褻玩焉 (가원관이불가설완언)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희롱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다
予謂(여위),
내가 생각건대,
菊, 花之隱逸者也 (국, 화지은일자야)
국화는 꽃 가운데 은둔자이고,
牧丹, 花之富貴者也 (목단, 화지부귀자야)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한 자이며,
蓮, 花之君子者也 (연, 화지군자자야)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하겠다.
噫! 菊之愛 陶後鮮有聞 (희! 국지애 도후선유문)
아! 국화에 대한 사랑은 도연명 이후로 들은 적이 거의 없고
蓮之愛 同予者何人 (연지애 동여자하인)
연꽃에 대한 사랑이 나와 같은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牡丹之愛 宜乎衆矣 (모란지애, 의호중의)
그에 비해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많을 것이다.
각설하고,
주돈이 같은 대학자야 연꽃을 군자에 비유하여 사랑하였지만,
한낱 촌부에게는 국화든, 모란이든, 연꽃이든, 나팔꽃이든 모두 자연이 주는 고귀한 선물이니,
지친 심신을 달래 주는 한 줄기 청량제로 감사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임이 도리이리라.
바야흐로 天高人肥의 계절이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한가위 명절부터 즐겁게 보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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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이 됐든 모란이 됐든 자연의 고귀한 선물
모두 얼마나 귀하던가요..
근디
ㅎㅎㅎㅎㅎ
저도 연못 개구리 밥이나
화단에 불쑥불쑥 들어 온 잡초
자연의 선물이 아니라
게으른 자에 대한 징벌이라 생각해 뽑아 버립니다.